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여행, 나가사키 그린투어리즘
나가사키현 동북부 대한해협(쓰시마 해협)에 있는 작은 섬 아오시마. 이곳에서 머물렀던 마쓰오 씨 집은 사진 아래쪽 항구 왼편의 집터 골목으로 들어가 하얀 건물인 우체국 옆에 위치한다. |
일본 나가사키현에서도 첩첩산중의, 심지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고요한 역사의 기운이 충만한 작은 마을의 어느 한 가정에서 며칠을 묵었다.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여행의 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체험한 그린투어리즘 여행은 낯선 것 중에서도 가장 낯선 축에 속한다. 그린투어리즘은 일종의 농가 민박 프로그램이다. 일본 만화 주인공인 짱구나 마루코가 방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오래된 일본 전통 가옥 안으로 발을 들일 때는 “어,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같은 혼돈이 0.05초쯤 머리를 하얗게 만든다.
일본 드라마 중에 후지TV가 제작한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말 그대로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기묘한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이어진다. 그중 ‘마루코가 있는 마을’이라는 에피 소드가 있다. 실직한 가장이 딸네 가족에게도 외면받고 일자리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기묘하게 만화 속 마루코가 있는 마을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마루코의 집에서 고타츠(담요를 덮는 일본식 테이블)에 모여 앉아 마루코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하고 뭉클해진다.
한 가족의 오랜 질서가 밴 공기와 디즈니 캐릭터의 오래된 장롱이 어색하지 않은 민가에서 꾸밈없는 한 어부 가족의 일상으로 들어가 함께 한 끼 밥을 나누어 먹는 여행의 경험은 적당히 기묘하고 한껏 푸근하다.
일본 규슈 북서쪽 끝에 위치한 나가사키현까지 직항편을 이용하면 인천국제공항에서 1시간 남짓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멀지 않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그러나 대부분 유명 관광지인 나가사키시를 찾거나 네덜란드 마을로 잘 알려진 하우스텐보스를 향하는 발걸음이다. 나가사키현의 그린투 어리즘은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그린투어리즘은 젊은이가 빠져나가 농가에 어르신만 남는 집이 많아지면서 경제도 살리고 사람들도 북적이게 만들 방법을 고심하다 생겨났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이 먼저 1960년대부터 시작했고 일본은 1990년대 초반 그린투어리즘을 도입했다. 하룻밤 묵기만 한다면 일반 전통 가옥 숙박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린투어리즘의 키포인트는 체험에 있다. 차밭이 있는 마을이라면 다도 체험을 하고 바닷가가 있으면 함께 낚시를 하는 식이다. 같이 밥을 차리는 것도 일본 그린투어리즘의 특징 중 하나다. 원래는 일본 내국인을 위한 것인데 외국 관광객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경우가 늘어 영어로 된 가이드북도 만들고 관련 정책도 정비해 나가는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가사키현 일대에는 2018년 7월 우리나라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곳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나가사키-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기리시탄 관련 유산’ 이 넓게 퍼져 있어 성지순례 오는 외국인이 많아지는 추세기 때문이다. ‘기리시탄’은 일본에서 금교령 이전 가톨릭 신자를 일컫는 역사적 용어다.
이 지역의 가치를 알기 위해선 일본 천주교 역사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1549년 예수회 선교사가 일본에 그리스 도교를 처음 전파한 뒤 천주교는 영주들의 옹호를 받으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탄압과 에도 막부의 금교령이 시작되면서 성당은 무너지고 선교사들은 추방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역사 기록에도 나와 있다. 한 예로 1597년 1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 선포에 따라 스페인 선교사 등 26명은 귀를 잘린 채 교토부터 나가사키현까지 한 달여를 걸어가 십자가에 달려 창에 찔린 채 순교했다. 그런 와중에 종교를 지키려는 지역민들은 선교사를 숨겨주고 산 깊은 곳에 예배드릴 공간을 만들며 정부의 탄압 정책에 저항했다.
모질고 두려웠던 종교 탄압은 19세기 이후에야 멈췄으니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 곳곳은 그런 아픔의 역사가 생활 문화와 삶의 터전에 그대로 담긴 현장인 셈이다.
박해받은 종교, 이를 지키려던 사람들
시쓰 성당은 1882년 드-로 신부가 설계하고 공사를 맡았던 성당으로 이후 증축을 거쳐 1909년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드-로 신부가 공사를 진행했던 성당 아래 담과 당시 마카로니 공장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
그린투어리즘 체험은 낮동안의 세계문화유산 답사와 저녁의 민박 체험으로 이어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잠복 기리시탄 관련 유산은 총 12개, 나가사키현 곳곳에 퍼져 있어 사나흘 일정으로 둘러보기에는 빠듯해 히라도시의 ‘히라도 가스가 취락과 야스만다케 산’ 과 나가사키시의 ‘소토메 시쓰 취락’ 등 두 곳만 방문하기로 했다.
