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마을 닮은 빨간풍차·모네의 수련 서둘러 가을오다
‘철새 천국’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낱알들녘 누렇게 익어가고/모네의 수련을 보는 듯 매혹적인 연못과 수크령은 가을의 향연을 펼치네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풍차 |
태풍이 지나가고 날이 아주 맑아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린다. 푸른 하늘과 둥실 떠가는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선 지붕이 유난히 빨간 풍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언택트 라이프에 최적화된 곳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자 댓글이 잇달아 달린다. “우와 유럽 어딘가 했네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요즘이라 예쁜 사진 한 장으로도 큰 위안을 받나 보다. 네덜란드의 시골 풍경 같은 이곳은 우리나라 철새들의 천국,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이다.
에코파크 입구 |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전경 |
낱알들녁 갈대 |
철새 놀이터 낱알들녘 누렇게 익어가고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덕분에 한가롭게 산책할 수 있다. 김포공항에서 승용차와 지하철 김포골드라인을 이용하면 20분 만에 운양역에 닿는다. 하늘빛초등학교로 방향을 잡아 5분 정도 걸으면 ‘에코파크’ 안내판과 조망마루가 등장하고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여행이 시작된다. 조망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은 광활한 낱알들녘과 사색의 길, 탐방수로가 이어지고 오른쪽은 습지생태원과 철새이야기길, 에코센터다.
낱알들녁과 백로 |
탐방수로 |
탐방수로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를 건너자 낱알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언제 이렇게 벼가 익었을까. 초록에서 누렇게 색이 바뀌기 시작한 벼는 고개를 숙여간다. 코로나19로 ‘집콕’만 하다 보니 계절이 바뀌는지도 몰랐나 보다. 덕분에 다소 일찍 찾아온 초가을 정취를 만끽하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부시게 하얀 날개를 활짝 펼친 백로 한 쌍이 논에서 불쑥 솟아오르더니 머리 위를 서너 차례 빙빙 돌며 인사한다. 자세히 보니 낱알들녘 곳곳에 박힌 하얀 점들이 모두 백로다. 벼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면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철새의 천국임을 실감케 한다.
수크렁 연못 |
철새 |
가을 들판 색과 잘 어울리는 황금사철나무가 즐비한 왼쪽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모퉁이를 도니 이번에는 백로인지 흑로인지 몸통은 희고 날개는 회색빛을 지닌 커다란 철새 한 마리가 산책로에 당당하게 서 있어 깜짝 놀랐다. 여행자들의 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니 너가 이곳의 주인이구나. 사실 낱알들녘은 철새서식지 복원을 위해 조성됐다. 한강하구 간척농경지로 10월 중순 가을걷이가 끝나면 쌀은 모두 철새 먹이로 쓰인다. 이곳은 계절에 따라 큰기러기, 쇠기러기, 백로, 왜가리,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등 다양한 철새와 고라니,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낱알들녁 백로 |
특히 겨울철새인 멸종위기 2급 큰기러기가 러시아에서 4000㎞를 날아 겨울을 보내는 곳이다. 한강신도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이들의 터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시민단체 등이 힘을 모았고 반달형 농경지 56만7000㎡를 철새를 위한 공간으로 남기는 데 성공했다. 스토리벽에는 생태공원 조성과정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2010년부터 4년 동안의 복원과정을 거쳐 완성된 생태공원은 ‘김포의 논, 언덕과 물’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한강하구를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등이 생태공원을 만든 주인공들로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시간의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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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기구 체험 |
유럽마을 닮은 빨간 풍차 마음을 빼앗고
황금들판을 따라 걷다 보면 돌로 만든 모래시계가 눈길을 끈다. 볍씨가 논에 심어져 쌀이 돼 식탁에 오르기까지 세세한 과정이 4개의 모래시계와 함께 담겼다. 근처에서는 엄마와 아이들이 전통농업기구에 올라타 신기한 듯 물질을 한다. 물을 퍼 올리던 용두레, 논에 물을 대던 수차(무자위)를 체험할 수 있다.
수크렁 핀 산책로 |
풍차 연못 |
연못 |
날씨가 아주 맑아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연못에 그대로 담기며 수채화를 만든다. 그리고 수줍게 핀 수련과 수초들. 마치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난 평생 잊지 못할 대작,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보는 듯 매혹적이다. 수련 주위는 강아지풀을 닮았지만 키가 훨씬 더 큰 수크령과 갈대가 어우러지며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거린다. 수크령의 꽃말은 ‘가을의 향연’. 서둘러 찾아온 가을 풍경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빨간풍차 연못 |
빨간풍차 연못 |
아이들은 생태놀이터에서 모래장난에 푹 빠졌고 옆에서 강아지가 애써 만든 모래 조각을 망가뜨리며 훼방을 놓는다. 새해에 풍년을 바라는 뜻으로 세우는 솟대는 작은 새들을 머리에 이고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드디어 그 너머 연못 위에 멀리서 보이던 빨간 지붕 풍차가 매력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땅에 닿을 듯 축 늘어진 수양버들이 들러리를 서고 예쁜 다리가 연못을 가로지르는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다.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보고 사색의 길로 나선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사색의 길은 고즈넉하다. 낱알들녘을 지나 왼쪽 언덕에 오르면 양옆으로 평화누리길 자전거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한강 풍경이 펼쳐진다.
사색의 길 |
참나무류 수림대 |
습지생태원으로 이어지는 입구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류 수림대.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를 모두 참나무라 부른다. 한강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운양동, 장기동, 구래동에서 자라던 참나무를 모아 2012년 숲을 만들었단다.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나무그늘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코로나 블루’를 씻는다. 철새에게도, 인간에게도 참 아름다운 곳이다. 한강을 조망하는 이런 노른자위 땅은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리버사이드 아파트 숲’이 됐을 테니 사람도 꽃처럼 아름답다.
김포=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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