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전도연의 증명, ‘길복순’
메가폰을 믿지마라, 전도연을 믿어야지
50세에도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
‘길복순’ 전도연 스틸. 사진I넷플릭스 |
역시 국보급 일타 배우다. 러블리, 섹시, 카리스마, 모성, 액션까지 다 된다. 그것도 한 번에. 뜬금포 투머치 전개에도 매료된다. 전도연의 증명, ‘길복순’(감독 변성현)이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 분)이 회사 엠케이와의 재계약 직전, 죽거나 또는 죽이거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물이다.
영화는 장검을 든 야쿠자와 3만원짜리 도끼를 든 여자의 대결로 포문을 연다. 이 여자는 단정한 유니폼에 흰 운동화, 도끼를 살벌하게 휘두르다 칼퇴를 위해 거침없이 총을 쏜다. 집에 가면 쌓여있는 잡일과 사춘기 딸을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다. ‘워킹맘’ 길복순의 삶이다.
킬러들의 세계에는 업계 원톱 엠케이 회사가 만든, 아니 이 회사의 대표(설경구)가 만든 규칙이 있다. 첫째는 미성년자는 죽이지 않을 것, 둘째는 회사가 허가한 작품만 할 것, 셋째는 회사가 허가한 작품은 반드시 트라이 할 것, 세 가지다. 그리고 이 규칙이 생기기 전엔 피 묻은 칼을 보내면 일대일로 붙어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낭만적인 ‘전설’도 있었다.
실력도, 인기도 갑인 복순은 어느새 어떻게 죽일지보다 어떻게 키울지가 고민이고, 비밀이 많아진 딸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퇴직을 준비한다. 그 사이 복순의 딸은 같은 학교 남학생을 가위로 찌르는 사고를 치고, 규칙을 어겼다 발각된 후배는 복순을 겨눈다. 모든 게 환장할 지경의 복순에게 대표의 여동생까지 가세하자,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복순은 최후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대표를 노린다. 복순은 1인자로 살아 남아 딸과의 문제도 풀 수 있을까.
영화는 청부살인 업계라는 독특한 세계관 안에 ‘워킹맘’ 길복순을 정중앙에 두고, 감각적인 액션과 유머, 강렬한 캐릭터들을 때려넣었다. 배우들의 호연은 말 할 것도 없다. “인생 뭐 셀프니까” “X발, 감동적이네.” “대표님이 잘 해야, 동생분 모가지가 온전할 텐데” “참 모순이야, 이런 일을 하는 엄마라니. 사람 죽이는 건 간단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등 복순표 찰진 대사들은 매력적이다.
여러모로 ‘불한당’을 떠오르게 한다. 중년의 멋, 그 끝판을 보여준 전도연이나 뒤통수 치는게 일상인 세계, 그래서 ‘사람을 믿지 말라’는 교훈, 그래도 ‘다 살려고 그렇지’라는 인생사 절대 진리. 그럼에도 소멸되지 않는 ‘낭만’.
‘길복순’ 전도연 스틸. 사진I넷플릭스 |
다만 자연스레 정리되지 않는 잔가지들이 다소 너저분하다. 작정하고 멋은 부렸는데 화려한 포장지를 걷어내니, 그 알맹이가 기대만큼 빛나진 않는다. ‘길복순’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의 활용은 평면적이고 진부하다. 특히 ‘매력덩어리’ 구교환의 쓰임이 가장 아쉽다.
더러 전개는 뚝 뚝 끊기고, ‘모녀 갈등’ ‘첫사랑’ ‘츤데레’ 등을 녹인 메인 테마는 언밸런스다. 스타일리시함을 넘어 미끄덩 거릴 정도로 느끼한 구간도 보인다. 캐릭터에만 기댄 채 이야기의 흡입력이 부족해 클라이맥스는 기대 이하로 싱겁고. (메가폰의) 설경구 사랑은 깊어진 만큼 발전된 변주를 보여주던지, 아니면 이제 좀 자중해야 할 듯싶다.
그럼에도 전도연의 진가는 매 장면 빛난다. 잠시 스톱을 누를까 고민하다가도, 그녀가 움직이면 날카롭게 눈빛을 바꾸면 다시금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상대가 바뀔 때마다 팔색초처럼 바뀌는 액션 스퀀스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눈빛과 몸짓은 섹시하다. 연습생 에이스와의 워맨스는 적은 분량에도 모녀 케미를 압도한다. 그녀가 뱉는 모든 대사는 맛깔스럽다.
한 마디로 ‘길복순’은 전도연이다. ‘불한당’의 변주다. 그 변주의 허점도, 강점도 모두 집어 삼킨 전도연, 여왕의 증명이다. 그 이상의 찬사는 없다. 오는 3월 31일 공개. 러닝타임 137분. 18세 이상 관람가.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