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살아있네"… 겨울 가기 전에 울진行
경북 울진을 다녀왔다. 여행을 좀 하는 이들은 해마다 이맘때 이곳을 떠올릴 수 있다. 제철을 맞아 속이 꽉 찬 울진 대게 맛도 볼 수 있고 추위와 피로를 녹일 정도로 뜨끈한 데다 건강에도 좋다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4년 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 기자는 이달 말 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미리 울진을 둘러봤다. 울진은 흔히 ‘3욕(浴)의 고장’이라 불린다. 삼림욕, 해수욕, 온천욕이 가능해서다. 1박2일의 체류기간 겨울이라 해수욕은 못 했으나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덕구온천과 응봉산 삼림욕도 하고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추억의 대게 맛을 볼 수 있었다. 이맘때 후포항의 진풍경인 붉은대게 위판 현장 구경은 덤으로 얻은 여행의 수확이다.
후포항의 아침 장관 붉은대게 위판
인부들이 경매를 위해 붉은대게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2월이라 매섭게 몰아치는 동해안 칼바람을 가르며 서울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울진 후포항을 찾았다. 이곳은 얼마 전부터 종편의 ‘백년손님’ 등 방송을 통해 조명되며 관광객이 늘었다고 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대게 잡이 항구로도 유명한데, 요즘은 제철을 맞은 대게와 붉은대게 위판이 매일 열린다.
오전 7시부터는 대게 위판, 9시30분부터는 붉은대게 위판이 시작된다. 기자는 붉은대게 위판 현장을 찾았다. 밤사이 어부들이 잡아온 붉은대게들은 어선에서 대기하다 위판 시간이 되면 인부들이 동원돼 상자째 어판장 바닥에 쏟아진다.
아낙네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붉은대게들을 크기별로 분류해 정리한다. 진홍빛의 수천 마리가 되는 붉은대게들이 오와 열을 맞춰 경매를 기다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볼거리다. 이 구경을 하기 위해 위판 시간에는 중개인 상인뿐 아니라 관광객과 출사객(出寫客)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룬다. 경매사는 중매인들이 내미는 나무판에 적힌 입찰가격을 보고 최고 낙찰가를 알린다.
이윽고 주인이 정해진 붉은대게는 바로 손수레에 실려 나가고 다시 대기하던 다른 상자의 붉은대게들이 다시 어판장에 쏟아진다. 붉은대게들이 다시 줄을 맞춰 정리되면 경매가 재개된다.
이곳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대게 생산량 1위인 울진은 대게 원조마을로 통한다고 한다. 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지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와 붉은대게는 2월부터 맛볼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시대부터 대게가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1539~1609)도 이곳으로 귀양 왔다가 대게가 많다고 해서 ‘해포(蟹浦)’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전해진다.
대게는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8개의 다리 마디가 마른 대나무를 닮아 대게로 불린다. 대게 중에서도 최상품은 박달대게다. 속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게 차고 맛과 향이 뛰어난 박달대게는 배 한 척이 하루 2∼3마리만 낚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다.
대게의 고향은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왕돌초 일대이다. 왕돌초는 맞잠, 중간잠, 셋잠 등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수중암초지대로 넓이가 동서 21㎞, 남북 54㎞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말한다. 수중 경관이 아름답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126종의 해양생물이 분포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졌다.
대게(왼쪽)와 붉은대게 |
대게와 붉은대게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생김새는 비슷하나 빛깔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옅은 주황빛을 띠는 것이 대게다. 반면에 붉은대게는 몸 전체가 짙은 주홍색이다.
심해에서 잡히는 붉은대게는 껍질이 단단하고 짠맛이 강해 대게에 비해 값이 싼 편이다. 늦가을부터 겨울을 거쳐 이듬해 봄까지도 입맛을 살려주는 별미로 대접받는다. 지금이 딱 제철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울진대게와 붉은대게축제’가 28일부터 3월3일까지 4일간 울진군 후포항 왕돌초 광장 일원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울진에서는 ‘해장의 왕’이라 불리는 곰치국 맛보기도 빼놓을 수 없다. 칼칼한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곰치를 텀벙텀벙 잘라 끓여내는데, 뜨끈한 국물과 생선의 부드럽고 뽀얀 속살이 쓰린 속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술꾼들에게는 인기 메뉴다. 곰치국은 원래 한겨울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조업에 나선 뱃사람들에게 든든한 한 끼이자 속을 풀어주는 해장국이었다.
