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불러와 심어놓고 때때로 놀라는 일상이란, 인생이란
내연산을 오르는 길에 만난 상생폭포, 시름이 덜어진다 |
하늘과 바다, 지하의 중생까지 깨우는 북소리 멀리멀리 퍼져 나가라고. 북적이고 복잡한 삶이 전부는 아니라고, 내연산 깊은 속에 보경사가 있다.
나무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보경사에서 하룻밤
보경사 경내의 평화로운 풍경 |
참 우리의 몸이란 신기하기도 하지. 꿈결을 헤치고 눈을 뜨니 모기에 물린 팔을 부지런히도 긁고 있다. “스님, 모기가 저 살겠다고 제 피를 빨아먹었 는데 그냥 피만 빨아먹고 가지. 왜 이렇게 간지럽게 하는 걸까요? 그리고 한자리에서만 먹고 가지. 왜 팔다리 다 물고 가 사람을 괴롭히는 걸까요? 모기한테 화가 나요.” 그러면 스님은 뭐라 하실까? “너는 바보다. 네가 모기한테 화를 내면 너한테 좋을까? 모기한테 좋을까? 좋은 거 하나도 없지. 너만 손해지. 모기는 네가 화를 내든 안 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사람한테라면 어떨까? 화를 내는 사람이 힘들까, 가만히 화를 듣고 있는 사 람이 더 힘들까?”
다시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그래, 모기에게 화내는 사람이 바보야. 그런데 이 모기가 또 달려든다. 내 잠을 뺏어가는 나쁜 모기. 이불을 박차고 모기를 찾는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기가 눈 앞으로 달려든다. 손에 맞은 모기가 나가떨어진다. “스님, 그래도 제 맘대로 화를 내는 사람은 그렇게 막 지르고 나면 개운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 화를 고스란히 받아준 사람만 억울하잖아요.” 스님이 가엾은 중생을 바라보시며 말한다. “화가 갑자기 생기라고 해서 생겨나는가? 그 사람이 화를 낼 때 어떤 모양인지 떠올려봐라. 왜 참아준다고 생각 해? 그냥 놔둬. 마음도 주지 않고 그냥 놔두는 거야.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 봐. 싸우기도 잘 싸워. 왜 그럴까?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싸우는 거야. 집착을 안 하게 되면 저절로 놓아진다. 버린다는 생각도 안 하는 거야.”
장뇌삼, 생지환 등을 넣어 약처럼 진한 차를 음미한다 |
정말 스님에게 모기 얘길 하면 저런 말씀을 하실 것 같다. 나는 지금 경북 포항 보경사에 와 있다. 내연산 깊은 숲 속에 제비가 보금자리를 짓고, 보살견 보리와 지혜가 뛰어노는 사찰은 신라 진평왕 24년(602),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 법사가 이듬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보경사 템플스테이에 함께하며 제일 기다린 시간은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었다. 스님이 직접 만든 장뇌삼 차는 빛깔만큼 맛도 진했다. 바보 같은 질문에 스님이 알려주신 답들은 마치 발효 음식 같다. 자꾸 되뇌고 음미해야 참 맛을 알게 되는 답들. 까마득한 밤, 모기에 물린 팔을 박박 긁으며 숙소의 문을 열었 다. 폭우가 쏟아지는 줄 알고 밖에 둔 신발 생각이 났던 것인데, 비는 한 방울도 없이 어둠 속에 큰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다. 윙, 윙, 쌩, 쌩. 매섭게 문을 쳐대는 산바람 속에 천둥이 내리꽂힐 것 같다. 천둥도, 화도, 좋아하는 마음도 저 스스로 불러와 가둬놓고 때때로 놀라는 자신이다. 상처를 받았다 생각했는데 내가 준 적 없이 스스로 난 상처는 없구나.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추려면 더 자는 것이 좋겠지만 이래저래 뒤척이는 밤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철든 어른처럼
내연폭포에서 잊지 못할 순간 |
보경사 템플스테이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인 이슬기 씨와 변지영 씨가 함께했다. 동생인 슬기 씨는 직장생활을 접고 ‘카페 다르크’를 운영한 지 일년이 넘었다. 카페 이름은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에서 따왔다. 수줍은 미소와 점잖은 행동이 어여쁜그 안에 내가 알지 못하는 용맹함이 숨겨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코로나19로 너무도 어수선한 분위기인지라 새내기 사장님은 괜찮을지 염려가 되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한 건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였어요. 목표하는 바까지 운영 기간도 정해두었고요. 카페 앞에 불광천이 흐르는데 평일에는 주민 손님이 대부분이고, 주말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요. 덕분에 매출이 큰 차이가 나진 않죠. 아플 때나 어디 놀러가고 싶을 때도 카페를 지켜야 하니 힘든 점도 있지만, 직장 다닐 때보다 제가 스스로 뜻을 펼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오히려 몸도 마음도 편하고 즐거워요.”
