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배순탁의 끄적끄적 뮤직
지난 글에서도 강조했듯이, 음악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음악을 많이 아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싼 가격에, 심지어 공짜나 마찬가지인 여건 속에서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유튜브를 접속해보라.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이 말 그대로 널려있으니까.
뭐, 우린 다들 잘 지내고 있다. 삶이라는 대지에서 붕 떠 있는 듯한 느낌만 뺀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는 느낌, 도돌이표를 왕복하고 있는 느낌에 휩싸여있다. 이건 사실 역설적이다. 역사상 지금처럼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 세계는 없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당신이 의지만 있다면 쿨내 쩌는 비평가 행세? 어쭙잖은 철학자 모드로의 대변신?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도통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기회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다. 한국에서는 통상 SNS라 불리는 그것 말이다.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소셜 미디어 속에 너무도 많아서 어떤 때는 ‘뭐라도 좋으니 제발 어떤 기준이라도 있었으면’하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건 언제나 내 주위가 아닌 어딘가 다른 곳에 분명히 존재할 거라는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의 말마따나 “재미에는 최상급이 없는 법”이니까.
재미에 목을 매다보니 그 와중에 우리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었다. “꿀잼!”이라며 환희에 취하다가도 갑자기 “ㅜㅜ 심심해”하면서 죽음을 목전에 둔 것처럼 침울해한다. 재미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와 당신은 어느새 경계성 인격 장애 환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겨왔던 나만의 의식을 치르고 내면에 집중하곤 한다. 바로 LP 플레이다. 오늘은 갓 구입한 에디터스(Editors)의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들의 곡 ‘Ocean of Night’를 듣는다. 내 마음 속 파도가 조금은 차분해지는 것도 같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이런 취향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것이 비록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낭비에 불과한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손으로 부여잡을 수 있는 ‘실물’이 없을지라도, 우리 삶의 기준을 잡아줄 무언가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고 부른다. 나에겐 음악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당신에겐, 무엇이 있는가?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