가장 매력적인 빌런 '조커'를 만나는 경험 '킬링 조크'
앨런 무어 글/브라이언 볼런드 그림 | 세미콜론
올 여름에 등장할 <저스티스 리그>의 중심은 배트맨이다. 다크사이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아쿠아맨, 플래쉬, 사이보그를 배트맨이 찾아 나선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이미 원더우먼을 만났다. 유일하게 신이나 외계인이 아니고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도 아닌 배트맨은 일종의 탐정이고, 늘 경계에 선 캐릭터다. 악에 현혹되면서도 결코 악에 넘어가지 않는, 개인적인 복수와 공공의 정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팀 버튼이 <배트맨> 1, 2편을 만들고 다시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 3부작을 완성하면서 배트맨은 DC 시네마 유니버스 최고의 캐릭터가 되었다.
하지만 조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에서 각각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그야말로 최고의 빌런이었다. 주인공인 배트맨을 능가하는, 더욱 더 매력적인 캐릭터. <배트맨>의 조커는 포스트모던한 무정부주의자였다. 박물관에 들어가 그림을 훔치면서 마음껏 낙서를 하는 조커와 부하들은 현대문명의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고 목적 없는 유희를 펼쳤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21세기의 악몽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인간 마음의 카오스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배트맨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심연으로 추락시키는 존재.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잭 니콜슨의 조커를 능가한 건 아니다. 히스 레저와 잭 니콜슨의 조커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환상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배트맨을 최고의 캐릭터로 부상시켰다. 조커는 배트맨의 다른 얼굴이다. 아수라처럼, 그들은 서로를 보고 있고, 서로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커는 배트맨을 죽이지 않고, 배트맨이 자신을 죽여 스스로 붕괴하기를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카오스이니까. 빌런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슈퍼히어로 역시 초라해지기 쉽다. 시시한 악당을 물리치는 슈퍼히어로는 보잘 것 없다.
<배트맨>의 팀 버튼이 ‘난생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만화’라고 밝힌 <킬링 조크>가 없었다면 잭 니콜슨의 조커도, 히스 레저의 조커도 아마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들러보다도 수수께끼로 가득한 악당,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조커를 만나는 가장 빠르고 탁월한 경험은 <킬링 조크>다. <워치맨>의 앨런 무어가 창조한 <킬링 조크>의 조커는 심연을 알 수 없는 ‘악의 탄생’을 신랄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보여준다.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자기의 웃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해준다. 그리고 부인한다. 무엇이 정말일까? 확인할 수 없는 말은 신화가 되고, 조커의 기원을 더욱 미궁으로 빠트린다. <킬링 조크>는 인기 없는 코미디언이 어떻게 한순간에 절망에 빠지고, 나락에 떨어지면서 악마를 능가하는 빌런 조커로 변해갔는가를 보여준다. 한순간에 경계를 넘어간 조커, 여전히 경계에서 정의를 지키는 배트맨, 그들을 바라보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늠해보는 우리들의 얼굴 모두를 만날 수 있는 걸작이다.
by 김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