스님이 내려주신 모든 차가 좋았다 |
참 야무지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딱 잔다르크와 닮지 않았는가. 스님과의 차담 시간에 슬기 씨는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었고, 스님은 예의 놔두라고 했다. 이어서 스님은 땅이 더 큰지, 바다가 더 큰지 질문했다. 슬기 씨는 그 어떤 사람 들보다 적극적으로 정답을 맞혀갔다. 물이 가득 찬 그릇에 물이 비워지면 무엇이 남는가? 질문이자 답이다. 슬기 씨와 함께 템플스테이를 처음 경험하는 변지영 씨는 누구 보다 스스럼없고 당찬 성격이다. 지난해 아프리카를 다녀온 그녀는 그 여행으로 삶의 가치관까지 바뀌었다고 한다. 여행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가까운 시일에 책도 낼 예정이다. 그림이 있는 여행책, 어쩌면 미식가로서 식도락을 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어떤 책을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기 반, 소리 반의 노래처럼 감칠맛 나는 책을 보게 되리라 기대한다.
모든 것은 다 계획되었다
보리수에 소원을 담아 |
우리 모두는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새로운 것을 하나 하나 경험했다.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템플스테이가 처음인 이들을 위한 스님들의 배려이리라. 다른 곳도 그러하겠지만 보경사는 법고를 담당하는 스님, 지도법사 등이 따로 있어 그때그때 적절한 예법을 일러준다. 보경사에서 그간 구경만 하던 불구를 직접 쳐볼 기회를 가졌다. 범종은 지하의 중생을 깨우기 위함이고, 목어는 물고기, 운판은 공중의 새를 깨우기 위함이다. 외롭고 쓸쓸한, 불쌍한 중생을 깨우기 위해 각각의 불구는 혼을 담아 두드린다. 지범 스님이 법고 앞에 섰다. 그저 큰 북을 세게 두드린다고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는 엄청나게 우렁차며 박자와 음률이 있어 아름답다. 거짓말쟁이는 이 소리를 듣고 진실을 말하고, 먼 데 있는 그리운 사람은 서둘러 찾아올 것만 같다.
뜻은 잘 몰라도 경건한 마음 가득한 예불 시간 |
사찰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 계획되지 않은 행동이 없는 듯했다. 그릇에 차를 담아 마시는 것에도, 마당을 비질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있는 것만 쓸지 않고 없는 것도 쓸어낸다. 없는 생각까지. 생각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집착 없이 그냥 보내주는 일. 하루아침에 이뤄낼 경지는 아니겠지만 일상을 유익하게 보낼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우연이 인연 되는 보경사에서 우리 만나요!
