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심, 안심 없음" 백종원 대표가 차돌박이만 파는 이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대부분은 쌀을 떠올린다. 무엇을 먹든 밥이 기본으로 깔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6년부터 2년간 부동의 일인자 쌀의 자리를 빼앗은 식재료가 있다. 바로 돼지고기!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 생산액에 따르면 2016년도 돼지고기 생산액은 6조 7700억 원으로 6조 4570억 원인 쌀 생산액을 넘어섰다. 비록 2년 뒤 1위 자리를 반납했지만, 주식인 쌀을 이겼다는 것에서 우리가 얼마나 돼지고기를 많이 먹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어디든 잘 어울리는 식재료인 돼지고기를 활용한 음식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스테디셀러는 불판에 구워 먹는 돼지고기와 칼칼하고 기름진 돼지김치찌개. 만인이 사랑하는 메뉴인만큼 보편적이고 찾기 쉬운 조합이다. 그런데 고깃집과 김치찌개 맛집 하면 딱 떠오른 곳이 있다. 바로 '새마을식당'.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라는 보편적인 메뉴를 파는 식당이 어떻게 사람들 머릿속에 맛집으로 각인되었을까?
분명 음식 맛만 좋으면 불티나게 장사가 잘 돼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다양한 맛집의 조건'에 있다. 맛이라는 본질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주변 분위기도 맛을 결정하는데 지분이 크다. 백종원 대표는 식당의 주인을 영화감독에 비유한다. 음식 맛은 기본이고, 인테리어나 옆 테이블 손님, 가게 분위기 등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맛있어 보이도록 연출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종원의 장사이야기] '이 집 맛있다'라고 느껴지는 70% 요소는?
초기 새마을식당은 콘셉트가 분명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중년층에겐 향수를, 젊은이들에겐 호기심을 자극한다. 노란 슬레이트 아래, 낡은 테이블과 양푼에 수북이 담겨 나오는 음식이 그때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입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고깃집 특성상 점심, 저녁 장사를 둘 다 성공하기엔 무리가 있다. 개업 초기, 점심과 저녁 모두 매출을 올리고 싶었던 백종원 대표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육부실을 설치한 것이다. 직원들은 점심시간,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육부실에서 커다란 고기를 다듬었다. 같은 고깃집이라도 고기를 직접 다듬는 식당은 뭔가 달라 보인다. 더 신선하고, 맛있을 거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7분 돼지김치로 점심을 먹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우리 저녁에 고기 먹으러 올까?"라고 얘기한다.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점심 손님들은 언젠가 고기에 소주 한 잔 걸치러 저녁에 방문하게 된다.
백종원 대표는 이것이 새마을식당의 판매 포인트 중 하나라고 말한다. 메뉴 자체를 연관성 있게, 점심 손님도 저녁 손님으로 불러들일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마을식당의 메뉴판에도 스토리가 숨어있다. 구이 메뉴는 모두 돼지고기로 구성되어 있고, 소고기는 차돌박이 한 가지 밖에 없다. 일부 손님들이 "소고기를 팔아달라"라고 요청했고, 점주 들은 소고기 갈빗살이나 등심을 메뉴에 넣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백종원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손님들은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마음껏 골라! 어? 소고기는 차돌밖에 없네. 어쩔 수 없이 돼지고기 먹어야겠다"라는 스토리텔링 말이다.
또, 음식을 사는 입장에서 대략적인 가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메뉴에 돼지고기와 상대적으로 비싼 소고기가 함께 있을 경우 가격 예측이 어렵다. 가격 예측이 어려운 식당은 자연스럽게 손님의 발길이 뜸해진다. 생각해 보라. 음식을 사는 입장에서 2000원짜리 튀김과 18000원짜리 치킨을 같이 파는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 어떤 음식을 얼마나 시킬 줄 알고 선뜻 갈 수 있을까.
가격 예측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소고기를 메뉴에 올리면 당장은 매출이 오를지 모르나, 새마을식당의 진정한 매력이 사라진다. 저렴하고 맛있는 돼지고기와 비슷한 가격대의 소고기 차돌박이를 파는 것. 이것이 새마을식당 메뉴판이 가진 전략이다.
누구나 다 판매할 수 있는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를 특별하게 만든 건 조그마한 아이디어다. 백종원 대표는 비싼 삼겹살 대신 비교적 저렴한 앞다리살로 고깃집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삼겹살은 기름기가 많아 사실상 직화 구이가 불가능한 메뉴다. 직화 구이를 위해 기름이 적은 앞다리 살을 사용했고, 얇게 썬 고기에 매콤한 양념을 더해 촉촉함을 유지했다. 기름이 별로 없는 부위기 때문에 직화로 구우면 감칠맛은 배가 되지만 연기는 덜한 특징이 있다. 거기에 웰빙 열풍에 맞춰 기름기가 적은 앞다리 살이 인기를 얻으며, 삼겹살을 밀어내고 새마을식당의 1등 메뉴가 되었다.
TV프로그램 '집 밥 백선생'을 통해 비법이 전파돼 화제를 모았던 새마을식당의 대표 메뉴, 7분 돼지김치. 손님을 설득하고 넘어오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숫자다. 숫자가 클수록, 디테일할수록 설득력이 올라간다. 그냥 김치찌개 하면 두루뭉술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7분'이라는 숫자를 제시하면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손님들은 "왜 7분일까?", "7분 뒤에 맛있게 익겠지"라는 구체적인 호기심과 기대를 품는다.
제공되는 모양도 남다르다. 백종원 대표는 김치찌개에 보기 좋은 큼직한 돼지고기를 넣느냐, 떠먹기 좋은 잘게 썬 돼지고기를 넣느냐 고민했다. 생각 끝에 "그래, 고기를 큼직하게 넣고, 완전히 끓고 나면 가위로 잘라주자"라는 생각을 해냈다. 큼직한 돼지고기에 감탄하던 손님들 앞에서 고기를 사정없이 자르자 초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먹어보니 편하고, 김과 함께 밥에 비벼 먹는 방법이 재밌어 점점 인기가 올라갔다. 이렇게 다른 식당에선 사이드 메뉴로 취급하는 김치찌개를 메인을 내세우며 식사와 술을 모두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문을 연지 15년이 지난 장수 브랜드 새마을식당이 리뉴얼됐다.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와 장점을 바탕으로 '새마을식당肉'이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예스러움에서 벗어나 더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열탄 불고기와 7분 돼지김치는 물론, 새로운 메뉴인 백밥(백종원의 밥)을 선보인다. 트렌드에 맞춰 포장과 도시락 배달 서비스, 소형매장까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새마을식당이 다양한 형태로의 변화하고 있다.
문의 : theborn_officia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