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본 여자들만 안다
누구랑 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즐기는지가 중요하다. 싱글여행을 즐기는 여자들의 여행 이야기. 그들만 아는 설렘과 재미에 대해.
충남 아산에서 ‘황토사랑 나무야’ 펜션을 운영하며 틈만 나면 떠날 궁리를 하는 임한나
별것 아니야
20대 중반, 마음 맞는 싱글여행자들과 팀을 이뤄 인도를 여행한 후 약간의 자신감이 붙어 한 달 동안의 태국 여행을 감행했다. 혼자라는 두려움은 금세 사라졌다. 하루 네 끼를 먹어치울 만큼 맛있는 음식과 눈 돌아가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24시간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도미토리 숙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첫 여행 이후 세상 어디에도 발을 내딛을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겼고, 서른이 되었을땐 아예 작정하고 3년 동안 아시아, 남미, 북미, 중동, 유럽 등 5대륙을 혼자 여행했다.
칠레 이키케, 감동의 미역국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푸른 태평양과 사막의 샌드 듄을 한 번에 내려다보기 위해 칠레 이키케의 어느 패러글라이딩 숍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놀랍게도 주인장인 필립의 아내가 한국의 열혈 팬. 한국에서 몇 년을 살았다는 그녀는 내 생일이 다가온다는 말에 한식으로 따뜻한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혼자 여행하니 더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며 말이다. 진짜 제대로 된 미역국을 먹었던, 5개월의 남미 여행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날이었다.
혼자라면 ‘더’ 게을러져도 좋다
뭐든지 내 맘대로, 계획이 없어도 상관없다. 가끔은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 숙소에 산더미 처럼 현지 간식을 쌓아두고 먹고 자기를 반복 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 하나라도 더 구경해야 하지 않느냐, 그런 물음은 사양한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동물을 만나러 가요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동물을 사랑하는 나는 어디를 가든 동물병원과 동물자선단체, 반려동물 용품숍 등을 찾아다닌다. 요르단의 페트라보다 요르단 왕실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낙타 동키 동물병원이 더 흥미로웠고, 치앙마이 트레킹 체험보다 코끼리 보호자선단체 방문이 더 신났으며, 삿포로의 눈부신 설경보다 슈나우저 켄넬에서 만난 강아지가 더 기억에 남는다. 평소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 생활을 여행 중에 즐긴다면 훨씬 알찬 여행을 만들 수 있다.
부동산 개발과 공간 운영 관리를 하는 스타트업 매니저 신혜린
새로운 첫발, 교환학생
2013년 1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떠났다. 엄밀히 여행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내게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홀로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 30kg이 넘는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두바이를 거쳐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도착한 후 기차와 트램을 갈아타고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목적지인 기숙사에 다다랐을 때의 안도감이란. 발걸음을 내딛는 공간이 낯설고, 전혀 알 수없는 언어가 낯설고,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음이 낯설었다. 그리고 낯섦이 사라질 때쯤 나는 또 한 발짝 성장해 있었다.
소소한 행복이 있는 이탈리아
어린 시절부터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와 나폴리. 제 아무리 마피아와 소매치기로 악명 높아도 그곳을 포기할 순 없었다. 혼자 데다 좋지 않은 소문을 너무나 많이 접한 탓에 모든 것이 경계의 대상. 심지어 길을 잃은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노부부에게도 그랬다. 그들을 따라 버스에 올라 이동 하면서도 뭔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지만 그들은 친절했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뒤돌아섰을 때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라서 두렵지만 혼자여서 특별한 추억이 쌓이곤 한다.
우연한 만남
낯선 어딘가에서 오롯이 나 혼자이고 싶을 때 떠난다. 재미있는 사실은 싱글여행이었을 때 오히려 사람들과의 만남이 쉽다는 것. 우연한 만남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 방심은 금물! 낯선 이의 접근이 호의인지 불순한 의도인 지는 잘 파악해야 한다.
여행 노트를 작성하라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어디를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여행을 하며 항상 일기를 쓴다. 좋아하는 술을 한 잔 마시면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추억을 공유할 수 있지만 싱글여행은 내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기에, 더 꼼꼼하게 순간 순간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중국 항공사에서 일하며 대만, 홍콩, 마카오 등을 혼자 여행한 권혜진
대만 to 싱가포르, 참 쉽죠?
