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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발견한 여유

바다와 땅과 여유, 그리고 ‘불멍’까지.

모든 것이 있는 곳, 해남 땅끝오토캠핑장으로 떠난 1박 2일의 짧은 캠핑 여행기.

여름의 초입, 6월에 단비 같은 짧은 휴가가 주어졌다. 태양을 피하고, 또 사람을 피할 ‘언택트 여행지’를 고심하며 지도를 훑어보던 내 눈에 두 글자가 들어왔다. 전남 해남군의 별칭 ‘땅끝’. 이 땅의 끝이라니, 새삼 낭만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이들로 붐비는 도시와는 다르다고, 바다와 갈매기만이 나를 기다릴 거라고 ‘끝’이라는 글자가 말하는 것 같았달까. 그래서 한국 지도의 가장 왼쪽 아래에 톡 튀어나와 있는 꼭짓점, 해남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땅끝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진 해남에서도 가장 왼쪽 끝에는 해남 땅끝오토캠핑장이 있다. 해남군에서 직접 운영하기에 관리가 철저 하고, 남해가 코앞이라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캐러밴! 캠핑의 낭만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웬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벼운 짐만 챙기면 되는 캐러밴은 장비가 부족한 캠핑 입문자에게 그 자체로 백점 만점의 목적지다. 게다가 여느 캠핑장의 반 정도밖에 안되는 저렴한 가격까지!

DAY1 9:00

해남까지는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목포역까지 내려가 렌터카로 이동하기로 한다. 여정은 ‘땅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금방이다. 기차에서 내려 30분쯤 지났을 까.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보리, 붉은색의 황토밭에 빼곡하게 심긴 고구마밭이 이어진다. 해남 풍경에 지루할 틈 없는 드라이브를 즐기는데 이내 눈이 시원해진 다. 왼쪽으로 한가득 펼쳐진 푸른 바다 덕분이다. 시선을 빼앗는 아름다운 경치에 잠깐 내려서 걷다 갈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 도로 이름이 아예 ‘경치 좋은 길’이다. 해안도로 끝에 나타날 캠핑장의 풍경은 얼마나 좋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한다.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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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땅끝오토캠핑장. 송호 해수욕장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부지에 캐러밴 18대와 직접 텐트를 칠수 있는 사이트 50여 군데를 갖춘 곳이 다. 이 중 4인용 캐러밴에 짐을 풀기 시작하는데… 언제 이렇게 짐이 많아진걸까. 여행 콘셉트를 ‘바닷가 감성 캠핑’으로 정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좀챙겼더니만, 짐을 옮기는 데만 한나절이다. 마음은 미니멀리스트인데 두 손은 맥시멀리스트인 성향이 땅끝에도 따라왔나 보다. 잠깐의 노동(?)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힐 참인데, 캐러밴의 에어컨 덕분에 금세 더위를 식힌다.

15:00

캠핑장에서 3분 거리의 송호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서본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서일까. 해변은 한적하고 파도도 잔잔하다.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찰랑이던 물결이 썰물로 저만치 밀려났다. 덕분에 얼굴을 드러낸 바다의 바닥을 밟아볼 기회가 생겼다. 갯벌 곳곳에서 바쁘게 꿈틀거리는 작은 게와 고둥이 너른 바다를 걷는 동안 외롭지 않게 동행해주었다. 저 멀리 서화도, 어불도, 작은솔섬, 큰솔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늘어진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17:00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한다. 캠핑에는 역시 그릴 바비큐가 제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캐러밴 시설을 최대한 이용해보기로 한다. 냉장고, 싱크대, 인덕션은 물론이고 수저, 그릇 등 조리기구까지 갖춰두고 있어 요리도, 정리도 편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메뉴는 밀키트를 이용한 스테이크. 밀키트는 손질이 끝난 고기와 채소, 소스까지 적당한 양으로 포장되어 있어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다. 캐러밴 내의 인덕션을 이용하니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지글지글 요리하느라 땀을 흘릴 일도 없고, 음식 냄새에 벌레가 꼬일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완성된 음식을 그릇에 옮기고 캐러밴 밖에 설치된 나무 테이블로 가지고 나갔다. 캐러밴의 차양을 내리자 서늘한 그늘이 따라온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번 캠핑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19:00

