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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역(驛) - 대구 서문시장(場)

동대구역(驛) - 대구 서문시장(場)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그곳, 서문시장.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곳엔 '생명력'이 담겼다.

서문시장을 끝으로 역 인근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연재글을 맺는다. 조선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대구 서문시장. 물론 서문시장의 유명세가 그때와 지금이 같지는 않다. 그래도 여전히 시장을 터전 삼아 생업을 잇는 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삶이고, 대구가 낯선 이들에게는 지역의 가감 없는 문화를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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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나무, 이제 내년에 만나자.

동대구역(驛) - 대구 서문시장(場)

조선 3대 시장이던 서문시장은 긴 역사와 명성만큼 볼거리도 많다.

옛날에는 나라가 해주는 것 없이 거둬가기만 했다. 그것이 세(稅)인데 ‘조용조(租庸調)’라 해서 세 가지였다. 조(租)는 땅에 매긴 것으로 곡식이다. 용(庸)은 사람의 부역으로 징집이나 육체노동이고, 조(調)는 집에 할당하는 것으로 공물(貢物) 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공물, 즉 특산물 진상이다. 그런데 내 집은 바닷 가이니 공물을 미역으로 내겠소, 하고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호랑이 가죽을 내라, 너는 말을 내라, 하고 관리가 정해준다. 그 품목이 현실과 안맞는 경 우가 많았다. 세리(稅吏)에게 하소연하여 품목을 바꾸려면 뒷돈을 내야 한다.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광해군이 제일 잘한 일이 대동법이다. 세납을 쌀로 통일했다. 조세(租稅) ‘1결(結)에 쌀 12말(斗)’, 이제는 쌀이 세금이다. 농민이야 걱정 없지만, 소 키우고, 고기 잡고, 소금 캐서 연명하는 사람들은 쌀과 바꾸기 위해 어디론가 가야 했다. 그곳이 시장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들고 시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에 시작된 이 조세혁명은 100년이 걸려 정착된다. 지주일수 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형평의 논리도 갖고 있었으며, 공납이 무서워 떠났던 사람들이 귀향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정유재란 두 전쟁을 거치면서 피폐해진 민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으며, 무엇보다 시장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수차례 화마에 휩싸이고도 명맥이 끊이지 않는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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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화제 속에서도 건재한 서문시장은 주변의 건물 또한 잘 보존되어 있다.

당시 조선 3대 시장은 평양장, 강경장, 그리고 대구 장이다. 한낱 읍성의 향시(鄕市)에 불과하던 대구 장은 왜란과 대동법을 거치면서 경상·전라·충청의 삼남을 통틀어 최대의 시장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 대구장이 지금의 대구 서문시장이다. 경상 좌·우도를 통합하여 대구에 설치된 경상감영의 서쪽 문 밖에 있다 해서 서문시장이다. 대구는 경상도의 심장부이며, 육로로 사통팔 달하고, 낙동강의 수로까지 겸해 천혜의 조건을 두루두루 갖추었다. 시장이 발달 하면 물물의 상거래뿐 아니라 인구유입에 따른 숙박과 요식, 교통과 금융 등 도시 전반의 기능이 확대되는데, 대구는 서문시장이 그 견인 역할을 한 것이다. 삶도 부침이 있듯, 시장도 성쇠가 있기 마련. 잘나가던 서문시장에 검은 구름이 끼기 시작했으니, 불이다. 6·25전쟁 중인 1952년 대형 화재로 인근 420여 가구가 불탔고, 1960년 큰불로 1800여 점포가 사라졌다. 1년 뒤에 또 불이 나 200여 개의 점포를 태웠고, 1967년 또 대형 화재가 발생해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해방 이후 20여 년 동 안 무려 6차례의 화재가 일어나 시장 사람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시련을 딛고 제일 먼저 다시 일어나는 곳이 또한 시장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땅에 발을 딛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곳, 정치인들이 뜻을 이루기 위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대구의 상징, 서문시장이다.

전통시장 특유의 문화가 살아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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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내년 설을 기다리고 있는 곱디 고운 한복의 자태.

1990년대 들어 서문시장은 현대화로 탈바꿈했다. 시장 진입로를 넓히고, 주차공간을 확충하고, 냉난방 시설을 갖춘 대대적인 건물 개·보수를 하면서 외형을 신식으로 바꿔나갔다. 또 대형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통시장 특유의 흥성거림, 값싸고 질 좋은 상품들, 상인들의 친절교육 등을 통해 옛 명성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서문시장은 축구장 7개 면적에 6개 지구, 4000여 점포가 들어서 있고 상인 2만여 명의 살림터다. 전통적인 섬유산업 도시답게 우리나라 최대의 원단시장이 자리한다. 주단과 포목 등의 원단은 주로 한복과 양복으로 해 입다가 운동복, 등산복, 내의, 양말, 이불, 커튼, 가방에 이르기까지 천으로 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여 판매의 주종을 이루는 효자상품이다. 거기에 그릇, 청과, 건어물, 해산물 등 한마디로 없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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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은 시장 구경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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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즉시 나오는 분식과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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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어묵 한 입 베어 물고 국물 한 모금만 마시면 내복이 필요 없다.

서문시장은 먹을거리 천국이다. 제일 유명한 것이 칼제비. 칼국수와 수제비가 섞인 것으로 4지구 국수골목에서 판다. 시원한 멸치국물에 양도 많고, 값은 4000원. 점심때는 줄이 늘어선다. 거기에 잣이 들어간 씨앗호떡을 일회용 컵에 담아 후식(?)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다. 자장면에 구운 삼겹살을 얹은 ‘삼겹살자장면’, 떡볶이에 김과 깻잎, 양파를 뿌린 ‘못난이 떡볶이’ 같은 이색 먹을거리도 있다. 1인분에 8개 3000원하는 ‘납작만두’, 매장에서 직접 끓인 단팥을 넣어 만든 ‘근대골목단팥빵’도 인기 품목. 젊은이들은 야시장이 열리는 저녁때 많이 찾는다. 야시장은 매일 저녁 7시부터 여름은 11시 반까지, 겨울은 10시 반까지 한다. 약 350m 거리에 80여 개의 매대가 늘어선 풍경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온다. 섹시한 김밥, 채소 수제 핫도그, 콩나물 어묵, 어묵 고로케, 순대꼬치, 칠리버터 갈릭새우, 아이스크림 튀김, 봉지맥주 등 음식에 젊은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 ‘거리의 화가’도 있고, 펫 용품을 파는 ‘개다방’도 있다. 손님을 끄는 이벤트도 자주 열리는데, 유명가수의 콘서트뿐 아니라 고객이 직접 참여하는 노래자랑, 보부상 퍼레이드, 한복 패션쇼, 케이팝 댄스공연 등 볼거리도 많고, 사격 다트, 가상현실(VR) 같은 즐길거리도 많다. 서문시장 인근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시장 동쪽에는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고, 동산동 청라언덕에 3·1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등을 둘러보며 과거로의 산책을 다녀와도 좋다. 북쪽으로는 경상감영공원, 대구근대역 사관, 달성공원으로 이어진다. 꼭 하나 빠뜨리지 않아야 할 것이 서문시장에서 멀지 않은 방천시장,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둘러보는 일이다.

 

글 이광이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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