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밌는 '위키드'
뮤지컬 <위키드>가 지난 3월 브로드웨이 누적 입장 판매 수익 10억 달러를 넘겼다. 그 전까지 10억 달러를 넘긴 작품은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두 작품뿐이었다. 2006년 <위키드>는 그동안 <프로듀서스>가 달성한 주간 박스 오피스 기록을 깬 이후 자신의 기록을 수차례 갱신하며 브로드웨이에서도 최고의 흥행 뮤지컬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디즈니의 뮤지컬처럼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오페라의 유령>처럼 시종일관 화려한 무대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단순한 스토리 안에는 사회를 풍자하고 선과 악, 역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콘텐츠인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이자 시퀄로서 각 캐릭터들의 탄생 비화를 들려주어서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재미를 준다. 스티븐 슈월츠의 음악은 또 어떤가. ‘What Is This Feeling?’이나 ‘Defying Gravity’는 이야기 전개 과정에 더욱 감동을 주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노래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 즐길 수 있다 해도 감동을 받는데, 뮤지컬 <위키드>는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위키드>가 거듭 주간 박스 오피스 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던 이유다. 2013년 국내에서 라이선스 공연이 첫선을 보인 후 3년 만에 그때의 감동으로 돌아온다. 공연에 앞서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팁을 소개한다.
'오즈의 마법사'의 탄생 비화
뮤지컬의 원작은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사악한 서쪽 마녀의 생애(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이다. 원작 소설은 1900년에 발표된 프랭크 바움의 소설과 이를 영화화한 1939년작 <오즈의 마법사>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만들었다. 머과이어의 소설에서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서쪽의 녹색 마녀와 착한 북쪽 마녀가 동창이었으며, 우리가 사악한 마녀로 알고 있는 녹색 마녀는 사실 정의로운 마녀였다고 말한다. 서쪽의 사악한 녹색 마녀에게는 엘파바(Elphaba)란 이름을, 북쪽의 착한 하얀 마녀에게는 글린다(이전 이름 갈린다)란 이름을 붙이는데, ‘Elphaba’라는 이름은 이 모든 이야기의 원작자인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앞 글자만 가져와 만든 것이다. 이외에도 <오즈의 마법사>에 숨겨진 비화를 흥미로운 상상력을 곁들여 들려준다.
뮤지컬 <위키드>에는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보다 더 많은 <오즈의 마법사>의 인물들의 탄생 비하가 담겨있다. 도로시가 받은 동쪽 마녀의 구두에 얽힌 사연이나, 서쪽 마녀가 물 한 동이에 사라지게 된다는 소문의 실체를 들려준다. 특히 2막은 <오즈의 마법사>의 다양한 인물들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도로시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만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오즈의 마법사의 정체이다. 원작에서는 기구를 타고 날아온 평범한 인간으로 등장하는데, 뮤지컬에서는 엘파바와 얽힌 관계를 설정해 두었다.
우정을 넘은 시스터 로맨스
머과이어의 소설은 사악한 마녀와 착한 마녀의 원래 모습과 오즈의 마법사가 벌이는 음모, 이에 대항하는 엘파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시즈 대학 동기들을 비롯 좀 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말하는 동물들을 억압하려는 음모와 이에 맞서는 엘파바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뮤지컬 <위키드>에서도 편견에 저항하는 장면이 담겨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에 집중한다.
엘파바는 녹색 피부 때문에 주위로부터 오해를 사고 배척당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오즈 대학에서 탁월한 마법사의 재능을 지닌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 불의에 도전하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반면 글린다는 실제 재능은 없지만 지나치게 낙천적인 성격에 외모 꾸미기를 좋아하고 인기가 많다. 글린다는 어떤 곳에서도 자신이 주목을 받아야 하는 다소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모든 인물들을 자기 식으로 부르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심지어 보크가 여러 번 잘못을 지적했지만 매번 ‘벅’이라 부른다. 엘파바는 계집애 같다는 이유로 싫어하지만 제멋대로 ‘엘피’라 부르고 자신은 ‘갈린다’ 그대로 부르라고 정한다. 2막에서도 그런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등장하지는 않지만 갇혀 있는 도로시의 강아지 토토를 ‘도도’라 불러 원작을 잘 아는 이들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이런 그녀이기에 피에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갈린다’에서 ‘글린다’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그녀로서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짐작케 한다.
