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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 2만kcal의 유혹' 간식거리의 천국 대구 '소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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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명실상부한 조잔부리(주전부리)의 도시다.

도시여행자는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평상시보다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괜찮다. 안먹으면 돌아올 때 허전하다. 카드를 빼지 않고 ATM박스를 나온 기분이다. 그렇다고 밥을 계속 먹긴 그렇다. 포만은 식탐을 무력화시킨다. 적당한 공복엔 간식이 딱이다.


간식(間食), 조잔부리 혹은 주전부리는 ‘맛이나 재미, 심심풀이로 먹는 음식’을 이른다. ‘양냥이’라고도 한다. 대구는 주전부리의 도시다. 주머니에 천원 짜리 몇 장이면 쉬지않고 음식을 맛보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하면서 간식을 먹어도 좋고, 그저 간식을 챙겨 먹으러 떠나기에도 좋은 여행지다.


가을은 ○○의 계절. 독서? 난 관심없다. 명상? 뜻도 모른다. 그저 내게 가을은 ‘식욕’의 계절이다. 먹기 좋은 곳을 찾아냈고 먹성 좋은 이(푸드디렉터 안젤라)를 꾀어냈다. 목적지는 동대구역. 1박2일 2만㎉의 ‘소확여행(소식 대신 확실하게 먹는 여행의 행복)’이 시작됐다.

떡볶이의 본고장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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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특히 떡볶이가 발달한 도시다. 3대, 5대 떡볶이 등이 곳곳에 있다. 신천시장 궁중떡볶이

대구(大邱)에 가려면 대구(大口)가 필요했을까. 동대구역부터 ‘끼니’가 무의미해진다. 몇 번이나 가본 청라언덕과 근대골목을 설렁설렁 둘러보면서 ‘무엇부터 먹을까’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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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떡볶이에선 쉴새없이 만두와 어묵을 튀기고 있다. 이것을 적셔먹는 것이 포인트.

떡볶이가 좋을까, 만두가 나을까? 예상했겠지만 결론은 ‘둘다’였다. 먼저 떡볶이. 대구는 교육도시라 학생이 많은데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지역색까지 더해져 떡볶이가 발달했다.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것이 특징이다.


호사가들이 붙인 ‘대구 3대 떡볶이’가 있다. 중떡이라 불리는 동성로 중앙떡볶이, 윤옥연 할매 떡볶이, 내당시장 달고(달성고)떡볶이 등인데 난 이미 그 셋을 모두 먹어봤다. 이번엔 ‘번외’를 공략했다. 신천시장 궁중떡볶이와 서문시장 못난이떡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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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시장 궁중떡볶이

궁중떡볶이는 신천시장 외부에 자리한 점포인데 꽤 널찍한 집이다. 점심 때가 막 지났음에도 사람이 제법 많다. 한 쪽 벽면엔 냉장고가 들어찼고 그 안엔 유산균 음료 쿨피스로 빼곡하다. 쿨피스가 저리도 많다는 것은 이곳 떡볶이가 그만큼 맵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매운 음식을 파는 집은 그것을 상쇄시킬 밍밍한 것을 준비한다. 한마디로 때리고 치료해주는 셈이다. 불닭집의 누룽지나 낙지집의 계란말이 같은 구실을 한다. 게다가 500㎖ 큰 팩 하나에 1000원. 이것은 분명 ‘복지’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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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시장 궁중떡볶이

가격도 저렴하다. 떡볶이 1000원, 어묵튀김(7개), 만두(5개)가 1500원 씩이다. 국물떡볶이에 만두와 어묵튀김을 적셔먹는 방식이다. 한 접시 가득 주문해봐야 쿨피스까지 5000원이 넘지 않는다. 갓 튀겨낸 뜨거운 만두와 어묵을 국물에 푸욱 적셨다. 매끌한 떡볶이와 흥건히 적신 튀김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어라? 생각보단 맵지않다.


먹는 순간 내가 가진 모든 땀구멍에서 송골송골 땀 방울이 맺히고 그대로 혓바닥을 빼물 것만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맵쌀하고 달달하다. 오히려 국물을 많이 품어서 그런 듯 튀김이 더 맵다. 미끈한 밀떡과 까끌한 튀긴만두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먹는 재미를 준다. 쿨피스는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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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분식 비빔우동. 먹다가 국물을 부어 물우동으로 즐기는 것이 포인트다.

