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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서 맛 좀 보령, 보령 미식투어

칠월의 바다, 어디 맛 좀 보라지. 7월은 휴가철이니 지인들에게서 벌써 문의가 쇄도한다. 어디 가서 뭐 먹냐고. 여러 이야기를 해줘도 결국 대부분 바다를 간단다. 이런저런 이유로. 좋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바다 결핍증이 있으니까. 

국내에서 가장 클래식한 해변으로 꼽히는 대천 해수욕장이 바로 보령시에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클래식한 해변으로 꼽히는 대천 해수욕장이 바로 보령시에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클래식한 해변

아무튼 ‘바다’라 하면 그저 해수욕장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당장 당신이 부럽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바다의 매력을 경험할 것이 많으니까. 스타워즈 시리즈나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를 아직 1화도 보지 못한 사람이 부러운 것처럼.


바다는 피서를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더 덥다. 햇볕도 그렇고 모래사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상상해 보면 안다. 물에 들어가도 잠시뿐. 특히 한여름엔 미지근하고 끈적한 데다 비리기까지 하다. 바다가 휴양지의 대명사인 이유는 보기에 그럭저럭 시원하다는 이유뿐이다. 내게 바다는 맛보기에 최적의 자연이다. 들과 산에는 갖은 나물과 열매가 있다지만, 바다 해산물의 종류에 비할 게 못 된다. 그래서 특히 서해안이 좋다. 동해와 남해에도 썩 좋은 생선과 조개, 해초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개펄이 드넓은 서해안이 가장 풍부한 산물을 자랑한다. 가장 인기 있는 서해의 해변, ‘보령’을 다녀왔다.


북한을 제외하고 우리 서해 지형에서 한가운데쯤 위치한 곳이 보령시 대천이다. 단언컨대 보령 대천은 국내에서 가장 ‘클래식’하고 ‘레트로’한 해변이다. 경포대도 해운대도 너무 고급스럽게 변해 버렸다.


1930년에 국내 두 번째로 생겨난 해수욕장, ‘대천’은 한눈에도 담기에 벅찬 백사장을 여전히 뽐내고 있다. 수많은 횟집과 카페가 바다를 향해 늘어섰다. 알고 보니 대천은 주전부리의 메카다. 키다리 아이스크림도 있고 비닐에 담은 칵테일도 판다.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커피도 즐길 수 있고, 바다가 보인다는 것만 빼면 서울과 다름없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들를 수 있다.


총 길이 3.5km의 장대한 해변을 걷고 난 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간재미를 무쳐 먹을 것이냐, 주꾸미를 볶아 먹을 것인가. 햄릿 이상의 고민이다. 서해안 미식 여행에서 보령은 베이스캠프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숙박업소와 편의시설이 많은 대천과 무창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다녀올 수 있다. 대하(서천 남당리)와 굴(천북)을 비롯해 꽃게, 주꾸미, 간재미, 밴댕이 등 사철 이어지는 먹거리가 지천이다.

어시장은 서해 해물의 보고다. 대천항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어시장은 서해 해물의 보고다. 대천항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빈뎅이 그리고 게국지

대천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기엔 밴댕이 조림이 좋다. 대천 읍내 쪽 ‘수정식당’은 칼칼한 양념에 푹 익혀 나오는 빈뎅이(밴댕이)조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메뉴에 적힌 빈뎅이는 쭈께미(주꾸미)처럼 충청도 갯가 사투리다. 산란기를 앞둔 늦봄 맛을 최고로 치는데 이 집에선 횟감 아닌 조림만 하니 상관없다. 맛이 들 때 잡아 냉동해 놓은 것을 1년 내도록 쓴다. 사장님이 젓가락으로 몇 번 손을 놀리면 뼈가 모두 발라져서 살만 남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다. 밥 한술과 밴댕이를 양념째 퍼서 상추 위에 올리고, 곁들여 낸 조개젓과 마늘장아찌를 하나 얹어 싸 먹는 맛이 최고다. 