히라도 가스가 취락의 계단식 논. 왼쪽 위편의 높은 산이 야스만다케 산이다. |
첫날 들른 곳은 나가 사키시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히라도시다. 일본은 산을 신앙시하는 문화가 있는데 히라도섬의 야스만다케산은 그중에 서도 신적인 기운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곳이라고 한다. 히라도 가스가 취락의 안내소에서 만난 겐이치로씨는 “야스만 다케산은 천주교는 물론 일본 토속 신앙과 불교를 모시는 사당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했다. 그만큼 산의 신령이 강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들은 야스만다케산을 신앙산이라고 불렀다. 하천이 없는 척박한 땅이지만 산부터 이어지는 수로 하나로 농사짓고 먹고사니, 이 모든 것이 신의 힘이라 믿는다 고도 했다. 가스가 취락은 숨어서 그리스도교를 지킨 신도 들이 살았던 터전으로 계단식 논이 펼치는 풍경은 지금도 장관을 이룬다. 산 정상에는 지금도 당시 천주교의 예배 의식을 치렀던 석조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소토메 오노 취락의 오노 성당. 역시 드-로 신부가 증축한 것이다. 한국인 성지순례자들이 많이 찾아 한글 안내판도 볼 수 있다 |
소토메 주민 한 명이 큰 돌 위에 작은 돌로 십자가 모양을 만든다. 종교인들 묻힌 곳이 발각될까 두려워 큰 돌로 위치만 표시하고 기도를 드릴 때는 작은 돌로 십자가 모양을 만든 옛 사연을 설명하는 중이다 |
자연에 스며든 종교의 흔적과 달리 소토메는 가지런하다. 나가사키시 남서쪽의 해안가 마을 소토메의 풍경은 바다를 면한 산등성에 낮은 집들이 그림처럼 드문드문 서 있고 간간이 십자가도 눈에 띄는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소토메 시쓰 취락의 중심은 드-로 신부가 지은 시쓰 성당이다. 프랑스인인 드-로 신부는 1879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이곳 주임신부로 건너온 뒤 가난한 지역 살림을 보며 신앙보다 살길 마련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지역 자립에 평생을 바쳤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 재산을 쏟아부어(요즘 돈으로약 100억 원 가량이나 된다고 한다) 성당은 물론이고 국수나 낚시 그물 등을 만드는 공장을 세워 자립의 터전을 가꿨고 인쇄소도 세웠다.
드-로 신부상. 지역민을 위해 헌신했던 생전 모습을 동상에도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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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면 따위는 나가사키 시내로 나가 팔 수 있도록 도왔고 덕분에 지역민들 삶은 나아졌다. 지역에서 자원봉사 활동으로 드-로 신부의 흔적을 안내하던 이는 종교보다 인간적인 드-로 신부의 모습을 더 많이 묘사했다. 수세기가 지난 뒤에도 존경과 감사의 헌사를 받는 드-로 신부의 동상은 어린 소년을 안고 있다. 가장 간절했던 종교의 이름은 가장 인간적이기도 하다.
다시 고향을 찾는 젊은이들
아오시마섬에서 만난 마쓰오 씨. 어업이 주된 일거리지만 민박과 ‘마츠우라’라는 작은 관광 유람선도 운영한다. 손님이 오면 직접 회를 떠서 대접한다 |
여느 때라면 세계문화유산만이 이야깃거리에 올랐겠으나 이번 여행은 저녁 민박 체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을 선사했다. 민박이라곤 해도 그린투어리즘에 정식으로 등록해 운영하는 곳들이라 집집마다 개성 있고 편의시설도 어느 수준 이상은 마련한 곳들이다.
소노기 마을의 그린티투어리즘을 만든 오야마 씨와 어머니 세이코 씨다. 오차 체험과 민박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가까이 우레시노 온천까지 픽업 서비스도 제공한다 |
첫날은 아오시마섬의 마쓰오 씨 댁에서 신세를 졌다. 바닷사람인 마쓰오 씨는 민박을 운영하면서 손님을 위해 직접 회를떠 저녁을 대접했다. 회 한 번 떠보지 않겠느냐는 마쓰오 씨의 의사는 눈짓과 손짓으로 읽을 수 있었고 손님들은 어설픈 칼질 대신 어묵을 튀기고 그릇 옮기는 일을 맡았다. 함께 마주 앉은 저녁 자리에서 마쓰오 씨는 맥주 한 잔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원래 도쿄에서 직장을 다녔지만 삼십대 후반쯤 고향으로 내려와 섬을 살리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총 100여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현재 16채 가량은 빈집이다. 새로 지은 학교에 모여 공부하는 학생도 초중등생을 모두 합쳐 스무 명이 안 된다.
