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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와 단둘뿐이었던 SM 여자 연습생은 이렇게 됐습니다

전 세계에 한류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20년 전만 해도 한국 연예계에서 세계 진출은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는데요. 한국을 세계에 뻗어나가게 한 주역으로는 보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아는 한류 1세대로 일본에 진출해 ‘아시아의 별’이라고까지 불린 가수죠. 그런 보아에게도 연습생 시절이 있었는데요. 당시 보아에게 질투를 느껴 소속사까지 나왔다는 이 연습생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수줍음 많았던 여고생,

연예계에 발들여


보아와 함께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었던 인물은 바로 장나라입니다. 그는 성우인 아버지와 TBC 탤런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요. 장나라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장나라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요. 장나라는 어린시절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었습니다. 해서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노래 불러달라 부탁해도 쉽게 불러주지 않았죠. 식구들조차 생일이나 용돈을 많이 받는 날 아니면 노래를 듣기 어려웠다고 전했습니다.


장나라는 배우에 대한 열망이 컸던 아버지를 보며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다만 중학생까지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연기보단 학업을 중시했는데요. 장나라 아버지는 장나라가 중학교 3학년까지 ‘열받는 일이 생기면 유아용 공갈젖꼭지를 쪽쪽 빨곤 했었다’라며 남다른 장나라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나라는 고등학생 진학 후 조금씩 연예계 활동을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아버지 도움이 컸는데요. 장나라는 방송가에 인맥이 두터웠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리고 햄버거와 학습지 광고에 출연하게 됐죠. 단 두 개의 광고로 장나라는 광고업계에서 주목받게 되는데요. 장나라는 SM엔터테인먼트의 권유로 SM 연습생이 됩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작고 열악한 중소 기획사 중 하나에 불과했죠. 이곳에서 장나라는 자신 외의 유일한 여자 연습생, 5살 어린 보아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댄스가수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했는데요. 장나라는 “보아 옆에서 춤 연습을 하려니 내가 하는 건 율동으로밖에 안 보였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춤, 노래 모두 잘하는 데다 노력도 남다른 보아를 보고 질투를 많이 했다고 고백했죠.


데뷔 반응은 “글쎄?”

대박 난 이유는


장나라는 이후 SM을 나오게 됩니다. 댄스가수를 원했던 SM과 장나라의 뜻이 맞지 않았던 것이죠. 장나라는 소속사를 옮겨야 하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진학해 배우를 준비하는데요. 가수 출신 사업가 이상우를 만나 2001년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데뷔곡 ‘눈물을 얼굴을 묻는다’라는 곡은 성숙, 섹시 콘셉트였는데요. 귀여운 장나라 외모에 맞지 않았던 탓에 흥행해 실패하고 말았죠. 베스트 50위권에도 들지 못해 방송 무대조차 서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장나라는 무대는 못 서도 방송은 출연하고 싶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덕분에 순위를 소개하는 MC 자리를 맡게 됐는데요. 마침 저조한 시청률과 배우들이 이탈을 고심하던 ‘뉴 논스톱’ PD가 장나라를 보고 캐스팅하게 됩니다. 장나라는 양동근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요. 장나라는 “양동근 너 죽을래?” 등 본인의 귀여운 외모와 어리바리한 콘셉트를 살려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냅니다. 덕분에 뉴 논스톱은 시청률 40%을 돌파하며 성황리에 끝을 맺었습니다.


장나라의 장점을 알아차린 소속사에서는 후속곡 콘셉트를 밝고 귀엽게 잡습니다. 장나라는 청순하고 귀여운 콘셉트의 ‘고백’과 ‘4월 이야기’로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죠.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 장나라는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평균 32% 시청률을 기록하는데요. 덕분에 장나라는 데뷔 1년 만에 한국 드라마계에서 최고 출연료 대우(1천만 원)를 받게 됩니다.


가요부터 드라마까지 연달아 성공한 장나라는 CF도 대박 냅니다. 한국에서 장나라의 인기가 최절정이었던 2002년에는 ‘장나라의 하루’라는 말까지 있었는데요. 이는 TV를 켜면 하루 종일 장나라 CF만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장나라는 소주, 자동차, 화장품, 통신사, 치킨, 햄버거, 음료, 교복, 과자, 라면, 샴푸, 옷, 대선 광고 등 온갖 광고에 출연했죠. 장나라는 당시 하루 5억 원 정도 벌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편 이 당시 장나라는 주변의 시기 질투에 누구에게나 90도 인사하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죠.


전성기에 떠난 중국

2년만에 최고 스타 등극


전성기를 달리던 장나라는 2003년 돌연 중국으로 떠납니다. 장나라의 중국 진출은 소속사가 아닌 장나라 아버지가 추진한 일이었는데요. 장나라는 “중국은 나도 속아서 갔다”라며 “처음에는 중국 드라마를 한 편 하자고 했다. 2개월이면 된다고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장나라 아버지는 이후에도 “OST 하자는 데 두 곡만 더 부를까? 두 곡 더 부르면 싱글… 6곡이면 앨범 하나인데”라며 점진적으로 장나라와 중국 활동 범위를 넓혀갑니다.


다만 당시 장나라의 중국 진출은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중국에서의 모든 경비는 장나라가 그간 번 돈으로 충당해야 했죠. 장나라의 아버지는 장나라를 끌고 중국 소도시를 직접 돌며 프로모션을 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나갑니다. 장나라는 그 덕에 드라마 ‘따이오만 공주’에 주연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요. 이 드라마가 중국 전역 시청률 8.5%로 1위(2위 시청률 4%) 하며 중국에서도 한국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장나라는 중국에서도 가수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는 2003년 중국에서 ‘올해의 한국 가수상’을 수상하는데요. 불과 2년 만인 2005년 ‘대륙 최고 인기 가수상’, ‘아시아 최고 여자 가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한국에서처럼 가수와 배우 양쪽에서 1위를 거머쥐었죠. 이후 장나라에게는 중국 최고의 스타에게 붙는 ‘천후’호칭이 붙게 됩니다. 중국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장나라의 드라마 1회 출연료는 한화 6천만 원 이상, CF 모델료는 5억 2천만 원으로 치솟게 됩니다.


장나라는 2010년 한한령 이전까지 중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요. 한편 그는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 향이 남았다”라는 가족 신조에 따라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9년, 중국 소속사가 밝힌 기부액만 130억 원에 달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한한령 이후 한국에 복귀한 장나라는 2011년 첫 복귀작부터 시청률 18%를 기록하며 여전한 저력을 선보였죠. 이후 그녀는 ‘고백부부’, ‘VIP’ 등의 드라마 작품에서 여전한 동안 외모와 함께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SM 연습생 출신,

라이벌은 아시아의 별?


한편 장나라하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바로 ‘장나라 vs 보아’입니다. 한국 최고의 여자 스타가 누구냐는 것인데요. 두 사람의 활동 영역부터 중국과 일본으로 다른 만큼 매번 토론이 끊이질 않고 있죠. 두 사람 모두 진출 국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어느 한쪽이 덜하다 말하긴 어려운데요. 여전히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두 스타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나라의 열애·결혼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장나라는 과거 ‘착하고 자기 일에 비전 있고 성실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잠시 김남길, 이상윤과 열애설이 돌기도 했는데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죠. 장나라는 최근 자신이 비혼주의자라는 기사는 오보라며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전했는데요. 장나라 아버지 역시 인스타그램에 장나라 사진과 함께 ‘#손주기다리는애비’태그를 달며 딸의 결혼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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