캠핑장 앞에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해송숲이 우거져 있다. 한낮에는 한적하던 곳인데, 저녁 어스름이 다가오자 잔디밭에 하나씩 텐트가 들어선다. 한 커플은 차 트렁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근처에서 포장해왔다는 피자를 펼쳐놓는다. 언뜻 봐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저희는 30분 거리에 살아요. 해남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만 해 질 때 풍경은 여기가 가장 멋있어서 자주 온답니다. 다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주말이면 텐트가 빼곡해요.” 그의 말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채우고 있었다. 전국에서 모였다는 바이크 라이더들은 그릴에 삼겹살을 올려두고 바비큐를 즐기는 데에 한창이고, 잠시 지나가려다가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나흘째 눌러앉아 있다는 중년 부부는 차를 끓이며 조용히 담소를 나눈다. 눈인사를 건네니 곧장 “한 잔 마시고 가요!” 하는 친근한 답이 돌아온다. 평화로운 풍경이 만들어내는 여유일까. ‘사람을 피해 쉬고 싶다’는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캠퍼들의 오지랖(?)이 반갑기만 하다.

21:00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불멍’. 바다가잘 보이는 덱(deck)에 자리를 잡고 작은 화로에 불을 붙였다. ‘땅끝’이라 근처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서울에서 모든 것을 바리바리 챙겨왔는데, 해변 근처의 작은 가게들은 있을 건 다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장작에 쉽게 불이 붙게 만들어주는 착화젤을 샀다. 덕분에 불 피우기 초보임에도 단숨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 귀로는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 ASMR을 감상하고, 눈으로는 붉은 불길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명상의 시간이 따로 없다. ‘불멍’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캐러밴으로 돌아오는 길, 바다 옆에서 하루를 꼬박 보냈더니 짠 기운이 온몸에 스며드는것 같은 기분이다. 캐러밴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맞는다. 텐트를 이용하는 캠핑에서는 공동 샤워실을 이용해야 해서 불편했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는 깔끔한 화장실을 갖춘 숙소라니, 이 정도면 충분히 호화스러운 여행인 것같다. 문명이 선물한 쾌적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땅끝마을의 하루를 기록하다 스르르 잠이 든다.

DAY2 8:00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눈을 떴다. 근처의 땅끝마을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걱정한 것과 다르게 몸이 가벼웠다. 아침의 피로야 말로 내가 캠핑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리 푹신한 침낭과 패드를 준비한다고 해도 자고 나면 왜 그렇게 온몸이 결리는지. 그것까지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캠퍼겠지만. 캠퍼 초급 자인 나는 웬만한 숙소 못지않은 캐러밴에서 편안하게 휴식한 덕분인지 상쾌하게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캠핑장에서 언덕 하나만 넘으면 금세 땅끝마을이다. 여행객이 많아 휴가지 같았던 캠핑장 근처와 다르게 땅끝마을에는 어촌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새벽에 바다를 나섰다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깃배, 고산 윤선도 유적이 있는 보길도로 떠나는 여객선…. 이곳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거점인 갈두항 옆에 왠지 익숙한 형태의 기암괴석이 눈에 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애국가 영상에도 종종 등장할 정도의 일출 명소. 특히 2월과 10월중 열흘 정도는 ‘맴섬’으로 불리는 쌍둥이 돌 정가운데에서 빨갛게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해남으로 캠핑을 온다면 미리 일출 시간을 확인해서 그 풍경을 두 눈에 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짧은 여행을 마무리한다. 왠지 그날이 아주 멀 것만 같지는 않다는 생각과 함께.

해남 땅끝오토캠핑장

  1. 위치 :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산길 25-5(목포역에서 차로 1시간 30분)
  2. 문의 : 061-534-0830
  3. 휴무 : 매주 월요일, 명절 전날 및 명절 당일 휴무
  4. TIP : 땅끝오토캠핑장의 장점 중 하나는 이용료가 저렴하다는 것. 성수기(7·8월) 기준 4인용 캐러밴은 8만~10만 원, 5인용은 10만~12만 원이다. 바다와 가까운 캐러밴일수록 인기가 높으니 방문 전 예약은 필수!

글 김은아,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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