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가까워질, 흑산도
흑산도는 울릉도와 닮은 점이 많다. 어르신들이 평생에 한 번쯤 가 보고 싶어 했던 섬이라는 것 그리고 그 염원이 머지않아 생길 공항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울릉도 트위스트’가 그랬듯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들으며 미지의 섬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편하게 다녀오세요
흑산도를 오가는 배는 하루 4차례나 있다. 그것도 모두 쾌속선이라 2시간이면 충분히 입도가 가능하다. 과거엔 물결이 천 번 만 번 밀려와 아득하기만 했던 그 섬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으로 변신했다.
고래 모양을 본 떠 만든 흑산도항 여객터미널은 2016년 재준공됐다 |
흑산도는 이미 우리나라의 대표급 관광지로 성장했다. 평일에도 여객선이 꽉꽉 들어찰 만큼 인기가 있다. 1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흑산면에는 우리가 잘 아는 가거도, 만재도, 홍도가 포함된다. 가히 쟁쟁한 스쿼드다. 가거도, 만재도는 워낙에 먼 섬이라 별도의 여행으로 꾸려지지만, 홍도만큼은 흑산도에 인접해 있어 하나의 일정으로 묶어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여행사의 단체 패키지 프로그램 또한 그렇게 구성된다.
심리마을 앞바다. 고즈넉한 내만이 여행자의 발길을 머무르게 한다 |
●오후의 태양이 품은 검은 산
흑산도를 향하는 여객선에서는 정작 섬의 오롯한 자태를 담을 수 없다. 쾌속선이라 항해 중에는 갑판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흑산도를 먼발치에서 볼 수 있는 장소로는 경험상 도초조 자산어보 세트장, 비금도 선왕산 정상이 좋았다. 또 우이도 상산봉에서는 그 위용이 좀 더 크게 다가왔다.
흑산도 북서쪽 해안에서는 대장도와 소장도 앞으로 전복 양식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흑산도를 바라보면 옛사람들이 섬의 이름을 짓고 불렀던 연유가 쉽게 이해된다. 서해남부는 안 바다와 바깥 바다로 나뉘는데 비금, 도초도가 그 경계에 있다. 여객선이 크고 작은 섬이 촘촘한 안 바다를 지나고 경계를 넘어 바깥 바다로 접어들면 물빛부터 섬뜩해진다. 검게 변해 버린 바다, 그 위에 산처럼 떠 있는 흑산도도 검은색이다.
혹자는 흑산도가 그리 보이는 것은 섬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록수림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 문득 역광도 이유 중의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흑산도는 서쪽에 있다. 머나먼 뱃길에서 옛사람이 보았던 것은 오후의 태양이 품은 검은 산이었을지도.
절벽에 가로로 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길을 낸 일주도로 하늘다리 |
●슬기로운 흑산도 여행법
흑산도 여행은 대개 2010년 개통된 25km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이 중심을 이루며 개별 여행객들도 관광버스나 택시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성수기나 주말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단체여행객들만으로 만원사례를 이루기 때문이다. 산이 많고 면적이 큰 흑산도를 도보로 여행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종종 렌터카, 스쿠터, 전동 자전거 등의 대여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흑산도를 여행하는 가장 슬기로운 방법은 섬을 찾는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버스 투어를 통해 동선과 명소들을 확인하고 두 번째 여행부터는 공영버스나 도보를 이용해서 차근차근 돌아보면 된다. 칠락산을 올라 상락산으로 내려오며 아득한 섬 군락의 신비를 만끽하거나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와 구불구불 해안도로를 마음껏 달려 봐도 좋다(다만, 이 경우엔 시계방향으로 돌기를 권한다. 열두구비길을 오르다 탈진할 위험이 있다).
예리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2시간 후면 목포항에 가 닿는다 |
흑산도 여행이 더욱 다채로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주변 섬들의 존재다. 예리항에서 도선으로 떠나는 섬 여행도 매우 흥미롭다. 영산도, 대장도, 대둔도, 다물도 등 작은 섬들도 저마다의 숨겨진 비경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흑산도의 신선한 홍어 맛
흑산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홍어다. 홍어는 긴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낚싯바늘을 달아맨 주낙으로 잡는다. 게다가 미끼가 없는 건주낙(걸락) 방식이다. 주낙을 투입한 후 걷어 올리는 데까지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이러한 전통적 방식으로 흑산도 홍어잡이는 ‘국가주요어업유산’으로 선정됐다.
