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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분간 73명이 '무단횡단'을 했다

누군가 한 발을 내딛자 두 명이 뒤를 따르더니 이내 서너 명이 한꺼번에 걷기 시작했다. 한 시민은 다가오는 차를 향해 잠시 멈추라는 듯 손을 내밀고서 성큼성큼 움직였다.


17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학교로 이어진 왕복 2차선 연세로에서 포착된 무단횡단 풍경이다. 보행자 신호등의 빨간불과 차량 신호등의 파란불을 장식품으로 여긴 일부 시민들 앞에서 제대로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어색해진 순간이다.


세계일보가 이날 현대유플렉스 앞 연세로에서 10분 정도 신호등을 지켜본 결과, 놀랍게도 시민 73명이 무단횡단했다.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기까지 걸리는 보행자 신호등 대기시간(약 30초)과 길 건너는 데 걸리는 시간(약 15초)을 합쳐 같은 주기가 10번 반복되기를 기다렸으니, 정확히 말하면 10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여자친구의 팔을 잡고 건너는 남성, 여행용가방을 끌고 무단횡단하는 학생,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차림의 시민들까지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약 10분간 73명이 '무단횡단'을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차량 신호등이 파란불(빨간 네모)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건넜다.

도로를 오가는 차량이 적은 편이지만, 다른 사람이 건너니 나도 무단횡단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도 이유로 보인다.


횡단보도는 유동인구를 고려한 듯 넓게 그려졌으며, 일반 성인 열다섯 걸음 정도면 길을 건널 수 있으니 보행자에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끝까지 신호를 지킨 20대 남성은 왜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듣더니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건넌다고 해서 나까지 건널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조금만 기다리면 어차피 신호등은 바뀐다”며 “그때 떳떳하게 건너면 된다”고 덧붙였다.


몇몇 시민은 무단횡단을 하면서 다가오는 버스와 차를 향해 천천히 오라는 듯 팔을 뻗었으며, 일부 오토바이가 횡단보도를 타고 건너면서 달려오는 차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등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한 업주는 “언제부터 저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며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우리나라에서 1675명이 교통사고 사망자로 집계된 가운데, 무단횡단 사망자는 562명(33.6%)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특히 서울시만 놓고 봤을 때, 2013년에는 128명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졌으며 △131명(2014년) △125명(2015년) △120명(2016년) △114명(2017년) 등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다.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될 만큼 보행자 친숙 환경이 조성된 점을 토대로 혹시나 하는 궁금증에 서대문구에 연세로를 무단횡단해도 별일이 없는 건지 물었더니 ‘엄연히 버스가 다니는 도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태료를 물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다.


하지만 모두가 인도로 인식한 듯, 세계일보가 사람 세어보기를 멈춘 후에도 많은 이들이 빨간불이 들어온 보행자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넜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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