속이 좁다지만 맛은 좋다. 빈뎅이(밴댕이) 조림을 기막히게 하는 수정식당

속이 좁다지만 맛은 좋다. 빈뎅이(밴댕이) 조림을 기막히게 하는 수정식당

바닷가에 와서 생선회를 빠뜨릴 수는 없다

바닷가에 와서 생선회를 빠뜨릴 수는 없다

서해안에선 지금 다양한 제철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원래부터 대천 해변의 상가를 대표하는 조개구이집들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노을광장 앞 ‘조개까는 남자’는 싱싱한 회와 조개구이를 모두 즐기면서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커다란 키조개를 비롯해 개조개(대합), 백합, 맛조개, 바지락 등 다양한 종류를 철 따라 내놓는다. 특히 저녁에 최고의 일몰 전망과 함께 생선회와 다양한 밑반찬, 해산물, 조개구이까지 한달음에 맛볼 수 있어 좋다.

충남 서해안 향토음식 게국지도 맛볼 수 있다

충남 서해안 향토음식 게국지도 맛볼 수 있다

조개구이는 보령의 시그니처인 듯, 인근 무창포에도 조개구이집이 잔뜩이다. 대천해수욕장 먹거리 골목에서 지역 향토음식인 ‘게국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집도 있다. ‘풍미꽃게장게국지’는 묵은지에 게국(게장의 간장)을 넣고 끓인 게국지를 전골 형태로 판다. 애호박과 김치 등을 넣어 끓인,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게국지 한 냄비를 앞에 두면 밥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두부부침과 김치전 등 반찬도 훌륭하고 진한 풍미의 전복죽도 인기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 게장도 맛이 좋다.

옛날식 고기 짬뽕을 파는 황해원 등 다양한 요리가 보령에 있다

옛날식 고기 짬뽕을 파는 황해원 등 다양한 요리가 보령에 있다

●휴가의 첫 번째 원칙

보령 성주면에 위치한 중식 노포 ‘황해원’은 오징어와 돼지고기를 넣은 짬뽕으로 유명한 곳이다. 직접 제면기로 그때그때 면을 뽑아 쓰며, 얇게 채를 썬 돼지고기 육사(肉絲)가 들어가 풍미 진한 국물 맛도 일품이다. 점심때만 살짝 문을 열었다 닫는다. 


대천항 수산시장에는 수족관에 생선을 진열해 놓고 즉석으로 회를 떠서 파는 집이 많다. 다양한 횟감 생선과 개불, 해삼 등 각종 해산물도 있다. 포장을 해서 숙소로 가져와도 좋고 양념집을 이용해도 분위기가 산다.

평화로운 바다. 보령 바다를 보면 배고파진다

평화로운 바다. 보령 바다를 보면 배고파진다

7월엔 그 유명한 머드축제가 대천 해변에서 성대히 열리니 이를 참고해서 일정을 잡는 편이 좋다. 이래저래 여름의 한복판, 오랜만에 떠난 바닷가에서 잘 노는 것도 좋지만, 잘 챙겨 먹어야 모름지기 후회가 없는 법이다. 주야장천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음식은 크게 배반하지 않는다. 그게 휴가라는 활동의 첫 번째 원칙이다. 


식후경으로 둘러볼 만한 곳도 가득하다, 보령 주산면 삼곡리에 위치한 ‘이광명 고택’은 국내 유일 입구(口)자 모양의 한옥으로 조선 말기의 주택 형태를 간직한 곳이다. 이광명 고택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딸과 혼담이 오가던 중 왕가에서 당시 3,000환이란 거금을 내려보내 지은 집이다. 집은 99칸으로 모양 자체가 정사각형으로 근대 주택 건축 양식과 혼합된 형태다. 실내는 좁은 복도를 따라 빙 두르고 있으며 사방으로 유리창이 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한옥체험 숙박시설인 이광명 고택은 주변 대숲과 언덕, 공원에 둘러싸여 있어 호젓한 분위기를 낸다. ‘성주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최대 사찰의 유적지다. 성주면 성주사지(사적 307호)에는 최치원의 명문이 적힌 낭혜화상탑비(국보 8호)를 비롯, 토불과 기와 등 많은 유적이 출토됐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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