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압살되어 존엄이 파괴된 세상을 담은 영화 미안해요, 리키
코로나19가 점점 집단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클럽과 종교시설, 체육시설에서 집단 감염자가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클러버와 종교인 그리고 동호회 활동자들을 비난하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로 콜센터와 부천 쿠팡 물류센터 확진자들에게는 손가락질을 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콜센터와 택배 물류센터는 먹고살기 위한 생존을 위해서 일을 하는 근무자들이 일하는 곳이라서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질은 열악한 환경을 만들고 방치한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향했습니다. 가장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염병까지 걸렸다는 것이 참 마음에 아픕니다. 특히 평일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 주말에 택배 물류센터에서 상품 분류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주말에도 일하는 그들에게는 손가락질할 수 없고 오히려 이번 기회에 정부에서 강제로 택배비를 모두 1천 원 이상 올려서 택배 관련 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 다운 삶을 살 수 있게 숨통을 틔워주었으면 합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서 택배업을 시작한 리키
리키 터너(크리스 히친 분)은 10대 아들과 딸이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착한 아내 애비 터너(데비 허니우드)와 함께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데 힘들게 번 돈이 들어간 저축은행이 부도로 망하면서 자신이 모은 돈이 다 날아갑니다. 셋방 살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리키는 친구의 권유로 택배업에 뛰어듭니다.
잘 아시겠지만 택배일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고된 노동입니다. 하루에 14시간 6일 동안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2년 안에 집을 장만하는 것이 리키의 목표입니다. 영국 택배업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국은 도착 예정 시간을 2시간 넘어가면 벌점이 먹여지고 평판이 떨어지기 때문에 꼭 시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모든 실수나 잘못은 벌점으로 돌아오고 벌점이 쌓이면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됩니다. 마치 뒤에서 거대한 돌덩어리가 굴러오는 앞에서 리키는 쉴 새 없이 달려야 합니다.
아내인 애비는 간병인입니다. 많은 노인들과 간병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면서 돈을 법니다. 애비는 자동차가 있어야 간병일을 할 수 있는데 남편이 택배일을 해야 하기에 내키지 않지만 자신의 차를 팔고 버스로 이동을 합니다. 고객들은 매일 늦는다고 하소연을 하지만 욕 한 번 안 하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정말 착하고 착한 엄마입니다.
딸 리사(케이티 프록터 분)는 똑똑하고 착한 딸로 아버지와 함께 택배 배송을 도와주는 효녀입니다. 택배 차량을 언덕에 세우고 딸과 나눠먹은 점심 식사가 유일한 행복이라고 할 정도로 리키는 짧은 행복을 느낍니다.
문제는 아들 세브(리스 스톤 분)입니다. 전형적인 10대 반항아로 길거리에서 그래피티를 그리고 학교도 잘 가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말썽만 피우는 사춘기 10대 소년입니다. 세브와 아버지 리키의 갈등은 점점 고조됩니다. 그럴 때마다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아내 애비가 말리면서 겨우 겨우 살얼음판 같은 집안 분위기를 다잡고 있습니다.
왜 모두 열심히 사는데 우린 행복하지 않을까를 묻는 영화 <미안해요, 리키>
하루 14시간 6일 동안 일하는 성실한 가장 리키, 현명하고 마음씨가 고와서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고객을 위해서 밤에 찾아가서 간병을 하는 엄마 애비, 똑똑하고 효심 깊은 딸 리사. 비록 반항아처럼 사고를 치고 다니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모습이 많은 세브와 함께 살지만 리키 가족은 행복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리키가 택배업을 하면서 더 웃을 일이 사라졌습니다.
리키는 하루 종일 고객에 시달리고 택배 일을 마치고 저녁에 와서 가족들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아들 세브 때문에 아내와 티격태격 하지만 아들도 자신이 시간을 투자하면 다시 예전 세브로 돌아올 수 있지만 언젠가부터 서로의 삶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겨우 버티면서 지내고 있는데 세브가 마트에서 음료수 4캔을 훔치다 걸립니다.
경찰은 부모를 호출하고 오지 않으면 전과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학교 교사를 때려서 교장 선생님과 상담 교사가 모여서 징벌 위원회를 열였는데 아버지 리키는 택배 일 때문에 징벌 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결국 아들은 유기정학을 받습니다.
벌금을 내고 인사고과 평가에서 벌점을 맞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 일을 포기하고 경찰서로 가서 아들의 전과 기록을 막아냅니다. 이렇게까지 아빠가 자신을 희생하면 아들이 제궤도로 돌아와야 하지만 아들 세브는 자신의 아이폰을 뺏아간 아버지를 밀치고 집을 나갑니다. 이 모습을 본 딸 리사는 두려움에 떱니다.
그 착하던 아내 애비도 택배 차량 구입하느라 자기 차를 팔아서 매일 버스 타고 다닌다면서 고객들에게 늦게 온다는 전화받는 것도 지겹다고 말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리키는 아내에게 묻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보이지 않는 가해자 야수 자본주의
80년대 명작 영화 안성기 주연,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본격적인 자본주의 기관차가 전속력을 달리던 80년대 한국의 풍경을 잘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무척 인상 깊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덕배는 링에서 쓰러지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서울에 와서 2년을 살았는디요. 한마디로 살아 볼 만한 뎁디다. 이렇게 맞다 보면 뭔가 알 것 같기도 해라우
2년 동안 보이지 않는 누군가 한티 줄곧 맞아온 것처럼 생각되는디요. 누구냐구유?"
