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we Go #태화강 국가정원
오색이 찬란하다 태화강 국가정원
가물치랑 메기랑, 버들치랑 갈겨니랑 백로가 사는 정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여기. 어떤 이는 양귀비가 한창인 봄날의 정원으로, 누군가는 보랏빛 탐스러운 꽃도 피워내는 무궁화정원으로 태화강 국가정원을 내내 기억할 것이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너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태화강전망대에 오른다. 사람들의 마을로, 바다로 굽이굽이 태화강이 흐른다. 강변에 길게 띠를 두른 숲도 바람에 산들거린다. 그것은 십리대숲. 푸른 대숲이 도심 한가운데 정박한 섬처럼 머물러 있다.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울산 어디를 가든 이 길고 긴 대숲을 만난다. 여름에는 제 몸을 흔들어 오가는 이들에게 시원한 부채가 되어주고, 겨울에는 북풍 찬바람 막아주는 대숲은 대관절 언제부터 저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걸까. 울산을 다룬 가장 이른 시간의 읍지류 중에 <학성지>(1749)가 있는데 태화강의 식생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 있어 옮긴다.
형승조, 내오산 태화진의 서쪽 수리 쯤에 있다. 작은 언덕이 강에 닿아 있고, 경치가 그윽하며 묘하다. 만회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부사 박취문이 지은 것이다. 정자 앞에는 가늘고 긴 대숲 몇 이랑이 있고, 정자 아래에는 낚시터가 있는데, ‘관어대’라는 석 자를 새겨 놓았다.
높은 바위 위에 우뚝 솟은 태화루 단청 모서리는 푸른 물에 넘어질 듯 크고 작은 나무들은 바위를 둘러싸고 간간이 대나무 숲은 처마 끝에 춤추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제신이 노래한 아름다운 그 세계가 지난밤 꿈처럼 멀어질 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들은 시민이었다. 태화루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증인들로, 태화강이 지금처럼 푸르고 깨끗해지기까지 울산 시민이 한마음으로 나서 오늘날을 이룬 거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40년간 수질오염에 시달린 태화강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민, 기업, 환경단체, 시가 하나 되어 참여했다. 강둑을 메운 차가운 콘크리트를 걷어냈다. 391동의 비닐하우스가 철거되었고, 350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제거했다.
개발의 논리에 대숲이 택지로 변할 위기도 민관이 슬기롭게 대처해 지켜냈다. 한때 공해백화점, 죽음의 강으로까지 불리던 태화강의 수질은 마침내 1급수로 개선되어 울산 시민의 품에 안겼다. 2019년 7월 12일, 울산 태화강 지방정원은 우리나라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 집안의 경사이자 나라의 자랑이다. 울산 시민은 이날 어깨춤을 들썩였을까. 땀 흘리며 애쓴 일이 값진 결실을 이뤘으니 말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은어와 연어가 헤엄치는 곳, 여름에는 1500여 쌍의 백로가 찾는 대표적인 백로 서식지, 겨울이면 몽골,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떼까마귀, 갈까마귀 10만여 마리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태화강을 따라 정원 도시, 울산을 달리면
태화강은 길이 47.54km에 유역면적 643.96㎢에 이른다. 그 중심에는 귀신고래처럼 몸집이 크고,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태화강 국가정원이 자연과 도시, 사람과 동식물을 잇는 매개체로 매일같이 성장하고 있다. 정원의 규모가 엄청나다 보니 초행길에서는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땐 무조건 안내센터부터 들르는 것이 유익하다. 무지개분수 앞에 세워진 태화강 국가정원안내센터에서는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안내책자도 구할 수 있고, 태화강 국가정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장 관람, 선물용으로 적당한 의미 있는 기념품들도 한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
기자는 태화강 국가정원과 함께 태화강의 시작과 끝을 돌아볼 수 있는 ‘태화강백리대숲’도 돌아보기로 했다. 태화강전망대에서 보면 자전거를 타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시민들이 자주 눈에 띈다. 2022년 사업 완료를 목표로 조성이 한창인 태화강백리대숲은 명촌교에서 시작해 선바위, 국가정원, 석남사까지 40km(100리) 자전거길에 대숲을 끊어진 공간 없이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십리대숲은 백리대숲이 되고 시민 쉼터는 늘어나며, 울산 곳곳은 더욱 푸르러질 것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십리대숲, 초화원, 작약원, 무궁화정원, 향기정원, 국화정원, 무지개정원 등 주요 테마 정원이 자리한다. 색색의 정원 사이로는 안내센터부터 만회정, 은하수다리, 전망대, 십리대밭교, 태화루, 동굴피아 등 저마다의 역할을 지닌 관람 시설도 다채롭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사색하며 이곳들을 둘러봐도 좋겠고, 달리는 기쁨을 누리며 좀 더 많은 것을 제 시간에 보고 싶다면 자전거를 추천한다. 기자는 태화강 국가정원에 세워진 전기자전거를 대여해 주요 공간들을 탐닉했다. 계절마다 색이 달라지는 태화강 국가정원을 보러 오는 것은 기쁨이다. 어떤 이는 양귀비가 한창인 봄날의 정원으로, 누군가는 한 구절 시가 생각나는 노란 국화길로, 흰색이며 보랏빛 탐스러운 꽃도 피워내는 무궁화정원으로 태화강 국가정원을 내내 기억할 것이다.
