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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 장윤희 감독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장윤희는 없었겠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발리볼데이트를 통해 배구 인생을 묵묵히 개척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짱돌’이라는 애교스러운 별명을 가진 서울 중앙여고 장윤희 감독을 만나봤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전북 남원 출신의 장윤희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 신경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때 먼저 접한 종목은 육상이었다. 이후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배구 선수 제안을 받았다. 그 당시 장윤희 감독은 빼빼 마른 몸이었다. 부모님은 반대했다. 부모님은 딸 장윤희가 약해 보여서 운동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오랜 설득 끝에서야 배구공을 잡을 수 있었다.


중·고교 시절 선수 장윤희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남원에서 지내다 타지인 전주의 근영여중으로 진학하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장윤희 감독은 “그때는 운동이 싫어서 팀에서 이탈을 많이 했다. 중학교 1, 2학년 때까지 그러다가 3학년 때 자리를 잡았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어 “단체생활이나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전주까지 오셔서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셨다”면서 “주변에서 다들 ‘엄마 덕이다’고 말하신다. 그때 엄마가 잡아주지 않으셨다면 평범한 학생이 됐을 거다”고 털어놓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어머니가 잡아준 손 덕분에 지금의 장윤희가 나올 수 있었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부쩍 늘어난 요즘이다. 장윤희 감독은 “지금은 내 아이들도 배구를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울면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내가 겪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엄마는 정말 힘들었겠다고 느꼈다”며 “늘 고마움은 간직하고 있었다. 다만 말로 표현을 못 했다. 철없는 행동을 했던 게 미안했다.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현명한 어머니 덕분에 중학교 생활을 버틴 장윤희 감독은 고교 시절부터 악바리가 됐다.

키 작은 장윤희가 버틸 수 있던 힘은?

장윤희 감독은 근영여고 1학년 때부터 출전 기회를 얻었다. 주변의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코트에서 실력을 증명하고자 했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장윤희 감독은 “개인 훈련을 엄청나게 했다. 특히 점프 운동에 집중했다. 코트에서 배구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내 성격상 언니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배구를 잘해서 내 가치를 증명해보고 싶었다”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장 감독은 “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했다. 내 역할이 생겼을 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했고,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며 힘줘 말했다.


배구 선수로는 신장이 크지 않았던 장윤희 감독은 체공력과 스피드 키우기에 노력했다. 그는 비결로 “줄넘기를 많이 했다. 또 예전에는 학교 체육관에 무대 같은 게 있었다. 제자리에서 뛰어서 그 무대까지 올라가는 연습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발목에 힘도 생기고, 마지막에 도약하는 힘이 점점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노력 덕분에 장윤희 감독은 1988년 실업팀 호남정유에 입단, 전설적인 팀의 일원이 되면서 한국 여자배구의 판도를 바꿨다. 김철용 감독 지휘 아래 장윤희를 앞세워 높이가 아닌 스피드 위주의 배구를 펼쳤다. 호남정유-LG정유는 1990-1991시즌부터 9연패 달성에 성공했다.


이뿐만 아니다. 장윤희 감독은 태극마크를 달고 펄펄 날았다. 1994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 해다. 당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세계선수권 4위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장윤희 감독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지금은 해프닝으로 떠올릴 추억도 쌓고 왔다.


1994년 세계선수권은 브라질에서 개최됐다. 한국은 브라질, 독일, 루마니아와 함께 A조였다. 첫 상대는 독일이었다. 하지만 독일전에서 장윤희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때아닌 성별 논란에 휩싸인 것. 장윤희 감독은 “경기장에서 독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내가 경기에 못 뛴다는 것이다. 당시 김철용 감독님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까지도 뛰었던 선수라면서 항의를 했지만 결국 내가 빠졌다”고 기억했다. “즉시 경기장을 떠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을 돌아다녔다. 소변검사, 초음파 등등 여러 검사를 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우리가 2-3으로 졌다.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검사 결과 이상은 없었고, 장윤희 감독은 다시 뛸 수 있었다. 그는 “당시 한국 스포츠신문 1면 톱 기사로 내 이야기가 나왔다. 가족들도 걱정하고 그랬다”며 “그래서 1994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신장의 한계, 한국 여자배구 극복 가능하다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를 누렸던 장윤희 감독은 2021년 서울 중앙여고 지휘봉을 잡았다. 2022년에는 한국 U18 여자배구대표팀 사령탑이 됐다. 지금은 아마추어 현장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장윤희 감독은 “최근 U18, U20 경기들을 살펴보면 일본, 태국, 필리핀 등은 대표팀이 똑같은 배구를 하고 있더라. 그만큼 지도자들이 똑같은 기본기나 배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며 “한국의 경우 신장이 좋아지는 건 맞다. 기술적으로도 월등하다고 생각하지만, 기본기가 떨어진다. 조화가 잘 이뤄줘야 한다”며 현주소를 진단했다.


