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방법
바람직한 가사노동 분담을 위해
양성평등 실천을 위한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가사노동이 성분업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지만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면서 가사노동은 성분업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분담의 문제로 인식되고, 가사노동의 공평한 분담은 사회적 노동에서의 차별 없는 대우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있음에도 가사와 육아 대부분을 아직도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 구조적 문제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는 가사노동의 영역에서 아직 성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잔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사노동의 바람직한 분담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에 관해 간단한 논의를 시도해 봅니다.
가사노동의 범주
가사노동이란 가정의 운영에 필요한 집안일이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노동에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여기에는 육체적인 일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일도 포함됩니다.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수유와 육아, 양육과 교육을 위한 활동도 가사노동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는 양육을 위해 시간을 내어 자식과 ‘놀아주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집에서 하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개인의 일이나 집에까지 연장된 바깥 일, 또는 집에서 이루어지지만 가정 운영과 무관한 프리랜서의 일이나 재택근무 형식의 바깥 일, 혹은 바깥일을 위한 준비는 가사노동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가사노동의 양을 계산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들
- 바깥일이 가족 생계에 기여하는 정도 (노동의 양과 시간)
- 집안일의 노동 강도와 양이 올바르게 평가될 수 있는 기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부부가 서로 잘하는 일을 스스로 맡아 하되 그 노동의 총량과 노동 시간이 비슷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방식에 서로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평등한 노동 분담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부부가 가사노동의 종류와 그것들의 노동량, 그것들의 노동 가치, 그것들을 분담하는 합리적인 방식을 따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부부가 모두 바깥 노동을 하는 경우와 한 사람만이 바깥 노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사노동 분담은 두 가지 경우에 모두 같은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담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합니다. 하나는 집 밖의 노동이 가족 생계에 기여하는 정도, 또는 그 노동의 양과 시간입니다. 가사노동의 분담은 가족 생존을 위한 노동의 총량과 관련지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고려 사항은 집안일들의 노동 강도와 양이 올바로 평가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부부의 공감과 합의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집 밖의 노동이 가족 생계와 가정 운영에 기여하는 정도를 따질 때 임금의 액수나 사업 이익이 적절한 기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적 노동의 상황에서 여성의 노동 가치가 정당하고 평등한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회적 노동의 가치는 임금의 액수나 사업 이익으로 환산됩니다. 그러나 성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같은 수준과 같은 시간의 노동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수가 많습니다.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적 노동의 가치는 시장이 결정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높고 노동량이 많은 직업이라 하더라도 노동강도가 낮고 노동량이 적은 직업보다 낮은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장 원리와 성차별적 구조에 바탕을 둔 노동가치의 평가 결과라 할 수 있는 임금 액수나 사업 이익으로 가족 생계를 위한 기여도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생계를 위한 바깥 노동의 기여도는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의 액수나 사업 이익보다 노동강도와 노동량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만이 바깥 노동을 하는 경우에는 집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가사노동을 주로 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분업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같은 시간 동안의 바깥 노동의 양과 가사노동의 양을 비교하여 고려하여야 합니다. 그 양이 비슷하다면 바깥 노동자는 집에 머무는 시간에 요구되는 가사노동을 분담하여야 합니다. 바깥 노동의 양이 많을 때는 가사노동의 양을 적절히 줄여주어야 합니다.
이견의 요소 (1) 가정 운영에 꼭 필요한 일인가, 아니면 취향인가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담에 동의한 부부라 하더라도 무엇이 가정 운영을 위해 필요한 노동이고, 또 어느 수준의 노동량이 필요한가를 두고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가정 운영에 필요한 일과 취향에 관계된 일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습니다. 가령 정원 가꾸기나 화분 관리 같은 일이 가족의 삶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그냥 취향에 지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놀이’라고 여길 수 있고 ‘일’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일만을 가사노동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수준의 가정환경을 조성하는 일까지 가사노동으로 볼 것인가는 부부의 합의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의 수준을 두고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집안의 청결을 유지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청소를 일주일에 몇 번 해야 하느냐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청결이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은 매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은 섭생과 식도락을 중시하고 한쪽은 그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준 높은 섭생과 식도락을 위해서는 많은 노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섭생과 식도락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필요한 노동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곳에 투여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생존의 필요보다 개인의 취향과 관계된 것이라 여겨질 것입니다.
