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내 손으로' 여성 복수 서사를 그린 영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위장 잠입한 ‘지우’의 행적을 그린 드라마 [마이 네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우는 남자 조직원들로부터 멸시와 차별을 당하지만 복수를 이루겠다는 일념 하에 어떠한 고통도 감수한다. 이제 드라마나 영화 속 여성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복수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이루며 그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여성의 복수를 다룬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드레스메이커
2015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
복수를 꼭 칼이나 펜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 [드레스 메이커]의 주인공이 택한 복수의 수단은 다름 아닌 재봉틀이다. 영화는 25년 전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마을에서 쫓겨났던 틸리가 고향에 다시 돌아오면서 벌이는 복수극을 그렸다. 파리에서 의상 공부를 마친 뒤 디자이너가 되어 화려하게 컴백한 틸리는 누명을 벗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틸리가 살인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틸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대가로 정보를 얻는다.
[드레스 메이커]는 10살 때 마을에서 추방된 소녀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돌아와 옷으로 환심을 사며 진실에 도달하는 내용을 다룬다. 소재는 참신하나 후반부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김이 빠진다. 또한 25년 동안 살인자로 낙인 된 여자의 복수극 치고는 착한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통쾌한 사이다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화려한 의상들과 한 성격 하는 주인공 모녀의 티키타카만큼은 확실한 재미를 건넨다.
친절한 금자씨
2005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는 13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이금자’가 감방 동료들의 힘을 빌려 자신의 인생을 망친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6살짜리 아이를 유괴하고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간 금자는 다른 재소자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은 덕에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금자의 철저한 계산속에 이뤄진 행위였다. 출소한 금자는 자신이 도와줬던 재소자들을 찾아가 복수에 이용한다. 그렇게 금자는 자신을 파멸로 집어넣은 진짜 살인범에게 도달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분노에 사로잡힌 인간의 광기를 복수라는 키워드에 담아내 흡입력있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서늘하고 비이성적이면서도 모성애를 갖춘 금자의 면모를 소화해낸 이영애의 뛰어난 연기력이 돋보인다.
킬 빌
2003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
[킬 빌]은 여성 복수 영화에 빠질 수 없는, 바이블 같은 작품이 아닐까. 행복한 결혼식을 앞둔 브라이드 앞에 의문의 조직이 나타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하객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브라이드는 5년 후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들을 찾아 자비 없는 피의 복수를 선사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하고, 우마 서먼이 복수의 칼을 가는 더 브라이드 역을 맡아 강렬한 액션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 작품은 파트 1과 2로 나눠 개봉했고 그 속에서도 챕터를 또 구분하는데, 쿠엔틴 타란티노의 출세작 [펄프픽션]을 보는 듯한 독특한 시간 구성으로 이야기를 맞춰 나간다. 한 편의 서부 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 속에 B급 액션 영화의 오마주가 군데군데 서려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언니
2018
이미지: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주)더콘텐츠온 |
배우는 물론 실제 권투선수로도 활약했던 이시영의 존재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경호원으로 일하던 중 과잉 방어로 감옥에 갔다 출소한 인애는 동생 은혜를 돌보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간 은혜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인애는 동생을 찾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다. 은혜가 학교 일진들에게 끌려가 원조교제 사기에 이용되다 납치되었다는 것. 분노한 인애는 은혜를 구하기 위해 이 사건에 관련된 모두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시놉만 보면 [아저씨]와 [테이큰]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언니]는 그야말로 이시영으로 시작해 이시영으로 끝낸다. 고난도 격투 액션을 대부분 직접 소화한 것은 물론, 동생을 구하기 위한 언니의 절박한 마음을 섬세한 감정 연기로 표현해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영화 전개가 다소 엉성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천인공노할 이들을 자비 없이 해치우는 인애의 모습은 보는 내내 통쾌함을 건넨다.
악녀
2017
이미지: (주)NEW |
특유의 액션 시퀀스가 해외 영화에서도 오마주가 되며 여성 복수물에 한 획을 그은 영화 [악녀]는 킬러로 길러진 숙희가 복수를 위해 국가조직원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면서 진실에 도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릴 적 강도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숙희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 중상에게 구해져 전문 킬러로 훈련받는다. 둘은 결혼에 골인하지만 이내 중상이 총을 맞아 죽게 되고, 숙희는 중상을 죽인 조직에 복수하다가 체포된다. 숙희는 처벌 대신 국가정보원을 위해 10년 동안 일해줄 것을 제안받는다. 그렇게 국가정보원 소속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숙희는 죽은 줄만 알았던 중상을 마주치고 이내 자신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악녀]를 논할 때 액션 시퀀스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오프닝 초반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는 1인칭 시점으로 촬영돼 강렬하고 박진감 넘친다. 영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퀀스는 해외에서 오마주 될 정도인데, [존 윅 3] 감독이 작품 속 오토바이 액션 장면을 [악녀]에 대한 헌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여자 한 명이 조직원 70명을 혈혈단신으로 쓰러뜨리는 등 숙희의 능력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신체적 한계를 초월하는 먼치킨 주인공이기에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