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로 둘러싸인 미국의 주택… 영국 귀족의 城과 영지 본떠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⑥ 미국인들이 잔디밭에 집착하는 이유
17세기 미국으로 넘어 온 청교도들… 문화의 원류인 영국 귀족문화 동경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앞마당은 영지, 집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인 셈이다
동부 20%가 잔디밭… 미국의 전체 잔디밭이 옥수수 재배면적의 3배
스프링클러도 잔디 급수용으로 개발됐다니, 미국인들의 잔디사랑이란…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 직접 설계한 그의 집 몬티첼로는 넓은 잔디밭을 가지고 있다. 제퍼슨은 영국식 잔디밭을 미국에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익숙한 미국인들의 집은 대개 집 앞과 뒤에 넓은 잔디밭이 있다. 잔디밭의 넓이는 물론 집의 규모에 따라 (좀 더 엄밀하게는 동네에 따라) 많이 다르긴 하지만, 도시가 아니라면 집 주변이 잔디로 덮인 경우가 흔하다. 영어로 ‘론(lawn)’이라 부르는 잔디밭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공터, 혹은 공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미국의 잔디밭 사랑을 따라갈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인들은 왜, 언제부터 잔디밭을 집의 일부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먼저 미국 집들의 잔디밭이 어떤 존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 집에 딸린 잔디밭이라는 공간은 그 집 주인의 소유다. 하지만 그 잔디밭의 정체는, 아파트 거주가 보편적이고 단독주택의 경우 집 주위에 담을 쌓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미국 집의 잔디밭은 사유지이지만 공유지 성격을 가진 특이한 장소다.
가령,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남의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집 잔디밭에 개가 대소변을 보게 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물론 집주인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행동을 금한다는 푯말을 세운 집이 아닌 한 대부분 묵인되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집 앞의 잔디밭은 집주인의 소유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개방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의 집 앞 잔디밭에 들어가서 노는 건 예의상 어긋나지만, 그렇다고 경찰을 부를 만한 ‘주거침입’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물론 같은 미국이라도 주마다, 동네마다 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따르는 룰은 ‘우편배달원이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는 공공장소’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집 안에서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을 막는 법은 없지만, 자기 집 앞 잔디밭에서 그렇게 한다면 경찰이 제지할 수 있다. 사유지라도 공공장소라는 것이다. 같은 집의 잔디밭이라도 뒤뜰은 다르다. 집 뒤의 잔디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부분 나무나 철제로 된 울타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공공장소가 아니라 사적인 공간이 된다.
미국 중산층이 사는 교외 지역의 주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넓은 잔디밭을 가지고 있다. |
하지만 뒤뜰로 이어지는 울타리 역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인들의 집을 둘러싼 잔디밭은 일종의 (귀족의) ‘영지’ 같은 존재이고, 집은 ‘성’인 셈이다.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An Englishman’s home is his castle)”라는 유명한 표현은 영미권의 주택이 궁극적으로 봉건영주의 성과 영지의 개념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즉,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미국인들의 주택은 영국 귀족의 생활방식에서 왔다.
그렇다고 17세기에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유럽식의 삶을 가져온 건 아니다. 도착하자마자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간 그들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영국 귀족의 주택과 잔디밭을 미국에 소개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독립을 주도한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다.
이들은 넓은 농장과 노예를 거느린 부자였고, 영국 귀족들의 삶을 흉내 낼 만한 재력이 있었으며, 유럽 귀족들이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았다. 영국에서 정치적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그들에게 영국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앞선 원류(源流)였기 때문이다.
그럼 영국의 귀족들은 왜 잔디밭을 갖게 되었을까? 순전히 ‘지위 상징(status symbol)’이었다. 대부분의 잔디는 가만히 놔두면 길게 자라는 ‘풀’이다. 그렇게 자라는 풀은 소나 양이 먹는 사료가 된다. 하지만 귀족들은 가축의 사료가 아닌, 그저 보기에 좋은 풀밭을 원했다. 그런데 이런 잔디밭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짧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동이 들어간다. 여름철 비만 오면 무섭게 자라는 풀을 낫으로 일일이 잘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에서는 그 노동을 영지에 사는 농부나 하인들이 했다면, 귀족이 없는 미국에서는 누가 했을까? 바로 노예들이었다.
워싱턴과 제퍼슨이 미국에 소개한 잔디밭은 사실상 노예를 거느린 백인 부자들 사이에 퍼진 유행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19세기 중반을 넘어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는 누가 풀을 깎았을까? 그즈음 잔디 깎는 기계가 등장했다. 1830년 영국의 방직공장 엔지니어가 고안한 기계식 잔디깎이는 요즘 사용되는 휘발유 엔진 잔디깎이에 비하면 힘이 많이 들어갔지만, 노예 없이 집주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값싼 인부가 사용할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깎는 노동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기 좋은 잔디일수록 물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내리는 비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호스를 연결해 잔디에 물을 주는 정원용 스프링클러(1871년에 처음 발명되었다)를 설치하는데, 대부분 그냥 상수도를 통해 물을 퍼붓는다.
(많은 경우) 수돗물을 사용해서 집 주위의 넓은 잔디밭에 물을 봄, 여름, 때로는 초가을까지 준다면 얼마나 많은 물이 소모될지 한번 상상해보라. 게다가 동부의 뉴저지, 매사추세츠 같은 주에서는 주 전체 면적의 20%가 이런 잔디밭이고, 미국 전체에 퍼져 있는 잔디밭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미국의 주산물인) 옥수수 재배면적의 무려 3배가 넘는다! 그 결과 미국에서 가장 많은 물을 소비하는 ‘작물’은 사람이 먹지도 못하고, 사료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잔디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탄생했다.
미국은 세계 곳곳이 물 부족 현상을 겪는 21세기에 잔디에 물을 퍼붓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잔디 깎는 기계는 모터사이클과 같은 종류의 엔진을 사용하는데, 대부분 오래된 것이라 매캐한 매연이 나온다. 이 작은 기계를 30분 동안 사용할 때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은 대형 SUV가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까지 이동하면서 내뿜는 오염물의 양과 맞먹는데, 자동차와 달리 별다른 규제가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는 “잔디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근래 들어 가뭄이 길고 잦아지는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에서는 한여름에 수돗물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런 때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한시적으로 잔디밭에 물 주기를 금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조치를 따르지만, 어디나 그렇듯 밤에 몰래 스프링클러를 틀어 물을 주다가 적발되어 벌금을 무는 일이 생긴다.
벌금을 물면서까지 잔디에 물을 주려는 이유는 그만큼 잔디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죽어서 보기 흉한 잔디는 집값을 떨어뜨리고, 다시 살리려면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물 부족 지역에서는 물을 많이 소비하는 잔디 대신 물을 적게 소비하고도 튼튼하게 버티는 자생종 식물과 돌, 자갈 등으로 정원을 가꾸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잔디밭을 없애고 정원을 바꾸는 비용을 보조해주는 지자체도 있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잔디는 원산지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인 외래종들인데, 그런 식물을 건조한 서부지역에 심어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21세기를 사는 많은 미국인이 여전히 18세기 영국 귀족문화의 동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