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겨울밤, 경주의 낭만에 빠지다
매서운 겨울바람도 경주의 야경 앞에서는 잠시 관대해지는지 경주의 밤은 황홀할 만큼 눈부시다.
형산강을 따라 신라 천년의 빛이 일렁이고 발 닿는 도심 곳곳 신라인의 숨결이 가득하다.
지금, 낮보다 아름다운 천년고도 경주의 밤에 취할 시간.
一景, 월정교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월성지구를 따라 걷다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 멀리 반짝이는 다리가 월정교란 사실을 절로 알게 된다. 다 리에는 흥미로운 설화 하나가 전해지는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다. 원효대사가 옷을 입은 채로 다리에서 떨어지자 태종무 열왕의 명을 받은 신하가 그를 요석궁으로 인도해 옷을 말리게 했고, 이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머물며 아들 설총까지 얻게 됐다는 이야기 다. 원효대사가 금기된 사랑의 다리를 건너갔듯, 그의 발걸음을 따라 월정교에 올라본다. 끝도 없이 늘어선 붉은 기둥과 옥색빛의 천장, 오 색단청이 화려함의 극치를 장식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니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고 배기랴.
9:00~12:00
경북 경주시 교동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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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景, 보문호
경주보문관광단지 개발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165만2900m²(50만 평) 규모 의 인공호수. 특급호텔, 종합상가, 놀이 공원 등 각종 시설을 갖춰 경주의 대표 관광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보문 관광단지 내부는 보문콜로세움, 꽃 첨 성대 등 한 번쯤 인증샷을 남길 만한 포 토스폿이 가득하다. 보문호 둘레길은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갖춰져 있어 하이킹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봄이면 벚꽃이, 여름엔 푸른 녹음이, 가을엔 단 풍이, 겨울엔 별빛 야경이 관광객을 불 러모은다. 야경 명소는 경주월드와 경 주타워, 다양한 호텔이 한눈에 들어오 는 경감로 일대. 무지갯빛으로 변하는 관람차를 눈에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북 경주시 보문로 424-33
三景, 동궁과 월지
신라시대 왕자가 거처하는 곳이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가 열리던 동궁과 월지.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멸망한 후에야 생겨났다.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궁터가 폐허가 되자 ‘화려하던 궁궐은 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시구가 떠돌았고, 기러기 ‘안’ 자와 오리 ‘압’ 자를 써 ‘안압지’라 불렀다. 이후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가 발굴되면서 ‘왕실에서 연회를 베풀던 연못에 달이 빠졌다’하여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경주 야경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로,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부터 밤하늘이 까맣게 물들 때까지 은근하게 변하는 월지의 모습이 황홀함을 선사한다.
9:00~22:00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054-750-8655
四景, 신라대종
“모양은 큰 산이 솟은 듯하고 소리는 마치 용이 우는 듯하다.” 높이 3.66m, 평균 두께 20.3cm, 무게 20.17톤의 신라대종은 국보인 성덕대왕신종을 현대적 기술로 재현한 종이다. 약 1200년간 서라벌을 울려온 성덕대왕신종은 2003년 개천절 타종을 마지막으로 종의 보전을 위해 경주국립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밤이면 종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 사이로 섬세하고 우아한 문양이 드러난다. 신라대종은 타종 체험도 제공한다. 신라 전통의상을 착용하고 정각에 맞춰 종을 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11:00~17:00(13:00 제외 매시 정각)
5인 이하 5000원, 10인 이하 1만 원
경북 경주시 태종로 767
054-741-2594
五景, 금장대
경주에는 세 가지 진귀한 보물과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을 뜻하는 ‘삼기팔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 중 하나가 ‘금장낙안’인데, 여기서 금장이 바로 임금이 노닐던 금장대다. 금장대에서 내려보는 서라벌의 풍경이 매우 빼어나 날아가던 기러기도 잠시 쉬어갈 정도였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새롭게 단장한 덕에 잘 정비된 산길을 따라 약 10분이면 금장대에 오를 수 있다. 야간 경관조명이 설치된 누각에 마음을 모두 빼앗기기에는 이르다.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오르면 형산강과 경주 시가지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기러기라도 된 양, 풍경에 취해 휴식을 취해본다.
6:00~22:00
경북 경주시 석장동 산 38-8
六景, 경주읍성
고려시대 석축읍성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됐다. 월성이 신라시대 왕궁을 대표한다면, 읍성은 신라 이후의 경주를 상징하는 문화재다. 본래 동쪽의 향일문, 서쪽의 망미문, 남쪽의 징례문, 북쪽의 공진문 등 사대문을 갖춘 형태였으나, 일제강점기 동쪽 성벽 50m가량을 남기고 대부분이 헐렸다. 이에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공사가 시작돼 동문과 옹성을 갖춘 현재의 형태를 띠게 됐다. 경주읍성의 야경은 대자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성과 마루 곳곳에 설치된 LED 조명등 480개가 경주를 굳건히 지켜온 읍성에 위용을 더하는 듯하다. 읍성 주변 ‘신상’ 카페와 맛집도 눈여겨볼 것.
경북 경주 시 동부동
七景, 월성해자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해 붙은 이름 ‘월성(月城)’. 101년 축성돼 신라가 망하는 935년까지 무려 830여 년간 월성은 왕궁으로서 같은 자리를 지키며 신라의 비밀을 고스란히 품었다. 월성에 담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기 위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4년부터 행하고 있는 발굴조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월성을 둘러싼 해자(垓字)가 빛날 차례다. 고요한 물 위로 하늘을 수놓는 붉은 노을이 그대로 투영되고, 해자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은은한 달빛까지 온전히 받아낸다. 해자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느린 걸음으로 10분. 월성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경북 경주시 인왕동
八景, 첨성대
경주의 상징이자 국보인 첨성대. 과거 첨 성대가 ‘수학여행’ ‘현장학습’ 필수 코스로 여겨진 데 비해 최근의 첨성대는 조명예 술의 아이콘이자 MZ세대의 성지로 주목 받고 있다. 첨성대뿐 아니라 핑크뮬리·해 바라기·댑싸리 밭 등 인근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해가 핑크뮬리를 더욱 붉게 물 들이는 시간이 첨성대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때. 포토존을 따라 걸으며 인증샷을 남기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반짝이는 야간 조명이 채운다. 시시각각 변하는 첨성대 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벅찬데, 마침 떠 오른 보름달에 사람들의 손은 더욱 분주 해지고. 아~ 신라의 밤이여!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글 박소윤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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