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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세계일보

대구 사람도 모르는 숨은 여행지 불로동 고분군 가을로 물들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가을을 향해 뛰어보자 ‘폴짝’/고분과 억새로 가을 빚은 불로동 고분군/윤슬 가득한 호수 봉무공원 단산지/레트로 감성 충만한 북성로 시간여행/이중섭이 ‘소’를 그리고...구상 시인 출판기념회 기념회 열었던 그때 그 다방·여관/납작만두 위 매콤한 무침회 ‘대구의 맛’/대구여행 새 ‘핫플’앞산해넘이전망대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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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멀리서 보면 올록볼록 신기하고 예쁘다. 구릉지에 엠보싱처럼 크고 작은 둔덕이 끝없이 이어진 풍경. 눈만 내리면 순식간에 모굴스키장으로 변신할 것만 같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깜짝 놀라게 된다. 둔덕은 모두 고대국가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파란 가을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초록의 둔덕이 만나 만들어낸 라인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무덤에 이토록 한껏 멋을 부려 놓은 걸 보니 오래전 이 마을에 솜씨 좋은 조각가 한 분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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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입구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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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전경

고분과 억새로 가을을 빚다

한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진앙이던 대구는 이제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드물게 나오고 있을 정도로 안전한 곳이 됐다. 덕분에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한 대구 여행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불로동 고분군 입구에는 한 가족이 오손도손 도시락을 먹으며 가을 소풍에 푹 빠져 있다. 서너 살 꼬마들은 마치 아가 새처럼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김밥을 맛나게 받아먹는다. 마스크는 벗지 못하지만 일상을 되찾은 풍경이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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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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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그들 뒤로 드넓게 펼쳐진 초록의 구릉은 마치 제주에 온 듯하다. 그리고 엄마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부드러운 곡선의 고분들. 누가 일러주지 않으면 그냥 자연이 빚은 둔덕처럼 주변 풍경에 잘 녹아 있다.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구릉을 천천히 오른다. 능선이 아주 완만하고 곳곳에 운치 있는 소나무들이 심어져 아이들과 손잡고 산책하기 좋다. 가장 커다란 고분 위에 80대로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오랫동안 앉아 있다. 인생의 풍파를 힘겹게 헤쳐 나왔을 그는 옛사람의 무덤에서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있는 듯하다. 맑은 가을 풍경과 대비돼 묘한 슬픔이 잠시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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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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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고분군이지만 무덤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봉분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불로동 고분군에는 크고 작은 봉분 214기가 능선을 따라 가득한데 지름은 21~28m, 높이는 4~7m에 달한다. 고분에서는 금귀고리, 유리구슬 목걸이 등 장신구와 토기류, 재갈과 말띠드리개 등 마구류, 화살촉·도끼·낫 등 무기류가 발견됐다. 특히 당시로는 아주 귀한 음식이었을 상어(돔배기)의 뼈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5∼6세기 삼국시대에 불로동을 지배하던 세력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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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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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 단산지 가는 산책로

10여분 걸어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팔공산, 이월드 83타워, 앞산, 월드컵경기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팔공산의 남쪽 줄기가 낮아지면서 금호강의 충적평야와 만나는 지점의 구릉지라 하루 종일 따사로운 햇살을 잘 받고 시야는 탁 트였다. 한눈에도 명당자리로 보이니 당시 권력층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 이곳에 봉분을 조성했으리라.


무덤의 사연은 이렇지만 1500년의 세월이 흘러 고분군이라는 이름을 달고 근사한 풍경을 후손에게 선사했으니 봉분을 디자인한 장인에게 감사한다. 고분 사이로 여러 갈래의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갈대가 흐드러지게 피어 가을의 낭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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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무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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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무공원 단산지 산책로

햇살 받는 가을 호수엔 윤슬 가득

불로동 고분군에서 낭만이 가득한 호수 봉무공원 단산지로 방향을 잡으면 가을 풍경을 더욱 만끽하게 된다. 대구올레 팔공산 6코스 ‘단산지 가는 길’은 고분군 공영주차장~고분군~경부고속도로 굴다리~영신초·중·고교~봉무공원~단산지~만보산책로~단산굴~봉무정·봉무토성으로 이어진다. 모두 7.2㎞ 구간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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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무공원 단산지 산책로

