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we Go #전남 신안 도초도&비금도
Here we Go #6
너의 여름을 환히 지켜줄 거야
도초도와 비금도
자연의 힘과 인간의 노력으로 빚어낸 비금도의 대동염전은 눈물 같고,
눈 같아 짜고 하얗다. 태양빛을 닮은 섬 보리는 대지에 파도를 치고, 좋아하는 이의 미소를
똑 닮은 수국은 도초도를 촉촉이 적신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 여름을 정의하는 섬이 있다면, 도초도
암태남강선착장에서 비금가산여객선터미널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예전에는 비금도에 가려면 목포항에서 배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제 신안의 암태남강선착장에서도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다. 신안 주민도 여행객도 반가운 일이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 승용차를 선적하고 그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40여 분이지났나. 눈을 뜨니 어느새 신안 비금도에 다다랐다. 어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목까지 꺾어가며 숙면을 취한 데는 엄마 배 속만큼 편안한 탑승감 덕분일 것이다. 배는조용히 바다를 운행한다. 그 아래로 엄청난 파도를 가르면서 나아가는 데도 배 안에 있을 때는 엄청난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커다란 배가 그 안에 있는 이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 배뿐인가. 세상의 수많은 것이 날 보호한다. 하늘, 바다, 나무, 사람. 그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나도 그들을 용감히 지켜주기 위해 성큼 걸음을 내딛는다.
비금도의 이웃 섬, 도초도까지는 대교가 건설되어 차로 약 19분이면 당도한다. 여름이면 도초도는 수국으로 환히 물든다. 여름의 색을 정의한다면 수국 색이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강렬한 태양빛 아래 대지는 그 어느 때보다 푸르러지고 도초도의 수국은 진한 하늘색, 보드라운 분홍색, 발그레한 볼처럼 여름을 물들인다. 마을도 그를 닮아 집집마다 지붕색이 파랗다. 1000여 개 이상의 섬이 있어 천사섬으로 불리는 신안은 각 섬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적극적으로 꺼내 보이고 있는 중이다.
“맨드라미로 대표되는 병풍도는 붉은색. 반월도, 박지도 등은 섬에서 자생하는 도라지꽃을 모티브로 퍼플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도는 노란색, 도초도는 파란색이다.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치 사계절 수국이 피어난 것처럼 싱그럽기 그지없다.”
도초수국공원 입구에는 우아한 자태의 팽나무 716그루가 3km 구간에 걸쳐 식재되어 수국을 보는 걸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공원에 식재된 식물 수를 기념비에 적어놨는데 애기동백 외 4종 1004그루, 수국 20만 그루, 애기범부채 외 6종 30만 그루에 달한다. 빈손으로 와서 이렇게 가슴 가득 환한 빛을 담고 가도 될는지요!
수국공원 인근의 언덕에는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핫플레이스가 자리한다. 조선이 낳은 지식인, 대한민국 국민이 영원히 존경할 정씨 형제 중, 손암 정약전과 관련된 곳이다. 쫀쫀한 햇살을 맞으며 언덕길을 걸어 오르자 단단한 맵시를 자랑하는 초가집이 보인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지낸 초가를 재현해놓은 것이다.
선생은 신안의 흑산도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다. 함께 유배길에 오른 동생,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머물게 되어 형제는 살아서 다시 만나질 못했다. 그리운데 만날 수 없는 절절한 마음에 파묻히는 대신 두 형제는 유의미한 작업을 이어나갔다.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생활 중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집필했다. 흑산도 주변의 물고기와 해양생물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이름, 모양, 습성, 맛, 건강 효능, 민속, 고기잡이 도구까지 정리한 이른바 물고기 백과사전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정약전은 늘 백성의 삶을 염려했다. 그가 <자산어보>를 집필한 계기도 그에 있다. 온 삶을 걸어 물고기를 낚는 뱃사람이지만 자신들이 늘 낚는 물고기가 어떤 쓰임이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잘 모르는 점을 안타까이 여긴 것이다. 영화 촬영을 위해 마련된 초가에 앉아 신안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정씨 형제의 어질고 큰마음처럼 한없이 넓고 깊은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사람과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 비금도
신안에서 출생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물에 빼놓을 수 없는 세 사람. 하의도가 고향인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안좌도가 고향인 현대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 비금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이다. 2016년 열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대결은 지금도 회자되는 역사적인 명장면. 이세돌 9단은 4국에서 180수 백 불계승으로 첫 1승을 이뤄낸다. 감정 없는 AI를 인간이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인간 실존의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감동의 여운과 쾌감을 전하기에 충분한 승리였다. 이 대결은 4 대 1로 알파고가 최종 승리했지만, 승패를 떠나 이세돌 9단이 우리에게 건넨 과제와 감동은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비금도 이세돌바둑기념관에 들러 그가 남긴 영광의 기록들을 마주했다. 이세돌 9단의 첫 번째 스승이자 영원한 스승은 그의 아버지였다. 작은 섬마을에서 농사일, 바둑, 개인 연구 활동까지 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고 이수오 씨는 5세의 이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일찍이 재능을 간파한다. 이세돌은 친형 이상훈을 따라 12세의 어린 나이에 입단해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얻고,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천재 바둑기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우리 어른은 누구나 작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작은 아이가 안락한 새장을 열고 훨훨 날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결국 어른의 삶도 풍요로워질 테니.