우리 배구는 아시아권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일본과 항상 비교될 수밖에 없다. 장윤희 감독은 “지금 한국배구는 신장을 먼저 본다. 공격형 배구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우리의 옛날 배구를 하고 있다. 키가 작아서 블로킹이 되지 않더라도 수비로 버틴다. 일본의 빠른 패턴 플레이를 보면 정말 배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일본과 비교하면 배구 저변의 차이가 큰 것은 사실이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고충도 있다. 장윤희 감독은 “사실 기본기를 잘 가르치는 게 쉽지 않다. 기본기를 쌓는 것 자체가 힘든 훈련이다. 배구를 처음 하다 보면 멍도 든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이를 반복해서 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아무래도 팀 성적이 나야 지도자들도 버틴다. 기본기보다는 성적 중심이 되다 보니 공격형 배구를 하게 된다. 즉 받는 것보다 때리는 것 위주로 한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또 “운동하는 학생들의 학업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훈련 시간도 예전보다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짧은 시간에 선수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윤희 감독은 딸과 아들도 배구를 하고 있다. 덕분에 학부모의 마음도 잘 헤아리고 있다. 그는 “나부터라도 키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 아이가 더 컸으면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김연경, 김수지, 양효진 등이 은퇴한 가운데 세대교체 과정에 놓여있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장윤희 감독은 “어느 팀이든 세대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준비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모든 배구인이 한국배구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짱돌이라 불린 이유는?

장윤희 감독에게 붙은 별명 중 하나는 짱돌이다. 큰 자갈돌을 짱돌이라고 한다.


그는 왜 짱돌이라고 불렸을까. 장 감독은 “호남정유 입단하자마자 김철용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단단한 돌이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장윤희 하면 짱돌인 것 같다. 오래 간직했던 별명인 만큼 애정이 간다”고 전했다.


그가 생각하는 후배 ‘짱돌’은 누구인지 물었다. 장윤희 감독은 “이소영 선수를 지켜보게 됐다. 신장이 176cm라 해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에 속한다. 나랑 비슷한 배구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GS칼텍스에 오래 있던 선수라 호남정유 멤버들과 교류도 잦아서 인연이 있었다. U23 대표팀에서 내가 코치였을 때도 만난 적이 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아웃사이드 히터 이소영은 현재 KGC인삼공사로 이적했지만, 빠르고 기술력이 좋아 안정적인 공격수라 평가를 받는다. 장윤희 감독이 이소영을 언급한 이유다.

‘엄마’ 장윤희

장윤희 감독의 첫째 딸 이윤주는 세터로 2018년 V-리그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5순위로 IBK기업은행에 입단했다. 2019년 자유신분 선수가 됐고, 2020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현재는 시카고주립대에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 중이다.


장 감독은 “운동을 즐기는 아이는 아니다. 성향이 나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배구를 시작했고, 또 공부를 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충분히 즐겼으면 한다”면서 “이제 선수로서 성장은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충분히 많은 경험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있다”고 전했다. 둘째 아들 이은석은 송산중학교에서 배구를 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즐길 줄 안다. 열정이 넘친다. 국내의 모든 경기를 찾아서 다시 볼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둘째는 이제 시작이다. 부담을 갖지 말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누나처럼 프로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길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욕심이 있다. 목표가 확실하다. 옆에서 잘 도와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장윤희의 딸, 아들로 지내야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장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배구한다고 하면 ‘엄마보다 잘해야지’라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아이들이 그때는 내가 어떤 선수였는지 몰랐는데 크면서 서서히 알아갔던 것 같다. 엄마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도 더 조심하더라. 미안했다”면서 스타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안타까움도 털어놓았다.


자신과 똑같이 배구 인생을 걷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배구 선수로 시작해 배구 감독, 해설위원, 배구 선수의 부모로서 여전히 배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장윤희 감독이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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