시간이 많지 않다면 단산지를 한 바퀴 천천히 걷는 것으로도 가을을 만끽하기 충분하다. 단산지는 주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32년에 만들어진 저수지. 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이 거의 없이 숲을 병풍처럼 끼고 있어 광활한 호수로 보인다. 단산지 둘레길은 3.5㎞로 50분가량 소요된다. 호수를 크게 도는 봉무공원 등산로는 3.7㎞로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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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무공원 단산지 윤슬

날이 좋아 파란 가을하늘이 호수에 가득하다. 햇살이 물위에 쏟아지고 때마침 바람마저 불어줘 물결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윤슬을 선사한다. 곳곳에 핀 야생화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봉무공원은 나비들의 천국이다. 봉무나비생태원에는 우리나라 나비 150종과 외국나비 100여종의 표본 1000여 개체가 전시된 나비학습관과 곤충생태관, 나비사육장을 갖춰 아이들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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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다방(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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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다방 내부

레트로 감성 충만한 북성로 시간여행

대구역 인근 북성로는 요즘 대구여행의 핫플레이스다. 레트로 감성 가득한 카페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대구역사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1.42㎞가량의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대구 최고의 번화가였다. 1911년 2월 발행된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당시 백화점, 철물점, 양복점, 곡물 상회 등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양한 가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적인 장소이지만 광복 후 일본인이 떠난 자리에 기계·철물·금속 상점이 들어서고 다방과 음악감상실에 피란 온 예술가들이 모이면서 사교와 문화의 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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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다방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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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다방 2층

꽃자리다방이 대표적이다. 1956년 청구문화사에서 출간된 구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린 곳으로 시집의 표지화를 이중섭의 ‘아이들의 유희’로 장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다방이 아직 그대로 남아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안으로 들어서면 골동품이 돼버린 흑백TV와 재봉틀을 마주한다. 한쪽 벽을 절반쯤 차지한 걸개그림은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글자만 크게 쓰여 있다. 아주 예쁜 말이다. 자주 써 먹어야겠다. 옥상에는 높은 난간 벽을 뚫어 놓고 벤치를 앞에 놓아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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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대화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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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주방

원로 음악가들이 자주 찾던 백조다방, 이중섭 화가가 담배 은박지에 소 그림을 그린 백록다방,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와 녹향은 아직 북성로 골목에 남아 있다. 이중섭이 숙소로 사용한 경복여관, 구상 시인과 동화작가 마해송 등 문인이 자주 이용한 화월여관도 세월의 무게를 잘 버티고 있다. 대화장 여관은 카페 ‘대화의 장’으로 바뀌었다. 여관의 타일이 떨어지고 페인트가 묻은 오래된 외벽을 그대로 살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레트로 카페로 꾸몄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멋진 공간 대화살롱이 등장한다. 시멘트벽과 목재골조, 배관이 그대로 노출된 계단식 마루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쉬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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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개 무침회와 납작만두

불타는 가을 노을 즐기는 법

대구 음식은 짜고 맵기만 하다는 얘기는 옛말이다. 대구여행을 음식으로 기억하게 만들 정도로 맛집이 많아서다. 내당동 반고개 무침회골목은 대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내륙이라 싱싱한 활어를 먹기 어려워 대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삶은 오징어, 소라, 논고동, 아나고에 무채, 미나리를 넣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으로 버무린 무침회를 먹었다. 가오리찜이 식욕을 돋우는데 대구 음식답게 상당히 맵다. 그래서 대구의 명물 납작만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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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 찜갈비

얇은 만두피에 당면을 넣고 반달모양으로 빚은 납작만두 위에 무침회를 한 젓가락 올려 쌈 싸먹 듯 먹으면 오랫동안 대구의 맛으로 기억된다. 동인동 찜갈비 골목도 쌍벽을 이룬다. 소갈비를 매운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로 버무려 혀와 입술이 얼얼하다. 하지만 적당히 달짝지근해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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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해넘이전망대 대구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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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해넘이전망대 일몰

대구여행은 앞산해넘이전망대에서 정점을 찍는다. 남구 대명동 빨래터공원에 최근 문을 연 전망대는 높이 13m. 주차장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데크길이 288m 이어져 가을 하늘을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며 산책할 수 있다. 서서히 해는 떨어지고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스친다. 뭉게구름에 반사되며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낙조는 한동안 말을 잊게 한다.


대구=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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