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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째 시즌 보내는 한송이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2002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됐던 그는 어느덧 21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길고 길었던 세월을 코트 위에서 보낸 만큼 수많은 기록을 달성했다. KGC인삼공사 한송이의 이야기다. 20번의 시즌을 치르는 동안 그가 겪었던 일들과 세웠던 기록은 물론 일상까지도 온라인 플랫폼에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송이가 직접 지난 기록들을 뒤돌아보고 많은 정보들을 읽으면서 ‘팩트체크’를 했다.


2002년 1라운드 1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한 한송이는 데뷔 시즌 신인왕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꾸준함의 대명사가 됐다. V-리그 출범 이후에는 2005시즌, 2008-2009시즌을 제외하고 20경기 이상씩 출전하고 있다.


쉽지 않은 포지션 변경도 경험했다. 데뷔 이후 줄곧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하던 한송이는 GS칼텍스 소속이던 2014-2015시즌 미들블로커로 포지션을 바꿨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한송이 특유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스스로 올라갔다. 어느덧 만 38세의 베테랑이 되었지만, 여전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만하다.

2001년 데뷔 후 21번째 시즌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죠”

<더스파이크>와 1년 반 만에 단독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오랜만에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서 좋네요. 이 콘텐츠가 베테랑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뽑힌 것만으로도 영광이에요. 배구를 오래 했지만 아직까지도 찾아주시니까 감사하죠.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출신입니다. 당시 기억이 나는지.

그때는 지금처럼 구슬 뽑은 순서대로 하는 게 아니라 최하위부터 지명을 하는 거였어요. 이변이 일어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사실 도로공사에 일주일 정도 먼저 가서 합숙하면서 훈련하고 있었어요. 드래프트에 갈 때는 코칭스태프 차 타고 같이 이동했죠(웃음).


데뷔 시즌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시즌을 돌아보면 어땠나요.

어려웠어요. 사실 경기를 많이 뛰지는 않았어요. 잘하는 언니들도 많았고 기량도 많이 부족한 실력이었거든요. 그럼에도 감독님께서 기회를 조금씩 주셨어요. 근데 첫 득점을 기록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언니들이 올려줘서 공격해도 득점이 안 나더라고요. 그러다 세 번째 경기 때 첫 득점을 하니까 그때부터는 잘 풀렸어요. 지금 뒤돌아보면 ‘1득점 하기 정말 어려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덧 21번째 시즌입니다. 시간이 빠르지는 않나요.

엄청 빠르죠. 예전에는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렇게 길게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친구들한테 ‘너희 앞으로 15년은 더 해야 돼’라고 하면 애들이 질색팔색을 해요. 근데 다들 그렇게 할 거예요(웃음). 15년이라는 시간을 봤을 때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한해, 한해 하다 보면 15년이 되거든요. 지금 어린 선수들도 나중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언니(한유미) 따라 시작했어요. 언니가 초등학교 때 먼저 배구를 시작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방과 후에 언니 따라다니다가 공도 줍고 했었어요. 그러다 팀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서 배구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유일무이한 외국인 선수들을 제치고 차지한 국내 선수 득점왕

2007-2008시즌에는 득점왕을 차지했어요.

운이 좋았죠. 선수로서 기량이 많이 올라와 있을 때였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때마침 팀에 외국인 선수가 빠지게 됐고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공격도 많이 하게 되고 리시브보다는 공격을 우선적으로 했어요. 주변에서 만들어준 득점왕이에요.


외국인 선수제 도입 이후 토종 선수가 득점왕을 차지한 유일한 기록입니다.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시에도 좋은 외국인 선수가 많았어요. 되돌아보면 ‘그때는 공격을 잘했었구나’라는 생각도 해요. 사실 공격을 진짜 많이 했어요. 지금 외국인 선수들보다 더 높은 공격 점유율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득점도 많이 했죠. 물론 범실도 정말 많았어요(웃음).


국내 선수 중 4번째로 많은 득점 기록인데.

프로 생활을 오래 했지만, 아직 첫 번째인 기록은 없어요. 하지만 많은 기록 상위권에 이름을 남기고 있어요. 예전에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디그, 공격 부문에도 이름이 있고, 블로킹에도 이름이 있어요. 여러 부분에 골고루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까 내가 해온 배구 역사 같아요. 이거는 계속 남는 거잖아요. 세월이 흘러도 역대 몇 호로 남는 거니까 의미가 깊죠.