이견의 요소 (2) 개인의 삶에 중요한 일이면서 대신해 줄 수 없는 일들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면서 개인의 삶에는 중요한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이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령 독서 같은 일이 그렇습니다. 독서를 취향을 넘어서 삶의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집안의 청결이나 한 끼의 맛 좋은 식사보다 한 시간의 독서를 더 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또한 규칙적인 운동을 삶에 필수적인 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때로는 독서와 운동이 직업의 필요에 따라 집에서도 일정 시간 동안 꼭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어떤 일이 한 사람의 삶에 중요한 일이 될 때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는 일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가치 판단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
삶의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한 부부는 이런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취향과 가치관이 다른 부부의 경우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양성평등의 가치관이 다르지 않다면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운영에 꼭 필요한 일의 종류와 일의 수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러하지 않고서는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담에 대한 의견에서 접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부부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선 상대방의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하면서 가정 운영에 필요한 가사노동의 종류를 최소화합니다. 이때 부부는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의 문제를 떠나 생존에 필요한 노동의 일반적인 기준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부부가 서로 논의와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합의에 이를 수 없다면 양성평등에 진정한 관심을 가졌는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가사노동의 종류와 양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 합의의 기준을 침해할 수 있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취향에 관계된 일은 가족과 가정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희생하기 어렵다면 가사노동에서 상대방의 몫을 줄여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안으로는 가사노동을 줄여 줄 수 있는 기계나 설비의 구매, 가사도우미나 육아도우미의 고용, 육아나 교육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시설이나 제도의 이용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가사노동의 종류를 정하고 그 노동의 수준을 정하는 일은 다음의 과정을 따릅니다.
가사노동 목록을 작성하고, 노동량을 계산하고, 노동 수준을 정하기
1. 가사노동의 목록을 만듭니다. 일반적인 가사노동의 유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음식 만들기, 설거지, 집안 대청소, 간이청소, 화장실 청소, 쓰레기 버리기, 세탁, 세탁물 정돈, 고장난 가구나 기계류 수리하기, 아이 수유, 아이 밥 먹이기, 아이 대소변 처리, 아이 병원 가기, 아이와 놀아주기, 아이 교육하기, 아이 등하교시키기, 학부모행사 참가하기, 주민행사 참석하기, 정원 돌보기, 화분 관리하기, 애완동물 돌보기, 은행업무, 시장 보기, 물건 사기, 가계부 쓰기 등.
2. 각각의 일에 필요한 노동량을 계산하여 수치화하고 노동 수준을 정합니다.
노동량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서는 노동강도와 노동 시간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노동강도는 정확한 측정이 어려우므로 대개의 경우 노동 시간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무난합니다. 하지만 집안대청소와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일의 노동량을 시간으로만 정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량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일에는 가중 점수를 줍니다. 두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싫어하는 일에 적절한 가중치를 줍니다. 그런 다음 각각의 일을 일정 기간 안에 몇 번이나 되풀이할 필요가 있는지 합의하여 노동 수준을 정합니다.
3. 총 노동량과 노동 시간이 비슷해지도록 함께 할 일과 따로 할 일을 정합니다.
노동량을 기계적으로 나누어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효율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소질에 따라 더 잘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청소는 청결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고 음식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잘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은 함께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고, 어떤 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가사노동 분담은 좋아하는 일보다는 서로 하기 싫어하지만 두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동의하는 일에 투여되는 시간과 노동의 양을 효율성을 고려하여 균등하게 분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가사노동을 대신 해 줄 방법을 찾기
경제적 여유가 있고 양성이 동의할 때는 부부의 가사노동을 대신해 주거나 줄여줄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깥 노동의 과중으로 가사노동을 위한 시간이나 체력이 모자랄 때는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대신 매식을 하거나 요리된 음식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또는 필요할 때마다, 혹은 정기적으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여 음식 마련이나 청소를 대신해 주도록 할 수 있습니다. 육아를 위한 시간이 부족할 때는 육아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서는 어린이집이나 공공 교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