애주가들의 해장용으로 널리 알려진 곰치 |
정약전은 한국 최초의 어류생태서 ‘자산어보’에서 ‘살이 아주 연하고 맛이 싱거우며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해 옛날부터 ‘해장의 왕’으로 통한다. 원래는 ‘꼼치’가 표준어지만, 곰치, 물텀벙, 물곰 등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못생긴 물고기로 버림받았는데, 이제는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귀하신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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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는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부서지고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살짝 데친다는 기분으로 5분여 끓인다. 그래서 주문과 동시에 끓여내는데, 짧은 순간에 맛을 잡아내는 것이 맛의 포인트라고 한다.
겨울 정취 만끽하는 트레킹과 온천이 가능한 응봉산과 덕구온천
후포항에 앞서 기자가 찾은 곳은 덕구온천과 응봉산이다. 덕구온천은 퇴행성관절염, 당뇨, 고혈압, 만성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나 있다. 덕구온천 뒤로는 해발고도 999m의 응봉산이 자리 잡고 있다. 온천과 트레킹이 동시에 가능한 곳이다. 대체로 이곳에 온천욕을 하러온 이들은 입욕하기 전 응봉산을 짧게 트레킹한다.
트레킹족들은 물병 하나만 들고 가볍게 소풍하는 기분으로 온천에서 4km 떨어진 덕구계곡 원탕까지 산행을 한다. 굵은 쇠파이프를 연결해 온천수를 공급받기에 파이프관을 따라가면 원탕에 도달하게 된다. 섭씨 43도 온천수가 있는 원탕이다.
늦겨울 정취를 느끼며 트레킹하기에 좋은 덕구계곡. 선녀탕 옥류대 등이 배경을 이룬다. |
이곳 온천수는 파이프라인에 실려 덕구온천으로 들어간다. 트레킹 코스에서 내내 보이던 수로관이 바로 온천수 관이다. 덕구온천은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모터로 뽑아내지 않은 ‘자연용출’ 온천이다. 하루에 약 2000t의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덕구온천이 유명한 이유가 설명된다. 계곡 중간지점에서 선녀탕과 용소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용소폭포는 용이 지나간 듯한 꿈틀거림의 흔적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덕구계곡에는 초입에 있는 제1교량인 금문교를 시작으로 서강대교 노르망디교, 하버교, 크네이크교, 모토웨이교, 알라밀로교, 취향교, 청운교, 트리니티교 등 특색 있는 다리들이 나온다. 세계 유명 교량을 모방해 만든 12개 다리는 트레킹의 재미를 배가한다. 기자도 한 시간 동안 트레킹 맛을 봤다. 숨은 가빴지만 코끝으로 전해진 계곡의 차가우면서도 신선한 공기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충분했다.
울진의 새 명소와 스카이워크와 나곡 바다낚시공원
지난해 2월 선보인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바다 위 20m 높이에 135m 길이를 자랑한다. |
후포 등기산 스키이워크도 새로운 명소가 됐다. 지난해 2월 선보인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바다 위 20m 높이에 135m 길이를 자랑한다. 방문객은 계단을 올라 눈 앞에 펼쳐진 나무 바닥은 자신 있게 건넌다.
등기산 스카이워크 57m의 유리바닥 구간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
하지만 덧신을 신고 가야 하는 시퍼런 바닥이 훤히 보이는 57m의 유리바닥 구간에선 엉금엉금 기어간다. 다른 지역 스카이워크도 걸어봤지만 이곳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그럼에도 강화유리 밑으로 보이는 코발트빛 후포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제대로 맞을 수 있어 등기산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나곡바다 낚시공원 인근 절경. 코발트빛 동해의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이다. |
나곡 바다낚시공원 |
바다낚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나곡 바다낚시공원이다. 북면 나곡리에 위치한 나곡 바다낚시공원은 2013년 10월 문을 열었다. 바다 위에 인공적인 낚시잔교를 만들어 놓은 시설이다. 갯바위보다 안전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 관리소부터 낚시잔교까지의 이동로, 인근 전망대까지 묶어 공원으로 조성해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탁 트인 동해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잔교, 뾰족뾰족 서있는 해안절벽의 조화로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나곡 바다낚시잔교는 130m로 그리 길진 않지만 넓은 발판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토원도예 내부 |
도예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온양리 바닷가 언덕에서 향토 도예가 신동수 작가가 운영하는 토원도예도 가볼 만하다. 울진의 흙을 고수하며 고집스러운 신념으로 작업하는 신 작가가 운영한다. 백자 달항아리가 가득 찬 전시관에서 고온의 장작불을 다스리면서 멋스러운 자연 빛으로 곡선을 살려 만들어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지었다는 장작가마 구경도 하고 가족 단위 도자기 체험도 가능하다.
울진엑스포공원 내 아쿠아리움 |
멸종위기 보호종인 잔점박이풀범을 비롯한 120여종 5000여마리의 해양생물이 전시된 울진아쿠아리움과 울진 대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울진대게홍보전시관은 자녀와 함께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울진=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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