대구 4대 떡볶이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연이어 중앙떡볶이에 다녀가려했으나 그날 하필 문을 닫아 그옆 미진분식으로 옮겨 옛날식 김밥과 비빔우동을 먹었다. 비빔우동은 양념에 비벼서 반쯤 먹다가 뜨거운 국물을 부어 물우동으로 마무리하는게 포인트다.(내가 스스로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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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분식 김밥. 딱 집에서 말아주는 느낌으로 참기름 향이 고소해 인기가 많다.

너무도 기특한 나머지 김밥의 핵심인 마지막 ‘꼬다리’는 함께 온 대구시 문화관광과 팀장님께 양보했다.

다양한 만두의 나라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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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만두는 대구에서 시작했다. 교동시장 먹자골목.

테이스티코리아를 운영하는 푸드디렉터 안젤라는 만두를 좋아한다 했다. 그런데 보아하니 만두만 좋아하는게 아니었다. 고디탕(다슬기국의 대구 방언, 디를 길게 발음해야 한다)이며 뭉티기(생고기), 생 등골까지 모두 다 즐겨먹을 줄 알았다. 아! 김밥과 비빔우동도 잘 먹는다. 이 모든 것을 먹은 후 만두를 먹으러 갔다. 그때는 오후 4시, 1만㎉를 살짝 넘겼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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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만두 찐교스.

대구 화교들은 만두를 잘한다. 가장 특이한 점은 찐만두를 찐교스라 부르는데 아마 교자(餃子)의 변형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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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만두 고기만두.

만둣집 중엔 시내에 있는 태산만두와 영생덕이 유명하다. 다만 영생덕은 고기만두, 태산만두에선 군만두를 선호하는 편이다. 태산만두에선 바삭한 군만두를 매콤한 무침과 곁들여 내온다. 간장만 슬쩍 찍는 대신 채소무침과 곁들여 아삭하고 바삭하게 즐긴다. 영화 ‘허삼관 매혈기’에서의 하정우처럼 뜨거운 고기만두를 덥썩 집어 입안에 욱여넣기 좋은 곳이 영생덕이다. 둘다 동성로 인근에 있다.


대구에는 다른 곳에 없는 만두가 있다. 대구명물 납작만두다. 만두와 ‘부침개’의 중간 형태다. 만두 소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조금 있다. 얇은 두 겹의 만두피 사이에 갈아낸 듯 약간의 채소와 당면이 남아 자신이 ‘만두의 혈통’임을 주장한다.


기름에 지져 먹는 군만두 스타일이지만 얇아서 오히려 부담없다. 특히 집집마다 다른 양념장을 뿌려 먹거나 쫄면에 싸먹기도 하는데 느끼하지도 않고 입에 딱 들어맞는다. 교동시장에 갔다. 빨간오뎅 등 거의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간식거리를 파는 골목이다. 이 안에 하루종일 납작만두를 ‘지지고 있는’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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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시장 납작만두.

사장님이 쭈그려앉아서 신봉선이 다녀갔다고 자랑한다. 상호가 ‘묵자집’이다. 그래 묵자. 또 묵자. 주문 즉시 흥건히 기름을 두르고 만두를 올린다. 금세 구워진 만두를 켜켜히 쌓아 특제 양념장을 끼얹어준다. 그걸로 끝이다. 거한 한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떡볶이를 먹은 후 김밥에 비빔우동까지 먹은 후였지만 안젤라는 중얼중얼 영상을 찍으며 만두를 날름 집어먹고 있다. 제법 두꺼운 책자처럼 쌓였던 만두가 ‘한여름 테이크아웃 팥빙수’처럼 얇아진다. 큰일이다. 이 바닥에서 내가 가장 잘먹는 편이었는데 도대체 경쟁이 안된다. 철옹성같던 내 ‘먹깨비’ 왕관이 그의 소화액에 녹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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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만두 묵자네.

밤술과 해장의 천국,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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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끼우동. 중화반점

저녁을 먹기 전 야끼우동을 사먹었다. 인원수대로 주문하지 못했다. 양해를 구하고 한 그릇만 주문했다. 구도심인 교동에 묵었다. 이 인근은 낡았지만 지금은 근사한 바와 카페들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섰다. 간식집을 찾아 많이 걷기도 했다. ‘릴렉스053’을 찾아내 수제 생맥주를 2잔 정도 들이켰더니 그제사 소화가 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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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티기. 왕거미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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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래기(대동맥). 왕거미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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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등골. 왕거미식당

놀랍게도 그 20분 후에 저녁을 먹었다. 생고기 뭉티기, 등골 등과 함께 저녁을 먹었지만 간식이 아니므로 잠깐 생략하기로 한다. 처음부터 막창을 먹어야 했다. 대구니까 그렇다. 대봉동 봉리단길을 갔다. 돼지막창도 1인분 8000원. 만원을 넘지 않는다. 과연 만원의 행복이다. 돼지막창은 철판에 굴리듯 굽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집은 석쇠라 좀 더 부지런해야 했다. 일일이 뒤집어야 한다. 귀찮아서 소갈빗살을 추가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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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곰장어 구이. 바다속 친구들.

