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의 보물, 증도
1975년, 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렸어요. 신안 증도 앞바다에 잠들어 있던 중국 원나라 무역선의 정체가 700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죠. 고급 도자기와 금속공예품 등 1300년대의 보물을 잔뜩 실은 배 덕분에 신안의 조용한 섬 증도도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생명력이 꿈틀대는 갯벌, 끝없이 펼쳐진 염전, 향기로운 숲… 섬 곳곳이 보물처럼 반짝이는 증도의 순간을 만나볼 시간입니다.
증도의 청정 갯벌 |
갯벌은 살아 있다
바스락바스락, 뽁, 뽁, 폴짝, 뽀르르…. 증도의 갯벌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갯벌의 진정한 주인들이 부지런히 살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다. 짱뚱어는 작은 지느러미를 퍼덕이며 멋진 점프를 선보이고, 고둥은 느리게 움직이며 갯벌에 예술적인 그림을 아로새긴다.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따로 있다.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지 쉴 새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작은 게, 바로 흰발농게다. 갯벌 매립 등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줄면서 멸종위기종이 되었으나 증도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백로, 알락꼬리마도요 등 66종의 조류도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간다.
한쪽 집게다리가 큰흰발농게와 힘차게 날아오르는 짱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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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멸종위기종만 해도 10여 종이나 된다. 환경 변화로 점차 발붙일 데 없는 생물들에게 증도의 갯벌은 소중한 보금자리다. 증도가 ‘생태 그랜드슬램’이라 불리는 다양한 타이틀을 획득한 이유다. 유네스코는 신안의 갯벌과 염전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증도의 갯벌은 생태적인 우수성과 생물 다양성을 갖춘 지역에 지정하는 람사르 습지로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갯벌도립공원으로도 지정되었다.
지구 곳곳의 환경 자원과 종의 다양성이 날로 위협받고 있는 요즘, 온전한 해양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드문 곳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갯벌 속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조그만 기척에도 재빠르게 뻘 속으로 숨어버리니까.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 ‘갯벌멍’을 즐기다 보면 짱뚱어와 게가 슬슬 구멍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내 그들은 부지런히 갯벌 위의 일상을 살아간다. 한숨 돌리는 여유를 인간에게 가르쳐주려는 갯벌만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태평염생식물원 |
하늘빛을 닮은 소금밭
증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거울이 있다. 462만8099㎡(140만 평)로 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태평염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염전에 얕게 찰랑대는 바닷물은 하늘빛을 그대로 반영할 정도로 투명하고 맑다. 증도가 ‘소금의 섬’이 된 것은 1953년.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을 위한 생계 수단으로 조성한 것이 바로 염전이다. 6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의 흔적은 염전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염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금박물관이 대표적이다. 1945년에 지어진 소금 창고를 새로 단장해 쓰고 있는데, 한국 유일의 석조 소금창고이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태평염전 |
태평염전의 절경을 만끽하고 싶다면 해 질 녘에 이곳을 찾아보자. 인근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과 동시에 붉게 물드는 염전을 만날 수 있다. 증도에는 3층 이상의 건물이 없는 덕분에 섬 전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하늘의 해가 염전과 바다에 반영되면서 동시에 3개의 태양이 불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염전 옆의 염전습지에 조성된 태평염생식물원에서는 은빛으로 물결치는 갈대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염전습지는 바다와 염전의 이음새 역할을 하는 곳으로, 염전의 침수를 막고, 바닷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풍부한 유기 영양분과 천연 미네랄을 품고 있어 다양한 염생식물이 자생한다.
금목서와 은목서의 은은함에 취하는 ‘향기나는 숲’ |
향기 나는 섬, 증도
증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장면이 있다. 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아침 해가 떠오른 직후, 우전해수욕장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 4km의 긴 해안선을 따라서 수백 그루의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해송(海松) 숲이다. 소나무가 심긴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지형을 똑 닮았다고 해서 ‘한반도 해송숲’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하늘까지 뻗은 소나무 사이로 아침 햇빛이 비치면 산신령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상을 탔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 우전해변의 바다 내음을 즐기며 숲을 걷다 보면 ‘숲 치유’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저절로 이해된다.
증도의 숲을 거닐 때의 또 다른 팁, 숨을 크게 들이마실 것. 미세먼지 차단 숲을 조성해 청정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면적 15ha, 길이 8.5km에 이르는 대규모 숲에는 미세먼지 흡착 기능이 높은 태산목과 금목서, 은목서, 돈나무 등 9만8000여 그루가 새로 심겼다. 덕분에 대기질이 맑아진 것은 물론이고, 은은한 향기로 섬에 우아함을 더한다.
'향기 나는 섬' 증도의 은목서 꽃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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