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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세계일보

백살 팽나무와 수국 어우러진 신안 환상의 정원 걸어볼까

신안 도초도 수국공원 6월24∼7월3일 섬수국축제/수국 어우러진 70∼100년 수령 팽나무10리길 ‘환상’/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초가 마루 앉으면 바다·섬 어우러지는 예쁜 풍경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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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10리길.

팽나무숲길을 걷는다. 노거수는 아이가 나고 자라 청년이 되고 노인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시간을 한자리에서 지켜봤겠지. 초가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손자를 안아주던 인자한 외할아버지를 닮은 100살 나무들이 아름다운 터널을 만든 팽나무 10리길. 전국 각지에서 마을의 안녕을 지키던 당산나무는 이제 도초도에 뿌리를 내리고 삶에 지친 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6월이면 만발하는 수국까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선물하는 ‘환상의 정원’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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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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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10리길.

◆ 100살 팽나무숲길을 거닐다

당산나무. 오래된 마을 어귀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인사하는 노거수를 쉽게 만난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나무는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우람한 몸통과 축축 늘어진 가지가 신비롭고 신성한 기운을 풍기게 마련이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많다. 보통 마을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시는데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오랜 세월 살아가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1000년을, 팽나무는 500년을 너끈히 버틴다. 


더구나 팽나무는 달콤한 열매가 풍성하게 열려 새들이 아주 좋아한다. 팽나무가 다산, 풍요, 안녕을 상징하는 당산나무가 된 이유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 팽나무의 속명 ‘셀티스(Celtis)’가 고대 희랍어로 ‘열매가 맛있는 나무’란 뜻이라는 점이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팽나무는 생명을 지키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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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10리길.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전남 신안군 도초도. 볼 게 없어 몇 해 전까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여행자가 멀고 먼 바닷길을 달리는 고생을 무릅쓰고 도초도를 찾는다. 바로 ‘환상의 정원’ 팽나무 10리 길을 걷기 위해서다. 도초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팽나무10리길로 들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는 팽나무터널이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월포천을 따라 나란하게 놓인 폭 3m의 산책로에 70∼100년 수령 팽나무가 760그루 심겨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4㎞ 달한다. 자세히 보니 나무마다 출신지가 적힌 팻말이 달려있다. 사실 이곳의 팽나무는 전국에서 기증받아 심은 것으로 주로 고흥, 해남, 장흥 등 전남 해안지방에서 옮겨왔고 멀리 충청도와 경상도에서도 왔다. 주로 논밭 한가운데 있어 애물단지로 취급받던 팽나무였는데 신안군의 노력으로 한곳에 모여 멋진 풍경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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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10리길 수국.

초록 잎들이 햇살을 가릴 정도로 풍성하게 터널을 이룬 팽나무 10리 길을 천천히 걷는다. 오랜 세월을 강인하게 버틴 나무의 생명력이 고스란히 몸속으로 전달되는 기분이다. 6월 들어 피기 시작한 수국, 석죽패랭이, 수레국화까지 팽나무 밑동을 따라 알록달록 피어나 화사한 꽃길을 열어준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꽃길만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를 짓누르던 불안과 슬픔이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엔 수국처럼 알록달록한 예쁘고 큰 꽃 풍성하게 피어난다. 환상의 정원은 2021년 산림청이 주관한 녹색도시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가로수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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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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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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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 수국공원으로 새 생명 얻은 폐교

팽나무10리길 끝에서 만나는 수국공원으로 들어서면 탄성이 쏟아진다. 본격적인 수국의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5월 말부터 조금씩 수줍은 꽃망울을 터뜨렸는데 자주색, 보라색, 흰색, 파란색 등 세상에 아름다운 색들은 다 모아놓은 듯한 크고 탐스러운 수국이 6월 하순에 만개해 여심을 흔들어 놓는다. 돌체칙, 보스콥뷰티, 로소글로리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같은 종류라도 토양의 성분에 따라 빛깔이 다르게 피어나기에 다양한 색깔을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수국은 ‘변심’이란 꽃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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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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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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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170배 크기니 규모가 엄청나다. 전통정원, 수국공원, 소리마당, 웰빙정원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15종 3만그루의 수국은 8월까지 피어 도초도를 환상의 섬으로 꾸민다. 특히 이달 24일부터 7월3일까지 10일 동안 섬수국축제가 열리는데 이때가 절정이다. 축제는 팽나무10리길을 비롯, 팜파스그라스, 전통정원, 향나무길, 뽕나무밭 등이 어우러진 수국공원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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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공원 정상 조형물.