“답은 정확해야지”
한 집안의 가풍은 무릇 부모가 만드는 것아니겠는가. 천년고찰 보경사는 학식 높은 교수님처럼 근엄하고 친정아버지처럼 포근한 철산 스님(주지)이 계셔 더욱 빛난다. 스님의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에 답을 찾느라 진땀을 뺐지만 참 좋았던 시간. 스님, 많은 것을 주셨지만 그중 단 하나라도 배우고 갔으면 잘한 거죠? (쓰담쓰담) 그나저나 물은 어디서 시작되는 건가요? 정말 모르겠어요.
“스님, 저 부르셨어요?”
보경사의 역사부터 전각에 깃든 이야기, 스님들이 하시는 일 등 세세한 것부터 하나하나 알려주고 챙겨주신 임경화 팀장님. 절에서는 보살님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로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인원은 소수이지만 보살님은 바쁘다. 바빠. 초여름이 무색하게 30℃가 훌쩍 넘는 뜨거운 날씨에도 스님의 심부름부터 우리를 챙겨주느라 여기저기 부지런히 뛰어다닌 보살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여러분은 외우고 있는 불경이 있나요? 지도법사인 도근 스님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천수경, 법성계를 줄줄이 외우며 예불을 드립니다. 그 많은 불경과 순서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읊는지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이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스님은 아기처럼 순수하고 소녀처럼 맑으셔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혼을 담습니다”
많은 사람이 멈추어 서서 지범 스님의 법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저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중생을 깨우기 위한 소리이기에 스님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북을 두드렸던 것 같아요. 그 소리가 너무도 거대하고 아름다워서 처음 듣고는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각자 마음껏 법고를 두드리고, 운판을 쳐보고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내 이름은 보리”
보경사에는 제비도 살고요. 보리도 살아요. 보경사의 그 누구보다 느긋한 보리는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그런 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꾸만 부르게 돼요. “보리야?!”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닌 척하며 미소 짓고, 안 보는 척하며 오가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귀여운 녀석입니다.
“귀엽지혜”
보경사의 떠오르는 샛별. 임보살님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보경사에 지혜가 나타난 후로 보리가 질투를 한다고 해요. 보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해맑은 지혜는 보리를 따라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갑니다. 순둥이 지혜랑 보리랑 내내 건강해야 해!
My First Templestay
“나도 모르게 불심이 생겼다. 세례명이 베로니카인데… 천주교와 불교는 통하는 게 많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비슷한지 몰랐다. 주지스님과 차담을 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고 템플스테이 후 주위 사람들에게 ‘차분해졌다, 인상이 평온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법고와 범종을 직접 두드렸을 때는 속에서부터 큰 울림이 일어나 감동적이었다. 덧붙여서 절밥, 너무 맛있었다. 나물을 먹으며 다이어트를 기대했는데 두 그릇씩 퍼먹게 되는 마성의 매력. 심지어 1박 2일 동안 2kg 쪘다!” - 변지영(@veronicka.byun)
“속세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너무 적막해서 조금 무서울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겪어본 템플스테이는 제 생각과는 전혀 달랐어요. 역동적으로 만들어내는 웅장한 북소리는 시름을 조각내었고, 폭포로 향하는 땀 맺히는 산길은 온몸의 독을 빼주었어요. 스스로 마음과 몸의 짐을 덜어낼 수 있게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란한 머릿속을 비워내주는 주지스님과의 차담이 이 템플스테이의 화룡점정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이슬기(@cafe.darc)
보경사
- 위치 :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 전화 : 054-262-1117
- 홈페이지 : www.bogyeongsa.org
전국 템플스테이 문의 및 예약 ‘한국불교문화사업단’
- 위치 :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6
- 전화 : 02-2031-2000
- 홈페이지 : www.templestay.com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여행업계 관계자,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무료로 지원하는 ‘쓰담쓰담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쓰담쓰담 템플스테이’는 오는 10월까지 전국 80개 사찰에서 운영한다. 신청자의 동반 1인까지 무료로 총 1박 2일의 휴식형 템플스테이에 참여 가능하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촬영협조 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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