멈출 수 없었다. 대명동 ‘바다 속 친구들’에 가서 그 친구들을 먹었다. 곰장어다. 부산이 유명하지만 대구는 여기다 맵고 붉은 맛을 더했다. 밥까지 볶아먹었다. 드디어 2만㎉를 달성한 순간이다. 숨이 가빠 힘들었지만 ‘먹는 귀신’ 안젤라는 아직 그렇지는 않은 표정이다. 입에 볶음밥 한 보따리를 물고있다. 내 뱃가죽의 탄력은 이미 인장한계를 벗어났다. 몸의 살이란 모두 연결돼 있으니 뱃살이 팽팽해지면서 눈꺼풀을 당긴다. 아빠가 사올 크레파스를 기다리던 아이처럼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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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탕(다슬기국) 일억조고디이탕

해장은 역시 고디탕이다. 다슬기는 이름이 많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 전국 어느 곳이나 나니 그렇다. 충청도에선 올갱이, 강원도 골뱅이, 올뱅이. 전라도선 대수리, 대사리로도 부른다. 경북(안동은 골부리)은 고디다. 고둥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끓이는 방식도 다르다. 된장에 청양초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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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부추전. 일억조고디이탕

봉덕동 남구청 앞 ‘일억조 고디이탕’이란 집이 있다. 고디이탕, 고디이정구지(부추)전 등 오직 ‘고디’만 가지고 음식을 내는 집이다. 2000원 비싼 ‘특’으로 주문했다. 비행기좌석이나 호텔 객실이 부담스럽지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간밤에 아무리 퍼마셔도 고디탕 한 뚝배기면 끝이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땀이 술이 되어 흐른다. 드럼세탁기에 지친 간을 들들 돌렸다 다시 끼워넣는 기분이다.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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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예술공간 수창청춘맨숀

대구는 꽈배기도 커피도 유명하다. ‘힙성로’라 불리는 북성로. 몇 집만 모이면 비행기와 탱크도 만들어낸다는 대구 공구골목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수창청춘맨숀이 있다. 원래 전매청 연초창과 사택이 있던 자리였는데 시에 기부체납한 것을 복합문화예술공간과 갤러리로 만들었다. 매번 다른 전시행사와 함께 매주 공연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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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예술공간 수창청춘맨숀

이곳 1층에서 커피를 마시면 한잔에 1000원이다. 물론 기계에서 손수 내려야 하고 설겆이까지 해야하지만 레트로 감성의 낡은 창고 갤러리를 둘러보며 쉬어가기에 딱 좋다. 힙성로 인근에는 꽈배기, 도넛 등 간단한 간식을 파는 카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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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식당 육개장.

기차 출발 시간이 가까웠지만 육개장을 아니 먹을 수 없다. 소고기에 큼지막한 대파, 무 송송 썰어넣고 한솥 끓여낸 붉은 육개장은 역시 대구가 유명하다. 그래서 서울에는 육개장을 대구탕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격식있게 밥과 국을 따로 낸다고 ‘따로국밥’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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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식당 육개장.

달성공원 앞 서문시장 건너 골목 안에는 그야말로 옛날부터 육개장을 팔아온 식당이 한 집 숨어있다. 70년 이상 영업한 노포, 이름조차 옛집식당인데 정말 친척집에 와서 밥을 먹는 기분이다. 자개 농이 놓여진 방에 앉아있으면 인원 수대로 가져다 준다. 작고 투박한 뚝배기를 보듬어보면 대번에 훈훈해진다. 국물맛도, 반찬도, 밥도, 방도, 장농도, 마당풍경도 모두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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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을 찾을 땐 멀리 찾아헤메지 말고 대구에 가면 된다.

대구의 ‘소확여행(소소하지만 확실한 여행의 행복)’은 식어가는 가을을 버틸 수 있는 삶의 온기를 전해준다.


대구=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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