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에도 찾아갈 서울미래유산 맛집 4
서울에 얼마나 많은 식당이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하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긴 시간을 이어 온 식당으로 좁히면 비교적 수월하다. 서울시가 직접 인증한 가게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명확해진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식당들이 주인공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식당은 총 54개다 |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이다. 미래세대에 전할 보물인 셈이다. 미래유산으로 뽑힌 서울 식당은 총 54개(2023년 2월 홈페이지 기준)이므로, 한 번쯤 다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식도락 여행이 될 것이다. 4곳의 식당들로 서울 사람들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길 바란다.
●을지로3가의 대장
안동장
을지로의 낭만이 집약된 공간 안동장. 서울미래유산이 인증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이다. 1948년에 개업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원래 지금의 피카리디 극장 근처에서 개업했는데, 1950년 종로 일대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을지로 124로 이전했다. 워낙 오래된 식당이다 보니 나이를 멋지게 드신 어르신들도 많은 자리를 채우고 있다. 여기에 젊은 사람들까지 모이니 그야말로 세대를 뛰어넘는 화합의 장이다.
안동장의 대표 메뉴 굴짬뽕 |
중국 분위기 물씬 풍기는 내부 |
메뉴는 상당히 다양한 편. 코스 요리는 물론 냉채, 해삼전복, 잡품, 새우, 닭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야채두부, 탕, 밥, 면 등의 카테고리에서 100가지 이상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기 메뉴는 굴짬뽕, 멘보샤, 난자완스 등인데 사실 몇 가지 뽑는 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일품요리인 난자완스 |
안동장의 굴짬뽕과 잡탕밥(위) |
그럼에도 시그니처 굴짬뽕 꼭 주문하길. 안동장을 대표하는 얼굴이니 말이다. 굴의 시원함과 채소의 깔끔함이 어우러져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인근 직장인이 많은데, 밥과 면류 메뉴가 많아 선택폭이 넓다. 푸짐한 해물이 들어가는 잡탕밥도 꽤 괜찮으니 한 번 즐겨보길 권한다.
●계속 생각나는 구수함
유림면
점심에도 저녁에도 즐거운 한 끼가 되는 메밀국수. 덕수궁과 서울시청 근처에서 메밀국수를 찾는다면 유림면으로 향하면 된다. 다른 상호로 1960년에 창업했으나 1986년 지금의 장소에서 유림면으로 다시 태어났다.
따뜻한 메밀국수 |
메뉴는 메밀국수, 비빔메밀, 냄비국수, 비빔국수, 온메밀(계절메뉴 11~4월), 돌냄비(12~3월)가 있다. 언제 먹어도 좋지만, 계절에 맞춰 메뉴를 선택하면 더 즐거운 식사가 가능하다. 쌀쌀한 계절에는 냄비국수 또는 온메밀과 비빔메밀 조합을, 여름에는 메밀국수와 비빔메밀이 좋겠다. 물론 날씨와 상관없이 개인 취향에 맞춰 주문하면 된다.
쌀쌀한 날씨에는 이만한 게 없다 |
트래비 에디터의 유림면 원픽 ‘비빔메밀’ |
에디터의 원픽은 비빔메밀. 감칠맛 넘치는 양념과 구수한 메밀면의 조화가 일품이다. 양념장은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꿀 등을 달여 만든다고 한다. 숙성을 통해 고추장의 매운맛은 부드러워지고, 맛은 더 깊어진다.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서 끊임없이 들어간다. 여기에 온메밀이나 냄비국수의 따뜻한 국물을 더하면 딱 맞다. 메밀면의 경우 국내산 봉평 메밀을 활용하며, 찰기가 적당해 씹는 맛도 좋다.
●서울의 해장국
청진옥
1937년에 개업해 87년간 서울을 지키고 있는 청진옥은 서울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해장국 전문점이다.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에서 상호 없는 천막 식당으로 시작해 평화옥이란 상호로 영업을 이어가다가 6·25전쟁 후 청진옥으로 이름을 바꿨다. 위치도 조금씩 바뀌었다. 2008년 피맛골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종로1가 24번지로 옮겼다가 2016년 지금의 자리인 종로3길 32에 둥지를 텄다. 2005년부터 창업주의 손자인 최준용 씨가 3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옛 단골손님의 면면도 화려한데,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 등이 이곳의 해장국을 즐겼다고. 덕분에 세월의 깊이가 확 느껴진다.
술안주로 좋은 모둠수육 |
메뉴는 양·선지 해장국, 모둠수육, 내장수육, 안주전골, 따구국(뼈다귀 국), 모둠전, 빈대떡 등이 있다. 식사로도 술자리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메뉴 구성이다. 덕분에 요일, 시간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몰린다. 평일 점심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주말에는 가족 단위 손님들도 많이 보인다.
청진옥의 해장국 |
국내산 한우를 사용한 해장국은 배추와 콩나물, 우거지 등이 들어가 시원하면서도 고깃국 특유의 진한 맛이 돋보인다. 소내장과 우골 등을 넣고 푹 고아낸 국물이 인상적이다. 싱싱한 선지는 덤이다. 내장과 고기를 모두 맛볼 수 있는 모둠수육도 별미. 한우 특유의 고소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술안주로 상당히 좋다.
●서민의 술상
유진식당
요즘 외식 물가가 심상치 않다. 웬만하면 기존 가격에서 10~20% 인상됐다. 국밥과 평양냉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유진식당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평양냉면만 해도 서울 유명한 곳들은 1만4,000원~1만6,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게다가 국밥도 이제 만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 반면 유진식당은 냉면 1만원, 돼지머리국밥 6,000원 등이다. 단순한 가격 외에도 이 가게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가성비 좋은 유진식당의 평양냉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에 따르면, 북한 출신의 실향민인 창업주가 낙원상가 골목에서 북한식 순대와 국밥 전문점으로 식당 운영을 시작했고, 인근에 한식당 ‘대동강’을 추가로 개업했다고 한다. 다만, 1985년 불의의 일로 두 식당 모두 폐업하게 됐다고. 폐업 이후 1988년 현 위치에 유진식당을 재개업했다.
유진식당의 고소한 녹두지짐 |
서울 시민과 여행자가 유진식당을 만날 수 있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진식당의 메뉴는 물냉면, 비빔냉면, 설렁탕, 돼지머리국밥, 녹두지짐, 돼지수육, 술국, 홍어무침 등이다. 누구나 친근하게 먹을 수 있고,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메뉴다. 고소한 녹두지짐에 막걸리 한 잔, 수육에 소주 한 잔, 식사로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물냉면(일반 평양냉면 가게보다 쫄깃한 면이 특징), 진한 국물의 설렁탕 또는 돼지머리국밥을 즐기면 된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