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생쯤이야… 바다사자와 친구가 됐는걸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섬은 희귀한 동식물과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가드너베이 해변에 누워 여유를 만끽하는 듯한 새끼 바다사자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갈라파고스에서는 이런 ‘놀라움’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물가부터 놀라웠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한 병에 5달러짜리 맥주와 1박에 40달러짜리 방, 1인당 최소 150달러부터 시작하는 투어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밥값은 기본 15달러부터. 아끼고 아껴 써도 하루에 200달러 이상은 들어가는 셈이다.
한때 멸종 위기에 처했던 갈라파고스의 상징인 자이언트거북. ‘갈라파고’라는 이름도 이 거북에서 따왔다. |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갈라파고스를 여행할 때 크루즈를 선택하곤 한다. 매일매일 바다로 나가 투어를 하고 섬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크루즈를 타고 일주일 혹은 열흘 동안 갈라파고스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좋다. 희귀 해양동물도 만날 수 있는데다 남들이 안 가본 데도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산타크루즈섬이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본부와 찰스 다윈의 연구센터, 자이언트거북 번식센터가 이곳에 있다. 자이언트거북은 사람들이 잡아 기름을 짜고 쥐와 개가 거북이 알을 깨트려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다. 비글호의 선원들도 자이언트거북 45마리를 항해용 식량으로 잡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노력으로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갈라파고’란 이름도 이 거북에서 나왔다. 옛 스페인어로 ‘말안장’이란 뜻인데, 1535년 에스파냐의 베를랑가가 이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말안장 모양의 등딱지를 한 큰 거북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푸른발 부비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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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컨 |
앨버트로스 |
바다이구아나 |
푸른발 부비새도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새다. 이름 그대로 발만 푸른색 장화를 신은 듯 푸른빛을 띤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짝짓기를 하거나 알을 품는다. 하지만 반드시, 반드시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보기만 해야 한다. 먹을 것도 주어선 안된다. 외부 음식물을 잘못 먹고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는 동물이 주인인 섬이다. 동물은 사람을 만질 수 있지만 사람은 절대 동물을 만질 수 없다.
검은 바위 위에 떼를 지어 일광욕을 하고 있는 바다 이구아나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괴수 영화에서 보던 괴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성질은 순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약 800만년 전 밀려온 도마뱀이 갈라파고스에 정착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짐작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해초를 먹으며 살아가는데, 바위에 붙은 초록색 해초를 뜯어먹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 크루즈 여행은 아침과 저녁에는 섬에 내려 동식물을 관찰하거나 섬을 트레킹하고, 낮에는 스노클링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며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스노클링이 필리핀이나 하와이 등에서 즐기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육지에서 지겹게 보던 바다사자들이 옆구리 가까이 다가와 바싹 붙는다. 가끔 툭 건드릴 때도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힘겹게 쫓아가다 보면 기다려 주기도 한다.
이렇게 바다사자와 한참 동안 놀다 지쳐 해변으로 올라와 드러누우면 그 녀석도 따라와 옆에 벌러덩 눕는다. 그렇게 팔베개를 하고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골치 아픈 일이든지 우주의 미스터리 같은 건 그냥 내버려 두는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튼 갈라파고스는 바다사자와 함께 해변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일주일 동안의 여행을 마친 후 크루즈는 산크리스토발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다. 바다 위 우뚝 솟은 바위인 키커록 뒤로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펠리컨은 배와 나란히 날았다. 공기 속을 헤쳐 가는 펠리컨의 부드럽고 가벼운 날갯짓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행은 분명 좋은 일이고,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는 영원히 ‘갈라파고’인 채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관광객들이 갈라파고스 세로부르호섬 해변에서 펠리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
■ 여행수첩
에콰도르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미국을 거쳐 가는 것이 빠르다. 에콰도르는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관광 목적으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에콰도르는 2002년부터 미국 화폐인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4시간 늦다. 여행 적기는 6월부터 9월까지. 시원하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여행하기가 가장 좋다. 에콰도르 여행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주한에콰도르상무관실(02-738-0079, seoul@proecuador.gob.ec)을 통해 알아보자. 갈라파고스에서의 크루즈 여행은 일정에 따라 행선지와 요금이 다양하다. 메트로폴리탄 투어링(www.metropolitan-touring.com)에서 다양한 크루즈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일정과 예산에 맞춰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세로부르호와 푸에르토치노섬은 화산 협곡 사이로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며 갈라파고스의 희귀 동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 에스파뇰라섬의 푼타수아레스는 갈라파고스 앨버트로스와 바다 이구아나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앨버트로스는 몸길이가 90㎝가 넘고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2m에 달한다. 푼타수아레스 반대편 가드너베이는 펠리컨과 바다사자의 섬이다. 해변에 떼를 지어 누워 잠자고 있는 바다사자들이 장관이다.
글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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