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D. 샐린저(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소설입니다. 우선 제목이 사람의 마음을 끌지 않나요? 목가적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제목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말이 뭘 뜻하는지도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기대와 책을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고 합니다. 어떤 반응들이었을까요?
성인의 가식적인 세계에 저항하는 10대 '문제아' 이야기
이 소설은 한 고등학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로 전학 온 학교에서 낙제한 “문제아” 홀든 콜필드는 학교를 때려치우자고 마음먹고 무작정 학교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욕으로 갑니다. 그는 공부 기계만을 만들어내는 학교와 교사들이 싫습니다. 그는 며칠 동안 뉴욕의 뒷골목을 헤매면서 술집에도 가고 여자들과도 어울리고 옛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합니다. 홀든은 부모 몰래 집에 들어가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는 10살 난 여동생 피비를 만납니다. 그는 순진한 피비를 더없이 아낍니다. 그는 피비의 순진성을 지켜 주고 싶습니다. 타락한 성인세계로부터 동생을 지켜 주고 싶어 합니다.
홀든은 여동생 피비에게 자기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호밀밭에서 천진한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밭의 가장자리는 낭떠러지입니다. 뛰어놀던 아이들이 잘못하여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홀든은 이 아이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호밀밭은 순진성을 잃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를 상징하고 낭떠러지 밖은 어른들의 타락한 세계를 상징한다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깊이 실망한 홀든은 아이들이 그 세계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홀든의 소망을 표현합니다.
"교실 이데아"와 "더 월"
Pink Floyd – The Wall (1979) |
이 소설은 성인 독자를 겨냥하여 쓰였지만 출판된 뒤로는 10대 청소년/소녀들의 공감을 많이 샀습니다. 무엇보다 기성 체제의 가치관과 부적절한 교육 방식에 좌절감과 환멸을 느낀 10대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와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을 떠오르게 합니다. 홀든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버전이라 할 만합니다.
이 소설에 대한 두 갈래 반응
[호밀밭의 파수꾼]이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인 독자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10대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학교들에서는 이 소설을 읽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상스러운 말이 많이 나오고 음주, 흡연, 매춘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학교와 교육, 기성 도덕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교사도 이 소설을 읽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오늘날 미국의 학교에서 가장 널리 가르쳐지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10대 학생들의 좌절감과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교사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제목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원제 The Catcher in the Rye를 번역한 것입니다. 호밀은 rye를 번역한 말인데 호맥이라고도 합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밀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건너 온 것들에 ‘호’자를 붙인 것이 많습니다. 호두라든가, 호떡 같은 말이 그렇지요. 호밀은 유럽에서 빵, 맥주, 위스키의 원료나 가축 사료로 재배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주로 가축 사료나 풋거름 용도로만 재배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소설의 제목을 여러 가지로 번역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위험한 나이]라고 의역하기도 하고 다음에는 [라이밭의 파수꾼], 그리고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냥 [캐처 인 더 라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 한 가지뿐일 것입니다.
원제의 출처
The Catcher in the Rye라는 원제는 영국 시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의 노래시 “Comin’ Thro’ the Rye”에서 따온 것입니다. 홀든은 길에서 만난 어떤 아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고는 나중에 동생 피비가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번스의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밀밭에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널리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홀든은 이 노래를 잘못 인용하고 있습니다. 번스의 시에서는 If a body meet a body, comin thro’ the rye인데 그것을 If a body catch a body, comin thro’ the rye라고 기억한 것입니다. 파수꾼이 되고 싶은 생각이 기억에 영향을 미친 것이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