한 팩에 5만원이면 두 겹으로 포장된 흑산도 홍어를 먹을 수 있다 |
2021년 기준, 흑산도 홍어 배는 16척에 달한다. 한때 감소세에 있던 생산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예리항 주변으로는 홍어를 판매하는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여행객들은 숙성 정도를 원하는 수준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삭히지 않은 신선한 홍어도 맛볼 수 있다.
홍어 주낙 끼우는 일은 연로한 마을 주민들의 쏠쏠한 소득원이다 |
흑산시장에서 홍어 한 팩을 사며 물었다. “홍어는 암컷이 맛있다죠?”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크죠. 8kg 이상을 1등급으로 치는데 수컷은 그렇게 큰 놈이 나오질 않아요. 생선은 큰 것이 맛있잖아요. 그래서 암컷이 맛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죠.”
●자발적 유배는 어땠을까
배낭기미는 흑산도를 대표하는 해변이다. 전망이 수려한 데다 송림 아래에는 데크와 나무 테이블까지 놓여 있어 당연히 캠핑 구미가 당기는 곳이다. 그런데 흑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게다가 해변 뒤편으로는 국립공원분소가 버티고 있으니 어찌 보면 언감생심이다. 이곳 해변에서 야영과 취사가 허락되는 시기는 6월부터 9월까지다. 한번은 그것을 모르고 캠핑을 시도하다 국립공원 직원에게 발각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직원은 차량으로 예리항에 있는 민박집까지 데려다줬고 상냥하게 상황 설명을 해 줬다. 돌이켜보니, 부끄럽고 감동스런 기억이다.
배낭기미에 침낭과 비비색을 폈던, 설레던 순간 |
국가등록문화재 759호로 지정된 유배문화공원 내의 흑산도 성당 |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사리마을의 유배문화공원을 찾았다. 여전한 호젓함이 반갑다. 흑산도는 예로부터 중죄인의 유배지로 손꼽혔다. 과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무려 130명의 죄인이 귀양을 갔던 유배의 섬이다. 정약전 역시 14년간 유배 생활 중 7년을 흑산도 사리마을에 머물며 역작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유배문화공원에는 백제 왕자로부터 조선 말 최익현에 이르기까지 유배됐던 인물들의 비석과 <자산어보>와 관련된 조형물 등이 세워져 있다. 게다가 유배 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 시설까지 마련해 놓았다. 유배가 여행의 테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기발한 공간이다. 문득, 캠핑이 아니라면 자발적 유배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과의 단절을 통해 느슨해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소중한 경험이 될지도 모르니까.
▶SPOTS
상라산 전망대
진리2구 읍동마을을 빠져나가 600m쯤 직진했을 때 일주도로는 급속도로 구불대기 시작한다. 상라산(229m)을 뱀처럼 타고 오르는 열두굽이길의 등장이다. 상라산 전망대는 열두굽이길은 물론 예리항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흑산도 제일의 포토존이다. 또한, 뒤편으로는 부속 섬 대장도와 소장도가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조망된다.
지도바위 & 구문여
지도바위는 하늘도로 초입의 해안가에는 있는 구멍 뚫린 바위다. 구멍의 형태는 영락없이 한반도를 빼닮았다. 구문여 역시 이름 그대로 구멍 뚫린 바위다. 흑산도를 여행하다 보면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 낸 절묘한 침식 지형들을 만날 수 있다.
7형제 바위
태풍 때문에 어머니가 물질을 못 하게 되자 일곱 형제가 바다로 뛰어들어 7개의 작은 섬으로 변했다. 7형제바위는 사리포구의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바닷속 호수 같은 느낌의 사리포구는 고운 물색에 오붓함마저 더해져흑산도 최고의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옥섬
읍동마을 우측의 방파제 끝에는 작은 섬 하나가 있다. 다리로 연결된 이 섬의 이름은 옥도다. 옥도의 옥은 감옥을 의미한다. 옥도에는 작은 굴이 있는데 그곳에 해적이나 죄인들을 가둬 놓았다고 한다.
철새박물관
흑산도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다. 흰꼬리수리가 번식하는 섬이며 국내에서 가장 많은 420여 종의 철새가 흑산도 권역에서 관찰된다. 지상 2층으로 조성된 철새박물관은 희귀종인 흰배줄무늬수리와 바다쇠오리 등을 포함해 800여 점의 조류 표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2015년 개관했다.
새공예박물관
새와 관련한 목각 공예품을 약 700여 점 소장 전시하고 있는 곳. 전시장은 ‘흑산도의 동박새’, ‘세계의 조류’, ‘조류 공예품’ 등 3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또한, 박물관 외부 공원에는 다양한 조형물과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내영산도와 외영산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스폿이기도 하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여행 계획의 시작! 호텔스컴바인에서
전 세계 최저가 숙소를 비교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