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팝페라 테너 임형주 “세월호 추모곡 계기로 朴정부서 불이익 받아”
한국 팝페라 테너 1세대이자 아시아 팝페라계의 선구자인 임형주는 “박근혜 정부 당시 나도 방송에 하차하는 불이익을 받았다”라며 “지금 와서 공론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어서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엔콤 제공 |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요? 제가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정권 초반에는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됐었다가 후반에는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요?”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명 팝페라 테너 임형주(33)씨는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에 자신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 공식 행사에 초청돼 애국가 등을 불렀던 임씨는 박근혜정부 초반에도 그랬다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른 뒤부터 정부에 찍힌 신세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그는 해당 곡을 부른 뒤로 그전과 달리 정부와 민간 행사 초청에 배제되고, 방송활동에도 많은 제약을 받았다.
임씨가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팝페라 테너?임형주가 출연했던 Mnet 어린이 음악 경연 프로그램 ‘위키드’. 그는 결승전에서 갑자기 하차해야 했다. 방송 캡처 |
◆“박근혜 정권 때 프로그램 강제 하차 당해”
임씨는 한국 팝페라 가수 1세대로, 아시아 팝페라계의 선구자다.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카네기 홀에 존재하는 3개의 모든 홀(아이작스턴 오디토리움, 잔켈홀, 웨일 리사이틀홀)에서 단독공연을 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베를린 교향악단, 도쿄 필하모닉, 체코 심포니, 모스크바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했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그도 박근혜 정부가 눈엣가시인 문화계 인사들을 탄압할 때 피해 갈 수 없었다.
임씨는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정부 행사에 초청돼 애국가 등을 불렀고, 박근혜 정부 때도 초반에는 정부 행사에 많이 초청됐다”고 했다. 정권의 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정부 행사에 우선 섭외 대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찬밥 신세가 됐다. 정부 행사는 물론이고 민간 행사에도 배제됐다.
“Mnet ‘위키드’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장과 특별 멘토 역할로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결승전에 출연하지 말라는 통보를 제작진에게 받았어요. 제가 (결승전 배제를) 납득하지 못하자 (제작진 주요 관계자가)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서, 윗선에서 연락이 와서 (결승전에서) 빠지게 됐다’고 설명해줬어요.”
임씨는 2016년 2월 18일 첫 방송을 한 어린이 음악 경연 프로그램 ‘위키드’에서 심사위원장과 특별 멘토로 참가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결승전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가 부른 세월호 추모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걸림돌이 됐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해당 노래를 경연 참가자인 오연준, 박예음이 부르면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임형주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과 남은 가족,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부른 노래이지만, 너무 인기를 얻어 (박근혜 정부 등의) 눈엣가시가 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 5월 24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린 ‘국제여성 평화걷기(Woman Cross DMZ)’ 축하공연이 무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세계 여성 평화 운동가들이 방한해 DMZ를 걷는 평화 행사라고 해서 축하공연을 부를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연 이틀 전부터 사무실에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불이익을 받게 됐다는 것을) 피부에 와닿게 느꼈어요. 행사에 참가하면 물병 등을 던진다고 위협도 받았죠. 직원들도 걱정해 결국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임씨는 그동안 자신이 받은 불이익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열면서도, 전 정권을 비난하기 위해 공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 정권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공론화하고 싶어서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이번 정권도 중반을 지났으니 ‘과거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어서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지난달 15일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광복환상곡 ‘그날이 오면’을 부르고 있다. 방송 캡처 |
◆“국가적 사명에 함께 하는 것은 나의 숙명”
대중 앞에서 좀처럼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임씨는 최근 국가 행사를 통해 얼굴을 다시 알렸다. 그는 지난달 15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진행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 공연을 했다. 지난해 3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서 캠페인송 ‘저 벽을 넘어서(Beyond The Wall)’를 가창한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특히 이번은 대체 복무를 마치고 가진 첫 공식 행사다.
그는 “지난 6월 군 복무를 마치고, 두 달 만에 광복절 공연에 초대됐다”라며 “국가 행사는 많이 섰기 때문에 익숙한데, 이날은 좀 떨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광복환상곡 ‘그날이 오면’의 초연 때문이다. 광복환상곡 ‘그날이 오면’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심훈이 쓴 대표적 저항시 ‘그날이 오면’을 가사로 채용한 곡이다.
“심훈 선생의 시를 워낙 좋아했고, 그 시를 노래로 부른 광복환상곡을 제가 처음 불렀기 때문에 더욱 긴장했죠. (다름 음악가들이) 내가 부르는 방식을 레퍼런스(참고)해 부르니까 더욱 노래에 집중해야 했어요.”
임씨는 이날 짙은 자줏빛 한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섰다. 그는 “당시 한복은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식 때 입은 옷”이라며 “평창동계패럴림픽의 정신을 계승하고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직접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일본의 불합리한 태도에 대해 성토했다.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행사에서 재능기부로 노래를 부르고,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의 활동 때문에 일본 우익에게 많은 경고와 위협을 받았어요. 일본 대사관에서 예술인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아 일본 공연을 못할 뻔한 적도 있지요. 그럼에도 계속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활동을 하는 것은 운명인 것 같아요. 국가적 사명에 결을 같이 하는 게 저의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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