오후가 되어 햇살이 좀 누그러지면 비금도 대동염전(국가등록문화재 제362호)에 눈꽃이 그러모아진다. 가산리 일대, 총 면적 45만3131㎡ 규모에 달하는 대동염전은 비금도의 주민들이 염전조합을 결성하여 조성한 것으로 저수지와 바닷물을 잡아두고 졸이는 증발지, 소금물을 농축시켜 소금으로 만드는 결정지, 간수를 보관하는 해주가 조화를 이루어 천일염전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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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대동염전은 햇볕, 바람, 바다, 사람의 노력으로 빚어진 거대한 예술작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땀과 또한 한숨이 담겼을까? 얼마나 많은 희망과 환희가 그득할까? 결정지에 맺힌 소금이 눈꽃인 듯, 눈물인 듯 반짝인다.”
비금도 곳곳에는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해변이 자리한다. 명사십리해변은 해변이 크고 넓은 데다 토양이 단단해 차를 이용해 해변을 달릴 수도 있다. 말 그대로 CF의 한 장면. 비금도에 들렀다면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할 곳이다.
바다 한가운데 두 개의 등대가 마주 보고 있는 원평해수욕장에는 작은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바다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무인도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내촌마을을 기준으로 왼쪽 방향에는 하누넘 해안, 오른쪽에는 고즈넉한 마을 끝자락에 내포해변이 자리한다.
내촌마을은 17~18세기에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집집마다 막돌을 사용하여 쌓은 담장(국가등록문화재 제283호)이 인상적이다. 마을 뒤의 언덕을 향해 오르면 하트해변전망대. 해안이 하트 모양으로 형성된 하누넘 해변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때에 따라 가까이에서 더욱 잘 보이는 것이 있고, 멀리서 봐야 잘 보이는 것이 있다. 하누넘 해안이 딱 그러하다. 해안의 하트 모양을 제대로 보고 싶으면 방문 전 물때 확인은 필수. 해변에 물이 가득 들어찬 시간, 전망대에 서면 완벽한 하트가 드리워진다.”
:: OTHERS 도초도&비금도에서 맛본 인생의 맛
마음이 환해져 ‘꽃띄움’의 꽃 차
국어사전에 ‘꽃놀이’가 존재하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꽃 사랑은 예로부터 진했던 것이 틀림없다. 활짝 피어난 꽃 무리를 보면 왜 마음이 절로 환해질까? 경기도 부천에서 오래 입시학원을 운영했던 이해진 사장이 도초도에 내려와 정착한 지 어언 10년. 남편의 고향이 이제는 자신의 고향처럼 익숙해져 복잡한 도시는 전혀 그립지 않단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꽃. 직접 만든 꽃 차는 목련, 산수국, 해당화, 팬지 등등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백련초, 아까시로 만든 차는 보랏빛이 참으로 아름다워 한참을 눈앞에 두고 바라봤다. 역시 꽃이 좋아!
여기 ‘간재미 초무침’에 막걸리요~!
이 한 상을 받고 어찌 막걸리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빨간 양념이 언뜻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웬걸. 간재미(간자미의 전라도 방언)는 씹는 맛이 살아 있고 양념 맛은 짜지 않고 적당히 새콤하다. 막걸리 역시 달달하고 새콤한 맛이 있어 둘의 궁합은 안 봐도 딱. 보광식당은 아버지에서 딸로 2대째 운영 중인데 이 간재미 초무침엔 아버지만의 비밀 레시피가 들어 있다고. 막걸리를 식초로 만들어 양념에 쓰는 것인데 정확한 방법은 아직 딸도 전수받지 못했단다. 보광식당은 ‘30년 맛집 향토음식점’으로 전라남도가 지정한 곳이다. 도초여객선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하니 꼭 들러보시길!
비금도에서 하룻밤은 ‘한옥펜션’에서
전남 신안군 비금면 비금북부길 781-2, 명우당 / 061-261-3333
배 타고 섬에 들어와 안락하게 묵을 곳을 찾는다면? 걱정 마시라. 비금도 비금면 일대에 조성된 한옥 펜션을 찾으면 된다. 너른 마당에는 색색의 꽃들이 만개하고 작은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손님을 반긴다. 객실 하나마다 공간이 커서 가족 단위 여행객이 머물러도 손색이 없겠다. 아침에는 알람도 없이 고운 새소리가 기상시간임을 알려준다. 펜션 인근에는 원평해수욕장, 명사십리해변, 이세돌바둑기념관 등이 자리하며 여름이면 연꽃 무리로 가득한 용소연꽃방죽도 차로 8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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