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제철여행, 구룡포 과메기의 계절 시작!
기름기 좔좔 흘러 미끈미끈 자태를 뽐내면서 쫀득쫀득한 식감으로 겨울철 건조해진 입맛에 윤기를 찾아주는 과메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제철 음식은 산지에서 바로 먹어야 제맛. 참아왔던 포항여행을 드디어 떠났다. 겨울 포항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역시 과메기의 고향 구룡포다.
구룡포 과메기
구룡포의 겨울바람으로 말려 바다의 풍미가 그대로 담겨있는 과메기. 예로부터 청어가 많이 나던 영일만 일대에서는 파도에 청어가 해안가로 밀려오면 까꾸리(갈퀴)로 긁어모았다. 인근 호미곶면에 있는 ‘까꾸리께’라는 지명이 과거의 호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게 잡은 청어를 그늘진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청어 과메기를 만들었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청어’에서 유래된 이름 과메기. 하지만 동해안에서 청어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비슷한 영양성분을 갖고 있는 꽁치로 과메기를 대체해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꽁치로 만든 과메기가 대부분으로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구룡포 과메기 제철이다.
Info. 구룡포 과메기 어디서 살까?
구룡포 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과메기를 널어 말리고 있는 어머니를 만났다. 잡아온 꽁치를 손질하고 해가 좋은날 약 3일 정도 말리는데 보기보다 손 가는 일이 꽤 많다며 과메기와 함께 겨울을 나는 구룡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인 가옥거리에서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과메기를 팔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말린 과메기를 꺼내 껍질을 벗겨내고 포장을 해줬다. 껍질 채로 사는 것보다 가격은 조금 더 비싸지만, 껍질 벗기는 일이 쉽지 않고 또 껍질 채로 먹으면 비린 맛이 많이 강해서 꼭 벗겨내고 먹어야 한다고.
구룡포에는 과메기전시관, 항구 주차장 등 곳곳에서 과메기를 살 수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0미, 20미 단위 포장으로 껍질 벗긴 것과 아닌 것, 그리고 과메기에 곁들이면 좋은 각종 채소들까지 함께 포장한 패키지상품 등으로 구분해서 판매한다. 가격은 어디든 거의 동일하다.
구룡포 과메기 상차림 (사진. 김관수)
구룡포란,
큰 폭풍우가 몰아치며 바다에서 거대한 용 아홉 마리가 하늘로 승천한 포구. 이 지명의 유래는 저 멀리 신라 진흥왕 재위기까지 올라간다. 아홉 용의 흔적은 구룡소에서 찾을 수 있다. 높이 40~50미터, 둘레 100여 미터의 움푹 팬 기암절벽으로 오직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창조물이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할 때 뚫어진 9개의 굴이 있고, 깊은 굴에서는 유명한 승려들이 수도를 했다고도 전할 만큼 신령한 곳으로 여긴다. 거친 파도가 이곳을 오가는 모습이 마치 용이 연기를 뿜어내는 것 같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구룡포와 과메기는 어떤 관계일까? 그 둘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으로 가자. 과메기를 찾아 떠나온 구룡포에서 먼저 과메기에 대해 살펴본 뒤 그 맛을 보면 더 맛있어지는 법.
4층 야외전망대 ‘어화만대(漁花滿代)’에서 감상하는 구룡포 앞바다와 어촌마을 풍경은 놓치면 후회할 장면들이다. 밤마다 수평선 가득 고깃불이 꽃으로 피는 구룡포. 축항을 돌아나간 저녁을 배웅하고 만선으로 돌아오는 아침을 마중하며 바다는 사람을, 사람은 바다를 보며 산다. 구룡포 사람들은 그렇게 풍어의 바다와 풍요의 시절을 기원한다.
이러한 만선의 꿈은 과메기문화관에 전시된 어선 유명호에서 찾을 수 있다. 1945년 구룡포 조선소에서 건조하여 1980년까지 실제로 조업하던 어선으로 동해안에서 꽁치를 잡던 유명호는 항상 만선을 이루었고 선주는 동해안 지역 수산업의 선구자가 됐다고 한다.
해풍에 말려 과메기를 만드는 모습과 방법, 과메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 그리고 구룡포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문화관 3층 과메기홍보관에서는 12월까지 매주 금~일요일 오후 2시~5시에 과메기 무료 시식회를 진행한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에 전시된 구룡포 옛 풍경 (사진. 김관수)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 항구에서 시작하는 구룡포여행. 가장 먼저 일본인 가옥거리가 발길을 이끈다. 언덕 위 구룡포공원으로 연결하는 계단 돌기둥에서부터 일본의 문화적 감성이 찾아든다. 1944년 일본인들이 세운 돌기둥 120개.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구룡포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을 새겼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돌아간 뒤 구룡포 주민들이 돌기둥에 시멘트를 바르고 거꾸로 돌려 세웠다.
현재 새겨진 이름들은 1960년 충혼각을 세울 때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이름이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구룡포의 모습들이 주변 골목 곳곳에 남아있다.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만들고 동해권역의 어업을 관할하면서 일본인들이 늘어난, 우리에게는 참 고단했던 시대의 결과물들이다. 과거에는 부유한 일본인들의 집, 병원, 백화상점, 요리점, 여관, 건축사무소 등이 이 거리를 메웠다.
지금은 약 500미터의 거리 안에 카페, 음식점, 여행자센터 등이 들어서서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대부분 보수, 정비를 거친 건물들이지만 적산가옥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현재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들이다.
일본인 가옥거리 위 언덕에도 현재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있다. 경사 급한 좁은 골목을 따라 그들의 삶의 터전인 구룡포 앞바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숨기고를 반복하는 동안 역시 일제의 흔적들이 보이기도 하고, 어촌마을 주민들의 고된 삶을 짐작해볼 수 있는 오래된 풍경들이 꾸밈없이 나타난다.
일본인 가옥거리의 한 카페 (사진. 김관수)
구룡포 근대역사관
일본인 가옥거리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으로 보이는 2층 건물의 일본식 목조가옥이 현재는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으로 짓고 사용했다. 전통적인 일본의 건축양식 및 생활양식과 함께 약 100여 년 전, 구룡포에서 큰 부를 축적한 한 일본인 가족의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해방 이후 개인주택으로 사용되던 것을 포항시가 매입, 수리하여 지금의 구룡포 근대역사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