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프랑켄슈타인' 초연 재공연 비교
화제의 재연작, 초연과 어떻게 달라졌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프랑켄슈타인>
음악과 드라마 색깔 바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국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프랑스 뮤지컬로 초연 당시 관심을 받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연출이 바뀌면서 기존 버전을 대대적으로 쇄신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변화는 오케스트라와 라이브 반주가 추가된 것.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녹음한 음악을 사용하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 그대로 초연에서는 MR을 사용했지만, 재연에서는 라이브 오케스트라를 편성해 현장감과 생동감 있는 사운드를 전달하려고 했다. 뮤지컬 넘버도 전체적으로 다듬어졌다. 레트가 남자들과 충돌하는 장면에서 ‘난 레트 버틀러, 전쟁만은 반대해’가 ‘난 레트 버틀러, 전쟁에는 안 나가’로 바뀌었고, 노예 장의 ‘인간은’에서는 기존의 ‘인간은 다 같아 우리는 똑같아’가 ‘인간은 인간은 인간은 다 같아’로 반복하는 말로 교체됐다.
이번 공연에서는 스토리에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있다. 초연은 엄격한 라이선스 계약과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문법 때문에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를 압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재연에서는 프랑스 원작자와의 협의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영화나 소설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연성을 강화하고 캐릭터 간의 감정선을 부각시켰다.
특히 초연 때 지적받았던 주요 캐릭터들의 매력과 스토리상의 개연성을 보완한 것이 이번 재연의 특징이다. 초연은 워낙 거대한 원작의 드라마를 압축하다 보니 스칼렛과 레트가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빠지는 과정과 두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애슐리와 멜라니의 존재감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잘 드러내기 위해, 초연 때 스칼렛과 애슐리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던 레트를 오프닝 장면에 등장시켜 곧바로 스칼렛에게 반하는 설정으로 연출했다. 스칼렛과 애슐리의 스캔들이 퍼지는 장면도 스케치 형식으로 짧게 그려진 기존 버전을, 스칼렛과 애슐리의 대화 신과 손가락질 받는 장면을 새롭게 추가해 레트와 스칼렛의 갈등을 극적으로 살렸다.
깊은 인상을 줬던 1막 엔딩의 ‘맹세’ 장면도 보완됐다. 초연에서 1막 엔딩은 레트와 스칼렛이 타라로 향하던 중 갑자기 참전하기로 결심한 버틀러가 떠나면서 홀로 남겨진 스칼렛이 ‘맹세’를 부르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버전에서는 버틀러가 스칼렛을 떠나며 만일에 대비하라며 총을 건네주고, 잠시 후 스칼렛이 마차를 빼앗으려는 사람을 총으로 쏘며 오열하는 장면이 추가됐다. 이는 철부지 같았던 스칼렛이 세상의 변화 속에서 강인하게 변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안무도 바뀌었다. 프랑스 뮤지컬은 미장센을 중시해 장면마다 30여 명의 대규모 앙상블이 등장해 대형 군무를 펼치고, 각 뮤지컬 넘버의 메시지를 미학적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가령 스칼렛이 솔로곡을 부를 때 하녀 프리시가 뒤에서 현대무용을 추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안무에 낯선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감안해 제럴드 오하라의 솔로 장면과 레트의 대저택 청소 신에서 안무를 삭제했다. 또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인 댄서와 싱어의 구분을 없애고 극의 흐름에 맞춰 앙상블들이 춤을 추며 노래까지 하도록 변경했다.
공연이 끝난 후 작품의 여운을 느끼게 할 수 있게 엔딩 장면에서도 변화를 시도했다. 커튼콜 엔딩 장면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황혼에서의 키스신으로 변경했고, 엔딩 타이틀에도 영화의 메인 테마곡이었던 ‘타라의 테마’를 삽입했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 <프랑켄슈타인>
수없이 재창작됐던 메리 셸리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은 창작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인 흥행과 열광을 얻으며 가장 인상적인 신고식을 한 작품이었다. 그 매력의 중심에는 180분 동안 계속해서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음악과 극적인 가사, 비장한 드라마가 있었다. 이른바 ‘강강강’ 노선이라고 불렸던 초연 버전은 드라마가 빈약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만큼 매력도 있는 무대였다.
재연에서는 기존의 큰 틀은 유지한 채 초연에서 받았던 지적을 보완하는 데 주력한 모습이다. 특히 인물 간 관계의 개연성은 추가된 대사와 설명을 통해 초연의 빈틈을 메웠다. 이 때문에 이번 공연은 초연보다 임팩트는 약해졌지만, 극의 흐름은 한결 안정된 인상이다. 가령 이번 연출은 빅터에 대한 앙리의 맹목적인 충성심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앙리가 빅터를 위해 희생하는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다.
앙리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의 성격과 비중도 전체적으로 재조정됐다. 초연의 빅터가 어머니와 앙리에 대한 감정으로 실험에 몰두하는 휴머니스트였다면, 재연에서는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나는 왜’ 장면은 마치 두 인격이 갈등하는 듯한 연출로 표현되는가 하면, 2막에서 괴물로부터 실험 일지를 되찾았을 때는 미친 듯 웃는 연기로 빅터의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초연 때 1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줄리아는 이번 버전에서는 유일한 솔로곡인 ‘혼잣말’이 삭제되는 등 존재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빅터의 누이 엘렌이다. 특히 빅터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가 10여 분 동안 지속될 정도로 1막에서 엘렌의 역할이 커졌다.
이처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들의 비중에 변화가 생기면서 기존 장면들도 아예 제외되거나 반대로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1막에서 줄리아의 비중이 줄면서 2막의 처음을 장식했던 결혼식 장면도 사라졌고, 빅터와 줄리아가 행복한 순간을 담은 곡 ‘그대 없이는’도 함께 없어졌다. 대신 카트린느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녀가 격투장의 사내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겪는 장면이 디테일하게 연출된 것은 생존을 위해 괴물이 먹을 물에 약을 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2막에서 주목할 건 역시 괴물의 변화다. 특히 괴물이 처음으로 사회화를 배우는 격투장 신에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괴물은 카트린느를 구해준 뒤 그 보답으로 도움을 받으며 처음으로 인간의 정을 느낀다. 이번 공연에서는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상징으로 ‘안녕’이라는 인사를 활용했는데, 후에 카트린느가 괴물을 배신하는 순간에도 괴물의 손은 조그마한 문으로 빠져나와 한 치의 의심없이 그것을 받아 마시고 그녀를 향해 ‘안녕’ 하며 손을 흔든다. 이는 괴물이 인간의 배신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하는 연출이다. 또 클라이맥스인 ‘상처’의 뒷부분 허밍이 사라진 것도 재연만의 특징이다. 초연에서 허밍 처리는 긴 여운을 남기며 괴물의 애잔한 감상을 느끼게 해준 연출이었는데, 이 부분을 과감히 삭제한 것은 다음 북극 장면으로 바로 전환하기 위한 의도처럼 보인다.
빅터가 괴물을 찾아 북극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번 버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험난한 여정을 표현하기 위해 연출은 빅터가 1층 객석 뒤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설정을 했다. 아직까지 이 설정은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반응과 참신하다는 반응으로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수정과 보완을 거쳐 공개된 재연은 확실히 초연보다 안정된 느낌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8호 2016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