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세금고지서 아니에요?’ 10년째 냈는데 알고 보니…
날씨가 추워지는 연말이 다가오면 집으로 날아오는 지로용지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금고지서로 착각하지만, 세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적십자 회비 납부 요청서입니다. 적십자 회비는 내도 그만 안내도 그만입니다. 회비를 낼지 말지는 개인 자유인 것이죠. 하지만 수년간 많은 사람이 의무로 착각하고 납부 해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대한적십자사의 회비 모금
대한적십자사는 전쟁 희생자를 보호하거나 구호하기 위해 생겨난 단체로 현재는 인도주의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봉사 단체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헌혈 사업 담당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 사업을 비롯해 재난 현장에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등의 재난구호 사업과 취약계층을 돕는 복지 및 의료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활동하기 위한 사업비는 보통 후원이나 회비 모금 등을 통해서 마련하는데요. 1년에만 500억 원에 달하는 ‘회비 모금’과 관련해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비 납부 요청을 지로로 하기 때문입니다. 지로란 보통 세금이나 공과금 고지서에 활용되는 방법으로 보통 의무 납부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용되는데요. 성금을 낼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지로 형태로 발송되는 통지서 때문에 의무 납부로 착각하는 시민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로 형태의
‘회비 납부 요청서’
대한적십자사는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을 ‘집중 모금 기간’으로 정하고 12월부터 회비 납부 요청서를 발송합니다. 발송 대상은 소득에 상관없이 25세 이상 75세 미만 모든 가구인데요. 개인은 1만 원, 개인 사업자는 3만 원, 법인 5만 원으로 책정하고 가정과 기업에 통지서를 보내는 것이죠. 이 기간 동안 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국민에 대해선 2월부터 2차 통지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회비 납부 요청서가 지로 형태로 돼 있어 많은 국민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년간 대한적십자사에 회비를 납부했다는 60대 김 씨는 “지로 통지서 형태로 오니까 당연히 의무 납부인 줄 알았다”라며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아들을 통해서 알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불우이웃 모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눈속임을 하는 것이 황당하다”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법률로 보장된 납부 요청서
그렇다면 대한적십자사가 회비 납부 통지서를 보내는 것은 정당할까요? 그보다 앞서 시민들의 신상정보는 어떻게 알고 보내는 것일까요? 사실 대한적십자사가 회비 납부 요청서를 보내기 전 국민의 세대 정보와 주소 등 개인 정보를 정부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법률로 보장하고 있는데요. ‘적십자 조직법’에 의해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개인 정보 자료를 정부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2017년에는 대한적십자사에 개인 정보 제공하는 것에 대한 위헌청구가 있기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위헌청구에 대해 개인 정보 제공은 법률로써 보장받고 있으며 “이러한 규정이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 정보 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헌법소원을 각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개인 정보로 회비를 모금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로 형태 납부 요청서 폐지
특히 전 세계 적십자사 지사를 두고 있는 190여 개 나라 중 지로 형태로 회비를 모금하는 곳은 대한적십자사밖에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판 여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적십자는 지금까지 지로 형태의 회비 모금 통지서를 사용한 이유로 지로의 편리함을 강조했는데요. 지로는 모든 은행 지점 및 ATM 기기에서 납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나 모금에 참여할 수 있으며, 납부자 신원 파악이 쉽고 이외에 적십자의 활동을 국민에게 홍보하기도 쉽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이 적십자의 지로를 통한 회비 모금에 불만이 있으며 수년간 논란이 발생한 만큼 대한적십자사 역시 지로 형태의 납부 요청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2023년부터는 지로 형태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회비 모금을 하겠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될지는 모르지만, 모금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정기후원회원을 모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