아웃사이드 히터에서 미들블로커로 포지션 변경을 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사실 내 의지로 포지션 변경을 한 게 아니다 보니 힘들었죠. 아웃사이드 히터 훈련과 미들블로커 훈련은 전혀 다르거든요. 처음에는 두 훈련을 병행하다 보니까 해야 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미들블로커에 적응하기까지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윙 폼이 바뀌면서 몸에 부상도 많이 왔어요. 그런데 이후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어느 자리라도 좋으니까 코트에 나서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팀에 서남원 감독님이 부임하시고 나서 “나는 너를 믿어. 잘해줄 걸 알아”라고 믿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책임감을 느끼고 미들블로커에 전념할 수 있었죠.


미들블로커와 아웃사이드 히터 두 포지션 모두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

아웃사이드 히터는 역할이 제일 많은 포지션이에요. 리시브와 수비도 해야 하고 어려운 공을 많이 공격해야 해요. 하지만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포지션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도 많이 되죠. 미들블로커는 공격, 블로킹이 중점이에요. 미들블로커가 재밌을 때는 상대를 속이거나 상태 세터의 패스를 예측해서 움직였는데 딱 맞았을 때 희열감도 느끼죠. 그만큼 많이 생각도 하고 분석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죠.


다시 아웃사이드 히터를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사실 체력적인 문제가 없고 컨디션이 괜찮다면 지금도 아웃사이드 히터를 제일 좋아해요.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파워도 많이 떨어지고 스윙폼도 바뀌었잖아요(웃음).

한송이 선수 특유의 서브 루틴이 있잖아요.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어쩌다 그걸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그냥 내게 주어진 8초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가려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코치님들도 “서브 천천히 때려, 시간 갖고 때려”라고 하시는데 내가 초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까 마음이 급해지면 범실이 많아지잖아요. 좀 더 신중하게 하고 싶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렇게 됐어요. 이제는 안 하면 어색해요(웃음).


서브에도 강점이 많은데.

목적타에 중점을 둔 서브여서 너무 약한 것 같아요(웃음). 대신 범실이 적고, 내가 보내고자 하는 쪽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죠. 우리 팀에는 강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범실을 줄이고 작전대로 목적한 곳에 넣는 서브를 하고 있습니다. (출정식 때 팀 서브 1위를 했는데.) (KGC인삼공사는 출정식 때 서브로 콘을 맞추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내가 맞출 줄 알았어요(웃음). 평소 잘 때리는 코스였거든요.


“영감 줄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한유미 해설위원과 자매 배구선수로 유명한데 자매가 함께 프로선수라는 게 장단점이 있는지.

단점은 서로를 상대로 만나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나랑 언니랑 같은 포지션이었다 보니까 서로의 공격을 막고 서로에게 서브도 했어요. 그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장점은 내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 언니에게 세세한 기술적인 부분도 공유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배구 외적인 얘기지만 평소 유기견 보호에도 관심이 많죠.

동물을 아주 좋아해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여러 단체를 후원하고 있어요. 그전에는 유기견에 대한 인식이 없다가 SNS에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서 보게 됐는데 그런 상황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후원, 봉사를 하게 됐어요. 후원은 많이 했었는데 봉사는 올해 처음 가봤어요. 같이 하는 단체 분들이랑 다녀왔는데, 가서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예쁜 아이들인데 아픈 기억이 있는 아이들이라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 경기는.

대표팀에서는 2012 런던올림픽이 인생 경기였지 않나 싶어요. 소속 팀 경기 중에서는 두 시즌 전에 우리가 5연승을 할 때가 있었어요. 현대건설과 경기였는데 당시 현대건설은 지금처럼 거의 무적이었어요. 근데 우리가 현대건설 홈 경기장에서 3-1로 승리했어요. 그때 팀에 디우프 선수가 있었는데 그날은 디우프 선수보다 토종 선수들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같이 힘을 내서 이겼던 경기라 그 경기가 많이 생각나요.


남은 배구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가 있다면.

첫 번째는 팀이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우승하면 그것보다 좋은 상황은 없겠지만 꼭 우승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오프,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큰 부상 없이 마무리하고 같이 있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선수로 남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한송이 선수의 기록과 정보를 함께 알아봤습니다.

돌아보면서 오래 했다고 느꼈어요. 앞으로 남은 배구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기록들은 남기고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아직 도전할 수 있는 기록들이 몇 개 있으니까 그 기록들은 이루고 싶어요. 기록은 영원히 남는 거잖아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좋은 배구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팬들에게 하고픈 얘기는.

올림픽 이후로 더 많은 팬분들이 생겼는데 감사드리고 팬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려야 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내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팬분들이에요. 받았던 사랑을 좋은 경기력으로 돌려드릴 수 있게 열심히 준비할 테니 지금처럼 항상 응원 많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와 우리 팀 선수들, 패할 때나 이길 때나 변함없이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글. 박혜성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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