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세기를 앞서 나간 천재 작가
미친 술주정뱅이 혹은 천재적인 추리소설 작가. 『모르그 가의 살인』,『황금벌레』, 『검은 고양이』 등의 단편소설로 이름을 알린 에드거 앨런 포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미국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듣기 좋은 노래만 읊어대는 사람”이라고 그를 비웃었지만 프랑스 앙드레 지드는 “유일하게 흠잡을데 없는 장인”이라는 평을 내렸다. 에드거 앨런 포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로, 집필을 통해 생활하려고 마음먹은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였다. 또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악귀 같은 분노가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더 이상 나는 없었다.
본연의 영혼은 내 몸을 떠나 버리고, 술기운에 더욱 악랄해진
마성이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중략)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두려움과 참회의 염이 일기는 했으나,
기껏해야 미미하고 모호한 감정에 불과했다.
영혼의 고통 따위는 없었다.
나는 다시 폭음에 빠져들고 악행의 기억 또한
와인 속에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검은 고양이』 중
가난을 벗으로 둔 로맨티스트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 1월 19일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배우였던 부모는 출산 당시 공연하고 있던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의 등장인물에서 그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에드거 앨런 포가 태어나고 일 년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아들과 부인을 버리고 떠났고 곧이어 어머니는 그를 남겨둔 채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후 에드거 앨런 포는 상인이었던 존 앨런의 양자로 들어가지만, 성장할수록 양아버지와 불화가 심해져 도박과 술에 빠지게 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양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진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홀로서기를 감행했다. 죽음과 암울한 소재를 독특한 형식으로 다룬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대공황으로 사정이 어려웠던 출판사는 그에게 제대로 된 원고료를 주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대표작인 시 「갈가마귀」를 발표하고 받은 고료는 고작 9달러였다. 가난이 그의 인생 대부분을 따라다녔다. 아내이자 사촌인 버지니아 클렘과의 사이는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행복도 십 년 남짓뿐이었다. 아내가 폐결핵으로 죽은 후 술에 의존하던 에드거 앨런 포의 상태는 겉잡을 수 없이 망가졌다.
사실 에드거 앨런 포는 굉장히 로맨틱한 남자로, 아내가 죽은 후 발표한 시 「애너밸 리」와 「갈가마귀」에서는 그녀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에서는 그와 아내 사이를 갈라놓은 ‘죽음’이 도드라지면서도 두 사람의 영원을 기원하고 있어 애절함이 더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아름다운 여성의 죽음’은 아내를 잃은 경험과 그의 인생에서 이뤄지지 못했던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결국 아내가 죽은 후 2년 만인 1849년 10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죽음까지 미스터리한 남자
에드거 앨런 포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도는데,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더 레이븐>에서는 에드거 앨런 포가 죽기 직전 사라진 5일의 행적을 그렸다. 영화에서 에드거 앨런 포는 자신의 소설에 나왔던 사건들이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목격하고 사랑하는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소설을 집필한다. 현실을 반영한 영화에서도 에드거 앨런 포는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영화가 명백하게 사인을 밝힌 반면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스무 건이 넘는 가설이 존재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쿠핑’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쿠핑은 부정 선거자에게 고용된 깡패들이 행려자를 붙잡아 심신미약 상태로 만들고 억지로 투표를 시킨 범죄 행위다. 술이 잔뜩 취한 에드거 앨런 포가 쿠핑을 당한 후 길거리에 내버려져 죽었다는 설이다. 또 자신이 성불구자임을 알고 충격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설이나 생전 ‘악마의 술’이라고 불리는 독주 압생트를 즐겨 마셔 알코올 중독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체가 필요했던 한 의대생이 그의 무덤을 파 시신을 훔쳐가 시신이 없다는 황당한 풍문도 전해 내려온다.
죽음 이후에도 에드거 앨런 포는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평론가 그리스월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유고집을 발간하면서 근거 없는 소문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다. 그리스월드는 해당 글에서 에드거 앨런 포를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미치광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그의 편지까지 공개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고집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훗날 그리스월드가 공개한 그의 편지는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고, 마약중독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에드거 앨런 포에게 영향을 받은 예술인
패션계의 에드거 앨런 포, 알렉산더 맥퀸
한때 차승원과 공효진, 장근석이 멋스럽게 목에 두른 해골 모양의 스카프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이 디자인은 패션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작품으로, 그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이용해 섬뜩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스스로를 로맨틱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알렉산더 매퀸은 특유의 예술 세계를 바탕으로 음울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탄생시켰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열린 회고전에서는 뱀파이어나 가죽 의상 등을 이용한 작품이 공개됐는데, 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생전 알렉산더 매퀸은 스스로 ‘패션계의 에드거 앨런 포’라고도 부르며, 어둡고 기괴스러운 자신의 성향이 에드거 앨런 포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일본 추리소설의 창시자, 에드가와 란포
에드거 앨런 포에서 자신의 필명을 따온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의 창시자다. 그의 첫 단편소설 『2전짜리 동전』은 암호 해독을 주로 다룬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황금벌레』에서 영향을 받았다. 에도가와 란포의 탐정소설 『D언덕의 살인사건』과 『심리실험』에서 일본 문학 최초의 사립탐정 캐릭터 ‘아케치 고고로’가 탄생했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만의 문학적인 영역을 개척했는데, 범행 동기를 비롯한 범죄 심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에서는 그만의 색을 보여줬다. 일본 유명 추리만화 『소년 탐장 김전일』에서 주인공 김전일의 경쟁 상대 ‘아케치 켄고’는 에도가와 란포가 만들어낸 아케치 고고로를 향한 헌정의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명탐정 코난』에서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은 에도가와 란포에서 나왔으며, 사설탐정인 ‘모리 고고로’는 아케치 고고로에서 따왔다.
글 박보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2호 2016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