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라는 사람들 많았지만…" 박항서가 밝힌 마지막 도전의 이유
박항서 감독이 7일 하노이 베트남축구협회에서 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 | 정다워기자 |
“제 한국나이가 63세입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베트남축구협회와의 재계약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 2년간 워낙 많은 성과를 올려 앞으로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칫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걱정한 지인들이 “그만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박 감독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축구 감독이라는 직업은 좋을 땐 좋지만 나쁠 땐 한 없이 어렵다. 베트남 축구의 영웅에 등극하며 정점을 찍은 박 감독의 경우 지금 위치에서 더 올라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는 장고 끝에 재계약을 결정했다.
7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만난 박 감독은 “재계약을 앞두고 저는 많은 생각, 고민을 했다. 한편에서는 성과를 거뒀을 때 영광스럽게 그만두는 게 낫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많았다. 저는 베트남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했다”라며 “사랑을 받았는데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생각했다. 2년간 저와 함께 고생한 코치들, 선수들에 대해서도 고민한 끝에 새로운 도전을 함께하기로 했다”라는 말로 재계약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베트남 축구 위해 끝까지 헌신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전하는 마음, 의리가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를 베트남에서 마감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박 감독은 “20~30대 선수, 코치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50대에는 성공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도 했다”라며 “제 한국나이가 63세다. 결론적으로 저도 축구 지도자로서 이번 계약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가 나이가 있기 때문에 정리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베트남에서의 도전이 감독 인생 마지막이 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어차피 지도자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베트남에서 마무리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계획이다.
박항서 감독이 7일 하노이 베트남축구협회에서 인터뷰 질문을 듣고 있다. 하노이 | 정다워기자 |
재계약 조건도 괜찮은 편이다. 연봉은 역대 베트남 감독 최고 수준이고, K리그 유명 지도자나 전에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한국 지도자들 못지 않게 좋은 대우를 받는다. 다만 무엇보다 23세 이하 대표팀과 A대표팀 운영, 코칭스태프 구성의 전권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 감독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협회에도 가장 강조했다”라며 “어차피 제가 두 팀을 이끌어야 한다면 소집 시기를 스스로 결정하고, 저와 함께 일할 스태프도 제 뜻대로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협회도 그 점을 수용해줬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동시에 독소조항이 없어 안심하고 팀을 이끌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성적이 부진하면 당연히 입지가 줄어들겠지만 무리한 요구나 부당한 조항은 빠져 있어 박 감독도 만족할 만한 계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부담, 책임감도 크다. 최소 현상유지를 하거나, 나아가 계속 성과를 올려야 박 감독을 향한 신뢰가 굳건해질 수 있다. 박 감독도 “한편으로는 재계약을 확정한 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2년 전 처음 왔을 때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하루 하루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기대치는 높아질 것이다. 저는 지난 2년보다 더 노력할 것이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월드컵 2차예선, 동남아세안게임(시게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등이 계속 이어져 향후 3개월간 해야 할 일도 많다. 박 감독은 “결과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두 대회를 모두 병행해야 하니 힘들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다. 재계약을 했으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제 임무를 수행하겠다”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하노이=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