도초도에 손꼽히는 볼거리를 자랑하는 수국공원은 원래 도초 서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폐교된 뒤 신안군이 부지를 매입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수국공원으로 꾸몄다. 학교건물 안에는 졸업생들을 위한 추억공간이 마련돼 있다. 수국공원 맨 꼭대기에 오르면 탁 트인 평탄한 잔디광장 너머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이곳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지의 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라 조만간 예술까지 더해진 수국공원으로 변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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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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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모친 벽화.

입구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양옆으로 빽빽하게 심어진 향나무 길이 멋진 포토존을 선사하니 놓치지 말길. 수국정원에선 애기동백나무, 만리향 등 다양한 나무와 식물도 만난다. 수국공원으로 가는 길 춘경마을에는 세계적인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어머니가 기다린다. 도초도에서 태어나 비금도로 시집간 박양례씨가 생가 담벼락에 수국꽃 화환을 쓴 채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사대교 개통 이후 신안군 암태도 기동삼거리에 그려져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손석심 할머니와 문병일 할아버지 집 담장 ‘동백 파마머리 벽화’를 그린 신안 지도읍 출신 김지안 작가의 작품으로 또 다른 신안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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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 자산어보 촬영지 올라 다도해를 보다

아직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도초도는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50분, 목포 북항선착장에서 차도선으로 약 2시간 정도 뱃길을 달려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좀 더 편리하다. 천사대교 개통 이후 암태도 남강항에서도 비금도 가산항으로 가는 배가 오후 10시까지 수시로 출발하며 차를 실을 수 있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서남문대교로 이어져 있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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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장면.

이처럼 다른 섬보다는 비교적 교통이 편리해 흑산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자산어보’가 흑산도가 아닌 도초도에서 촬영됐다. 영화는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에 유배당한 정약전(설경구)이 청년 어부 장창대(변요한)의 도움으로 바다 생물에 관한 책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내용을 다룬다. 그런데 흑산도는 너무 거리가 멀어 촬영팀이 오가기 쉽지 않기에 이준익 감독이 도초도에 세트장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대로 유지돼 있다. 수국공원에서 1㎞ 거리여서 함께 여행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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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촬영지에서 본 우이도.

세트장이 설치된 발매리 입구로 들어서자 언덕 위에 한눈에도 운치 있는 아담한 초가 두 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에서 주무대로 나오는 곳으로 정약전이 살던 초가인 가거도댁 집이다. 이곳이 영화 세트장으로 선택된 이유를 잘 알겠다. 앞뒤가 뚫린 마루 너머로 펼쳐진 바다 풍경은 그대로 떼어내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만들고 싶은 액자 속 그림 같다. 마루에 앉으니 실제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우이도(소흑산도) 등 예쁜 섬들이 바다를 꾸미는 시원한 풍경이 가슴을 파고든다. 영화는 극장에서 내린 지 한참 지났지만 바다가 보이는 초가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관람객을 맞는다. 커다란 우물이 있는 마당에서 마루에 앉은 연인을 찍으면 영화만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슈룹’도 이곳에서 촬영됐을 정도로 인기다.


여유가 있다면 차로 15분 떨어진 시목해수욕장도 들려보길. 감나무가 많아 시목이란 이름을 얻은 이곳은 바닷물이 맑고 경사가 완만하며 다도해가 천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덕분에 물이 잔잔해 여름에 해수욕하기 좋은 곳이다. 쪽빛 바다를 따라 황금 모래가 깔린 반달모양 백사장이 2.5㎞나 펼쳐지고 백사장 뒤편으로 앉은 해송군락 사이로 오솔길이 펼쳐져 숲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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