리키와 애비 세브 리사가 불행한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아들 세브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세브가 가정불화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브가 원인이 아닌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리키나 애비 둘 중 한 명만 집에서 세브를 돌봐주었다면 세브가 삐뚤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세브는 갑작스런 야간 근무를 위해서 나가는 엄마를 보면서 모두 택배 차량에 타고 엄마를 데려다주면 어떠냐고 합니다. 이걸 보면 세브도 모두가 행복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가족 모두가 예전 그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들을 압박하고 숨 막히게 합니다. 영화에서는 그걸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우리는 잘 압니다. 이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우리들이 만든 자본주의라는 것을요.
영화에서는 택배사 관리자가 악당처럼 보이지만 그도 택배 시스템이 만든 하나의 종업원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을 만든 경영자들이 문제죠. 그래서 우리는 쿠팡 물류센터 코로나 집단 확진 사태에 확진자와 근로자가 아닌 쿠팡 경영자에게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돈으로 연관시켜서 보는 야수 자본주의가 문제입니다. 리키가 아내가 힘들어한다면서 1주일의 휴가를 부탁하지만 단 하루의 휴가도 없고 쉬고 싶으면 쉬지만 대신 벌금을 내야 한다는 관리자의 말에 더 불행해집니다.
이런 야수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연대입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리키를 선량한 우리 주변의 흔한 가장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리키도 야수 자본주의의 생리를 이용한 사람이니까요. 한 사람이 새벽에 사이드미러가 깨졌다면서 2시간만 주면 정비소에서 고쳐 오겠다고 하자 관리자는 대체 기사를 쓰던가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며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습니다.
이에 관리자는 이 사람의 황금 라인을 가져갈 택배 기사를 찾습니다. 다들 인수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게 연대입니다. 네가 싫으면 나도 싫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힘을 낼 수 있고 관리자가 회사가 자본이 함부로 노동자를 대하지 못합니다. 물론 귀족 노조도 있긴 합니다만 그건 극히 일부입니다. 돈 잘 버는 회사에나 해당되죠. 택배업처럼 비정규직 또는 자영업자라는 명패를 달고 을로 사는 사람들은 뭉쳐서 자신들의 기본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최소한의 권리가 바로 인간 존엄입니다.
그러나 리키가 손을 듭니다. 그리고 연대를 깹니다. 영화는 이 연대 의식이 깨트린 리키를 묘사하면서 리키가 한없이 선량한 사람도 그렇다고 한 없이 불량한 사람도 아닌 그냥 우리 주변의 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더 무섭습니다. 자신은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불행하니까요. 만약 리키가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하는 동료 기사와 동조했다면 아들이 경찰서에 갔을 때 벌금도 벌점도 내지 않고 편하게 갔다 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 이은 자본주의 비판 영화 <미안해요, 리키>
<미안해요, 리키>는 철저히 켄 로치 감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켄 로치 감독은 2016년에 세상에 소개한 <나, 다니엘 브레이크>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강력 추천할 수밖에 없는 쓰라린 우리 사회를 명징하게 담은 영화입니다. 공무원의 무사안일 복지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전 세계의 복지공무원들이 관람 열풍을 일으킨 영화입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가 인간 존엄성마저 말살시키는 영국의 복지 시스템을 비판했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우리 주변에서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견디면서 사는 비정규직 같은 사람들의 노동 환경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택배 기사님들이 얼마나 고된 일을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목도하는 건 또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미안해요, 리키>는 우리 주변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지만 매일 잊고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그가 먹여 살리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
택배를 약속한 시간에 배송을 못하면 영국 택배 기사들은 Sorry We missed you라는 문장이 적힌 배송 안내문을 문에 붙입니다. 이 Sorry We missed you는 번역하면 죄송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로 사과의 문장입니다.
이 Sorry We missed you는 이 영화의 원제입니다. 전 원제가 더 좋습니다.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에서 당신은 고객이지만 관객에게는 리키 가족 아니 택배 기사입니다. 역으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제목인데 이걸 너무 직설적으로 미안해요, 리키로 바꾸었네요.
제목 때문인지 매일 눈물 속에서 살고 있는 리키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미안해요, 우리가 미안했어요라고 따뜻한 시선이 한 번이라도 나올 줄 알았지만 없습니다. 역시 켄 로치 감독 영화답게 억지 감동이나 사과나 행복을 주입하지 않습니다. 디즈니 영화처럼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식의 허무맹랑한 근거 없는 행복을 말하지 않고 근거 있는 불행을 끝까지 보여주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어두운 화면이 드리우자 그제야 마음속에서 거센 파도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거리에서는 울고 있는 리키들이 많을 겁니다. 야수 자본주의에 압살 되어가고 있는 그들은 저항하면 새로운 배터리로 교체하는 시스템 때문에 운전대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효율과 결과만 생각하는 돈의 생리에 우리 인간은 기계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아내 애비가 분노에 찬 말을 쏟아내는데 그 장면이 이 영화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고 있네요.
<미안해요, 리키> 인간성 없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우리의 존엄을 파괴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꽤 좋은 영화입니다. 4명의 배우 연기를 너무 잘 합니다. 특히 아내 애비역을 한 데비 허니우드는 너무 인상 깊은 외모와 연기에 잊혀지지 않네요. 4명의 배우 모두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연기가 좋네요.
- 별점 : ★★★☆
- 40자 평 : 우리고 놓치고 사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목격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