치와타 간이역에는 표도 팔고 카레도 파는 식당이 있다. 지역 명소로 인증샷을 찍는 이들이 많다. 카레 맛이 일품이라는데 끼니때가 아니라 식사는 못하고 인상 좋은 주인장만 사진에 담았다 |
그러고 보니 낮에 이곳에 오기 전 잠깐 들른 소노기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차밭을 가꾸며 부모와 함께 민박을 운영한다는 오야마 씨는 원래 음악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면서 재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쿄에서 다니던 음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그를 포함해 동네 청년 6명이 ‘소노기 그린티투어리즘’을 만들었다. 그린티투어리즘은 녹차와 민박을 연계한 것인데 잘 덖은 오차와 민박 체험이 어우러져 있다. 프로그램을 만든 뒤에는 직접 유럽의 여행박람회를 찾아가 상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돌아온 뒤로 소노기 일대에는 젊고 감성적인 레스토랑과 카페, 빈티지 숍이 하나 둘 생겨났다.
여행은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일
민박객 사이토씨, 낚시도 하고 직접 음식도 만들었다. 유쾌한 성격이라 연신 ‘스고이(대단해)’를 외쳤다 |
마쓰오 씨는 이튿날 동네 바다낚시 체험을 해보라고 권했다.
통통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아침 나절 낚은 생선으로 점심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미끼는 한 덩어리에 500엔. 한 시간 가량 낚시를 하는 동안 미끼를 다섯 덩어리쯤 썼고 그 사이 대여섯 마리 생선을 낚았다. 우리나라와 어종이 달라 정확한 이름을 아는 데는 실패했지만 복어가 두세 번 낚싯바늘에 걸렸고 도미와 볼락을 닮은 생선도 잡혔다. 파도가 잔잔해 낚시하기 안성맞춤이라 이른 아침부터 육지에서 건너오는 유람선에는 낚시꾼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가까운 방파제마다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낚시 뒤에는 섬 반대편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잠시 걸었다. 날이 흐려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지만,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산책하기에는 마침한 날씨다. 계속 섬에 머무르고 싶은 심정이지만 가볼 곳들이 빼곡하여 서둘러 짐을 챙겼다.
소토메 민박에서 이웃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이다 |
소토메 시쓰 취락을 찾은 날 들른 그린투어리즘의 민박은 아오시마섬과는 또 달랐다. 젊어 도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은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경우가 많아 조금은 현대식이고 도회적 냄새도 풍긴다. 저녁 메뉴는 문어를 넣은 타코야키와 이웃들이 십시일반 장만해온 음식들로 차려졌다. 가까이에서 ‘타이라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타이라 씨는 카스텔라와 푸딩을 만들어 왔고 누구는 접시 가득 파스타를 담아 왔다. 식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활기가 넘쳐 서로의 음식을 칭찬하는가 하면 마을의 대소사까지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타이라 씨는 둘째 아들이 도시에서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한다며 사진 촬영에 관심을 보였고 어디선가 아들이 찍은 사진 액자를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자식 자랑에도 국경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민박이라 가는 곳마다 방 구조는 달랐지만 깨끗한 이불 홑청과 널찍한 방이 하루 머물기 부족함이 없다 |
잠자리는 포근했다. 새로 빨아 개어 둔 이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났고 손님을 위해 한쪽 벽장을 가득 메운 수건은 가지런했다. 거실의 큰 창을 여니 앞으로는 바다가 한눈에 펼쳐 진다. 주인 말로는 일직선 거리로 바다를 가로지르면 우리나라 부산이 나온다고 했다. 살던 곳과 불과 두 시간여 거리인데 일상이 멀게 느껴진다. 수세기 전 선교사를 숨겨주던 사람의 마음이나, 고마운 것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단란한 시간에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21세기 일본 촌로의 마음이나 그 경중의 가치가 어찌다를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나가사키시를 거쳐 후쿠오카 공항에서 마무리됐다. 산과 들판으로 이어지던 차창 밖 풍경은 어느새 고층 건물과 쉴 새 없이 거리를 오가는 트램으로 이어 졌고 시골 민박에서 마시던 향긋한 오차는 자연스럽게 커피로 대체됐다. 세계문화유산에서 글과 유적으로 경험했던 16 세기의 문화 양식과 19세기 성당은 21세기 고층 건물과 쇼핑 몰을 가득 메운 영국 핸드메이드 화장품 러쉬 제품의 향기와 오버랩이 됐다. 역사건 건축물이건 여타 문화 양식이건, 그 안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사람이다.
글 이선정 사진 손준석 협조 일본 나가사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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