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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서 SNS에서…벗어날 수 없는 ‘학폭 지옥’

연중기획-피로사회 리포트

‘폭력 스트레스’ 시달리는 청소년들 / 주먹 대신 언어·사이버 폭력 늘어 / ‘현실·가상서 폭력’ 다중피해 집단 / 57.5% “극단적 선택 생각해 봤다” / “집에 오면 해결되는 세상은 끝나 / 보이지 않아 더 잔인… 평생 상처 / 교우 관계망 파악 등 개입 필요해”

세계일보

인천지방법원 형사1단독 김은엽 판사는 지난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학생에게 ‘사이버 폭력’을 가한 가해 남학생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군은 2018년 9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 여자친구인 B씨를 성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의 글과 댓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B양은 A군이 글을 올린 날 오후 8시에 고층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재판과정에서 A군과 친구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나 지인 등을 통해 B양에게 ‘학교 앞으로 간다고 전해라’, ‘가만 안 두겠다’식의 글이 올라왔는데, 재판부는 “공포심을 일으키게 할 만큼의 행위가 없었다”며 무죄 판단하고 명예훼손 혐의만 유죄판단했다. 이에 B양의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공간의 세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공간입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려 판결을 비판했다.


정부가 학교 폭력 예방에 힘을 쏟고 있다지만, 아직 많은 한국의 청소년들이 아픔과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4일 교육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피해를 보았다는 청소년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언어적 폭력과 사이버 폭력과 같은 비물리적 폭행이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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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현실과 가상 모두에서 일어나는 ‘다중 폭력’은 청소년들을 더욱 괴롭고 힘들게 하고, 숨쉴 공간마저 빼앗는다. 청소년 시절의 폭력은 경중 여부와 상관없이 성인이 되어서도 ‘큰 상처’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폭력의 방치가 피로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청소년 시절부터의 세심한 배려만이 한국의 ‘피로사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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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폭력은 줄었지만 매년 증가하는 학폭

교육부는 매년 2회에 걸쳐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재학생을 상대로 학교폭력실태조사를 시행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된 학교폭력 실태조사(1차)에서 응답한 학생 중 학교폭력 피해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였다. 전체 372만명 중 6만명 수준이다. 2018년엔 1.3%, 2017년엔 0.9%였다. 매년 1만여명씩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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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물리적 유형의 학교폭력 비중은 작아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피해유형별 비중은 2019년 기준 신체 폭행이 8.6%, 성추행·성폭행이 3.9%로 전년 대비 각각 1.4%포인트, 1.3%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비접촉 폭력의 증가다. 전체 폭력 비중 중 언어폭력(35.6%), 집단 따돌림(23.2%), 사이버 괴롭힘(8.9%)이 높았다. 학교폭력 예방 전문시민단체인 푸른나무재단이 전국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 5890명을 상대로 2018년 실시한 조사에서 폭력 유형별 중 사이버 폭력이 6.9%로 전년보다 1.4%포인트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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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다중 폭력… “자살 생각 높다”

청소년 폭력은 한 가지 형태로만 발산하지 않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9년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서 중·고등학생 6409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다중피해 유형으로 분류된 집단은 전체의 7.7%였다. 연구원 조사에서 다중피해 집단에 속한 청소년이 또래로부터 폭언을 경험할 가능성은 80%, 사이버상에서 폭언을 경험할 가능성은 73%에 달했다. 이들은 양육자로부터의 체벌이나 교사로부터의 체벌 가능성도 타 집단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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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다중피해 집단의 경우 여러 폭력 피해 유형에 노출되지만 특히 다양한 주체에 의한 언어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특히 또래로부터의 언어폭력과 사이버상에서의 언어폭력의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중피해 집단에 속한 청소년은 우울감이 다른 집단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연구원 조사에서 폭력피해 유형은 다중피해 집단 외에 △교사피해집단 △무피해집단 △가정내피해집단으로 구성됐는데, 이 중 다중피해집단의 우울증 척도가 7.94점으로 교사피해집단(6.31), 무피해집단(5.5), 가정내피해집단(7.0)에 비해 높았다. 다중피해집단의 청소년들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57.5%로 응답군 중 유일하게 50%를 넘어섰다. 자주 생각한다는 응답도 13.3%로 두 자릿수에 달했다.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개입 필요“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청소년의 환경에 대한 즉각적인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원은 “다중피해 집단에 속한 청소년들은 우울과 자살 생각에서 ‘가정 내 피해’ 집단과 더불어 가장 부정적인 특성을 보인다”며 “여러 폭력피해 가운데 보다 관찰이 쉬운 학교폭력 피해를 통해서 발견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청소년 스스로 도움을 찾을 수 있도록 온라인 상담과 오프라인 상담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상담에서의 비밀보장 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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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듯 집에 오면 해결되는 세상은 끝났다”며 “오히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상의 청소년 폭력이 훨씬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어른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교수는 이어 “목격자들이 방관하지 않도록 익명 신고 등 온라인 신고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일남 명지대 교수(청소년지도학과)도 “학교폭력이 과거처럼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를 정확히 삼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방관자가 가해자가 되는 등 다변화 양상을 띤다”고 분석했다. 이어 권 교수는 “지금까지의 학교폭력 해결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위원회를 여는 등 사후 조치였는데, 이러면 가해자, 피해자가 ‘승리’를 하기 위해서 다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청소년들의 관계망을 면밀히 파악하고, 댓글 등을 사전에 모니터링하는 등의 사전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도형·김청윤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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