첫 싱글여행은 대만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당시였다. 대만발 동남아시아행 비행기 티켓이 어찌나 저렴하던지 한국에서 출발할 때보다 무려 2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이렇게 싼데 어디든 못 갈쏘냐. 게다가 싱가포르는 치안이 좋아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떠났다. 유학생활의 스트레스 해소, 공부로부터의 해방, 여행이 주는 즐거움 때문일까. 4박 5일의 여행은 꿈만 같았고, 이후로도 일 년에 두세 번의 싱글여행을 즐긴다.
시골에 등장한 신기한 사람
요즘은 대만 여행을 즐기는 한국인이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수도인 타이베이를 제외하면 한국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대만 남동부의 시골 마을인 수아오에 갔을 때에도 그랬다. 오히려 현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 식당 주인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놀라며 오히려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청했고, 사진을 찍는 내내 “이럴 수가, 한국인이 우리 식당에 오다니!”라며 신기해했다. 혼자 여행하며 이렇게 ‘신기한 사람 대접’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혼자 하는 거야
뜨거운 나라가 좋지만 불쾌지수는 딱 질색!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는 내게 말을 걸거나 내가 챙겨줘야 할 일행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너무 피곤하면 숙소로 들어가 눈을 붙이고, 입맛이 없으면 초코바 하나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언제 끝날지 모를 사색에 빠지곤 한다. 싱글여행은 내게 최고의 휴식이다.
한 노래에 올인!
혼자 여행할 때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그것도 한 곡만 무한반복 재생한다. 처음에는 대화할 상대가 없어 듣기 시작했는 데, 나중에는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그 당시 추억이 떠올라 좋았다. 그리하여 퍼렐 윌리엄스의 ‘해피’가 흐르면 자동반사적으로 싱가포르에서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언제든지 쉽게 떠날 수 있도록 여행가방을 미리 챙겨두는 비노디자인 대표 유영희
그리운 시절을 찾아서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호주에서 5년을 살았다. 그곳에서의 삶이 그리움으로 남기에 어느날 갑자기 내 청춘의 흔적이 남은 그곳으로 떠나곤 한다. 홀로 찾은 싱가포르는 코끝에 내려 앉은 향기부터 옛 추억을 꺼내준다. 기억속에 남아 있는 장소를 퍼즐 조각 맞추듯 찾아다니며 가끔은 변한 모습에 실망하고, 가끔은 그대로인 모습에 행복해한다. 여행을 하며 추억을 한 조각, 한 조각 상자 안에 담고,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보물상자로 만든다.
아름다운 모네의 정원
미술을 전공한 내게 프랑스는 그 자체가 힐링 공간이다. 특히 파리 근교에 위치한 지베르니는 혼자였음에도 혼자가 아니었던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 화가 클로드 모네가 가꾸었다는 아름다운 정원과 수련으로 가득 찬 연못, 그의 숨결이 남은 알록달록 예쁜 컬러의 집과 아틀리에까지 모든 공간에 내 가슴은 뛰었다. 모네는 이곳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나 역시 모네와 함께 걸었다.
배려와 자유, 선택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의 기본은 ‘배려’다. 혹시나 가리는 음식이 있는지,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쉬고 싶은지, 이동하고 싶은지 상대방의 여행 스타일과 기분을 체크해야 한다. 반면에 싱글여행은 ‘자유’다. 계획이 있든 없든 내 마음대로 움직이면 그만. 오로지 나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여행이 즐겁다.
싱글여행, 이렇게 해봐!
첫째, 꼭 가고 싶은 곳 하나쯤은 정할 것. 약간의 지식과 기대가 여행의 확실한 조미료 역할을 한다. 둘째, 크든 작든 갤러리 한 곳쯤은 방문할 것. 관광지도 좋지만 어쩌다 마주친 그림 한 점에 넋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셋째, 멋진 드레스와 하이힐을 챙길 것. 아름다운 도시, 멋진 레스토랑에 앉아 칵테일 혹은 와인 한잔 즐길 줄 아는 여유,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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