<위키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로만 본다면 너무 다른 서로를 경계하는 ‘What Is This Feeling?’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가까워지는 ‘Popular’를 거쳐, 다름을 받아들이고 우정이 성숙해지는 ‘For Good’으로 진행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What Is This Feeling?’이라는 곡이다. 쉬즈 대학에 입학해 룸메이트가 된 엘파바와 글린다가 각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며 자신의 이상한 룸메이트를 소개하는 노래이다.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노래인데, 글린다는 엘파바를 “별난 데다가 이상한 성격에 엄청 조용하고 고지식한 아이”라고 화려한 수사를 붙여 소개하는 반면, 엘파바는 “금발이야”라는 한 마디로 글린다의 핵심을 짚어낸다. 문맥상으로는 서로를 참 이상한 애로 여기는 곡이지만 노랫말은 이렇다. ‘널 보는 순간 느낀 기분, 심장이 두근두근, 머리가 어질어질, 얼굴이 붉어져’(I felt the moment I laid eyes on you!/ My pulse is rushing/ My head is reeling/ My face is flushing). 상황과 다르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들을 가사로 사용한 것이다. 시스터 로맨스라고 해야 할까. 엘파바와 글린다는 피에로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지만, 둘 사이에는 은근한 동성애 코드가 깔려 있다.
편견을 넘어
머과이어의 소설은 사악한 녹색 마녀가 원래는 사악하지 않고 녹색 피부 때문에 의심을 받은 것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르다는 이유로 ‘악’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태도는 말하는 동물들을 억압하는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오즈의 세계에는 말을 하는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동물이 하나의 인종처럼 공존하는 세계이다. 심지어 역사를 가르치는 딜라몬트 교수는 염소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즈에서 동물들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위키드>는 우리가 규정한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악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1막 마지막 곡 ‘Defying Gravity’는 이러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드러낸 노래다.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시원한 고음으로 불러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는 곡이기도 하다. 곡 제목과 동일한 ‘중력을 벗어나’라는 가사가 반복되는데 이는 하늘을 나는 물리적인 상황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모든 편견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엘파바는 마법사를 만나 이런 모든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꿈꾼다. 그런 소망을 담은 노래가 ‘Wizard And I’이다. 이 노래에 ‘Unlimited, My future is unlimited(한계는 없어, 내 미래에 한계는 없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Unlimited’의 소절은 이 노래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2막 마지막 부분 ‘For Good’을 부르기 전 엘파바는 같은 멜로디를 가사만 바꿔서 ‘I'm limited’(이젠 한계야)라고 노래한다. 편견에 대항하던 엘파바는 2막부터는 급격히 후퇴하고 결국엔 이에 맞서 싸우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끝까지 투쟁하는 엘파바의 모습이 강조되지만 뮤지컬에서는 이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해 원작인 <오즈의 마법사>의 비화나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에 집중한다. 흥미로운 것은 편견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Unlimited’의 멜로디가 원작 영화의 대표곡인 ‘Over the Rainbow’의 첫 일곱 음 ‘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리듬을 차용했다는 점이다.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원작의 향수가 담긴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위키드>의 포스터에도 잘 드러난다. 검은 모자를 눌러 쓰고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은 듯 미소 짓고 있는 엘파바와, 한쪽 손을 가리고 귓속말을 하고 있는 글린다의 옆얼굴을 포개 놓은 것이 <위키드>의 포스터이다. 이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엘파바는 눈이 가려진 채, 코와 입을 드러내고 있고, 글린다는 코와 입은 손에 가려 눈만 보인다. 둘을 합쳐야 눈, 코, 입이 온전해진다. 즉, 이 포스터는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나와 다른 것이 더해져야 세상이 온전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16년 '위키드'
2003년 초연 공연에 출연해 뛰어난 가창력으로 존재감을 높인 엘파바 박혜나, 더 이상의 적역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글린다 정선아가 이번 공연에도 함께한다. 옥주현과 김보경이 하차한 자리를 차지연 엘파바와, 아이비 글린다가 대신한다. 차지연은 이미 초연 때부터 엘파바 역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배우였다. 아이비 역시 <시카고>, <유린타운> 등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글린다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한 대구 공연에서 이미 증명됐다. 배역과 드라마를 이해하는 힘이 더욱 깊어진 박혜나, 정선아의 공연은 물론, 새로운 캐스팅에 대한 호평들이 잇따랐다. 피에로 역에는 수려한 외모로 여심을 흔드는 <레 미제라블>의 앙졸라 민우혁, 첫 대극장 뮤지컬에 도전하는 실력 있는 신예 고은성이 출연한다. 오즈의 마법사의 남경주, 이상준, 모리블 학장의 김영주, 이정화, 네사로즈의 이예은, 보크의 이우종 등 초연 멤버와 새로운 멤버가 조화를 이뤄 편견을 없애고 우정을 이루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완성한다.
7월 12일~8월 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577-3363
글 박병성
사진제공 클립서비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