달리다 멈추고, 멈추고 걸으며 하나의 색으로 정의할 수 없는 태화강 국가정원을 눈에 담는다. 대나무생태원 건너편에는 익숙한 조롱박과 수세미는 물론 생전 처음 보는 덩굴식물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다. 뱀오이, 맘모스골드, 긴손잡이국자, 베레모를 닮은 베레모 호박까지. 내 색이 제일 곱지? 하고 뽐내듯 색깔도 고와서 아이도 어른도 고개를 높이 들고 탐스러운 열매를 바라본다. 일몰 무렵에 태화강 국가정원을 찾으면 십리대숲 안으로 꼭 들어가보자. 밤하늘의 은하수를 모티브로 십리대숲길에 LED 조명을 설치해 이 또한 보고 걷는 맛이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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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터널, 대나무생태원, 십리대숲은하수길 등등 태화강 국가정원은 많은 사람이 밤낮으로 구슬땀 흘려 가꾼 결실로 가득하다. 그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U-5가든’. 울산 시민의 정원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단번에 드러나는 곳이랄까. U-5가든은 울산광역시 5개 구·군의 참여 정원으로 각 지역의 특색과 기량을 뽐낸 정원들이 시선을 끈다. 최근에는 정원 사랑이 남다른 울산 시민의 큰 환영 속에 세계적인 자연주의 정원 디자이너인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울산을 찾았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태화강 국가정원에 그의 정원 작품인 ‘다섯 계절의 정원’을 국화원 일원 1만8000㎡에 조성하는 까닭이다. 다섯 계절의 정원은 내년 봄꽃 축제 기간에 맞춰 조성될 예정이다. 여기에 10월 15일부터 24일까지는 대한민국정원산업박람회가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개최되어 화려한 축제의 서막을 예고했다.
어떤 사람은 꽃을 선물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기도 한다. 곧 시들어버릴 꽃을 선물하는 것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이곳 태화강 국가정원에서는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꽃 한 송이만으로 그의 방이 얼마나 환해지는지, 덩달아 마음에도 한 줄기 불이 탁, 하고 켜지는 순간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것이다.
백로가 노니는 선바위와 가지산의 숨은 비경, 선바위
하류는 하천 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 작은 갈대숲을 비롯한 식물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와 철새, 텃새, 나그네 새도 쉬어간다. 강물 속을 직접 탐험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커다란 야외관람 수조에는 붕어, 잉어, 황어, 누치가 유유히 헤엄을 친다. 관람객이 쳐다보든 말든 제 갈 길 가는 물고기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태화강백리대숲의 마지막 지점인 석남사는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영남 9봉 중 가장 높은 산인 가지산 기슭에 자리한다. 일주문에서 경내까지는 하늘을 가리는 숲길이 이어지는데 어떤 소나무는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 같아 입이 떡 벌어진다. 촉촉이 비는 내리고 계곡물 소리는 우람하여 700m 숲길을 걷는 데 발걸음이 가볍다. 비구니 수도 도량인 석남사 경내는 안온한 분위기로 그득하다. 비에 젖은 단청은 더욱 고색창연하고 그사이 홍자색 꽃 피운 배롱나무는 자연, 역사와 어우러지는 또 다른 태화강 국가정원 같다.
석남사에서 약 1.7km를 오르면 쌀바위로 태화강의 상징적 발원지다. 산기슭을 흘러 계곡물이 되었다가 도심으로, 동해의 울산만으로 향하는 태화강은 어쩌면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물치랑 메기랑, 버들치랑 갈겨니랑 백로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내 그곳에 가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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