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연락 없던 母, 상속 50% 요구 잘못된 법은 바뀌는 게 정의 아니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비극. 밝혀지지 않은 진실. 도둑처럼 찾아든 현실에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투사’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더디기만 하다. 주변의 지지와 응원도 시간이 갈수록 시들어지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되며 벼랑 끝에 몰리기도 일쑤다. 일부 사건은 정치 쟁점화되면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는 가족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은 오늘도 법원 앞에 서서 외친다. “억울하다”고,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계란으로 바위치기격인 가족들의 외로운 싸움 끝에 새로운 법이 시행되거나 제도가 바뀌기도 한다. 서울신문은 타는 목마름으로 진상규명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와 사연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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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4일 연예인 구하라가 세상을 떠났다. 전날 인스타그램에 남긴 “잘자” 한 마디, 자택에서 발견된 메모가 28년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의 마지막 인사였다.
2008년 여성 아이돌로 데뷔한 구씨는 이후 10년이 넘는 연예계 생활에 굴곡이 많았다.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는 구씨에게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을 한 혐의로 지난해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상해, 협박, 강요, 재물손괴와 달리 카메라 이용 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왔다. 최씨 사건이 알려지면서 불법촬영 엄벌 여론이 거셌지만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일부는 최근 ‘n번방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본회의를 통과했다.
구씨의 이름을 딴 민법 개정안 ‘구하라법’도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상속 결격 사유에 ‘직계존속 부양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경우’를 포함시킨 것이다. 다만 지난달 29일 20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했다.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다만 지난달 기준 국회 입법 청원만 10만명을 넘어선 만큼 21대 국회에서의 통과를 기대할 만한 상황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생의 삶을 늘 염려했던 오빠 구호인(31)씨는 떠난 동생을 위해 대중 앞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구하라법 입법 활동과 관련해 직장과 자택이 있는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는 21일 시작되는 최종범 사건 항소심에서 유족 자격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는데.
“동생이 생전에 하던 것이어서 대신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1심에서 집유 판결이 나왔는데.
“처벌이 너무 약했다. 한 여성에게 어떻게 보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건데, 그런 사람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사회에 나와서 사는 것 자체가 피해자한테는 억울해서 못 살 일이다. 항소심에서는 꼭 실형이 선고되길 바라고 있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란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유독 성범죄 사건에서는 낮은 형량 문제가 계속 지적된다.
“술 먹었다고 처벌 깎고, 초범이라고 처벌 깎고, 반성하고 있다고 처벌 깎고…. 피해자는 고통받고 있는데 (형량을) 올리지는 않고 맨날 깎기만 하는 것 같다.”
-1심 당시에 하라씨 반응은 어땠나.
“동생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에게 이야기를 많이 안 했다. 내가 동생이었어도 말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동생도 (최씨가) 집유로 나온 것에 대해 굉장히 분노했고, 최씨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죽기 전에 형사재판과 별도로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항소심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법리적인 문제는 구하라법 입법을 함께 준비해 온 변호사님이 최종범 재판에서도 하라 변호사로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 이미 피해자가 고인이 됐기 때문에 더이상 증거 수집도 안 되고 피해자가 직접 재판에서 말을 할 수도 없지 않나.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우리는 그저 형을 더 세게 때려 달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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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 사건 말고도 친모와 유산 소송을 하고 있는데.
“친모는 하라 유산의 50%를 상속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가 상속재산분할심판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하고 나서 친모 측 답변서를 받았고 재판은 7월로 잡혔다.”
-이 과정에서 구하라씨 남매의 가정사가 세간에 알려졌다.
“내가 11살, 하라가 9살 때 친모가 집을 나갔다. 그후로 우리 남매는 고모 집에 맡겨져 눈치 보며 컸다.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우울증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자꾸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상처를 준 친모가 이제 와서 유산을 달라고 하는 거다.”
-친모와의 교류는 전혀 없었나.
“2017년에 하라가 친모를 찾았고, 나는 그 다음해 결혼식을 하기 전에 한 번 만났다.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동생이 생전에 자살 시도를 해서 병원에 실려 간 일이 몇 번 더 있었는데, 한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로 부모님이 반드시 와야 한다고 해서 친모를 불렀었다. 그다음에 본 게 하라 장례식장에서다.”
-하라씨는 친모를 찾고 나서 어땠나.
“친모 측에서는 ‘못다 한 정을 나눴다’, ‘애틋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하라는 주변에 ‘친모가 불편하다’면서 ‘연락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구하라법 입법 청원은 왜 하게 된 것인지.
“친모와 유산 소송을 하면서 법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친모는 친권과 양육권을 다 포기하고 떠나 20년 가까이 우리를 찾지 않았는데도 현행법으로는 상속권이 있다.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시대에 뒤떨어지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구하라법이 통과돼도 친모의 소송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이득 볼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이미 아픔을 겪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청원을 하면서 가정사로 상속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나는 유명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됐으니 이번 기회에 더이상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용기를 내게 됐다.”
-20대 국회에서 구하라법 통과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인터뷰 이튿날 20대 마지막 임시국회 열림).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런데 다행히 얼마 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구하라법에 관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늘 국회에 가서 만나고 왔는데 서 의원님 말로도 20대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이번에 안 되면 21대 국회에서 직접 나서서 발의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 말을 믿고 우선 기다려 보려고 한다. 기다리는 것밖에는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법에 ‘구하라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나.
“일전에 하라로 인해서 ‘사회의 안 좋은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데이트 폭력 문제도 그렇고, 유산 상속 문제도 그렇고…. 이 법은 하라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하라가 사회에 주는 선물인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하라의 이름을 따게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있는데 국회 입법 청원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사실 국민청원을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국민청원을 평소에 많이 보지만, 20만을 찍고 100만을 찍어도 법적인 효력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 입법 청원은 인원수 충족이 돼서 발의가 되면 정식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니까 더 낫겠다 싶었다.”
-하라씨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지.
“동생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유명인이지 않나. 가급적 좋은 쪽으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 이제는 가정사도 다 알려졌으니까 그렇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살면서 꿈을 이룬 아이로 떠올려 줬으면 한다.”
-일반인으로 살아오다가 최근 ‘구하라 오빠’로서 대중 앞에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갑자기 언론에도 나오고 내 가정사도 공개해야 했다. 악플들도 달렸다. 사람이 원래 천명이 응원을 보내도 악플 한두 개가 눈에 들어오지 않나. 그렇지만 이제는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나서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재판도, 입법도 언제 어떻게 끝이 날지 모른다. 그래도 가족으로서 이 싸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무엇일까.
“처음에는 내가 당해 보니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을 풀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고 잘못된 법은 바뀌는 게 정의이지 않나. 분노에서 시작했는데 정의로 바뀐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법이 개정되는 것을 보고 ‘떼법’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시 고민해 보았지만 그래도 이건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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