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면서 낯선… 신체에 천착한 예술과의 만남
아트선재센터, 카미유 앙로·이미래·돈선필 개인전
카미유 앙로 ‘토요일,화요일’… 엄마와 아이의 다양한 신체접촉 그려 행위에 내재된 즐거움·고통 양가성 표현
이미래 ‘캐리어즈’… 살아있는 육체를 비유한 움직이는 설치물 기괴함이 주는 두려움이 연민으로
돈선필 ‘포트레이트 피스트’… 눈·코·입 있을 자리에 장난감 피규어가… 신체를 대표하는 얼굴의 의미 탐색
정신의 승리를 외치는 문명에 겸손할 것을 상기시켰던 것은 언제나 신체에 주목했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신체를 탐구한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한 세 작가의 개인전은 각각의 세계를 전시하지만, 마침 신체에 천착한 결과물들을 선보여 신체현상학자들의 단체전처럼 느껴진다.
카미유 앙로 ‘모국어2’ |
카미유 앙로
카미유 앙로는 신체적 사건, 신체의 모습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의존성을 탐구하고 있는 인류학자처럼 느껴진다.
‘카미유 앙로:토요일,화요일’의 전시공간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수채 드로잉 연작들은 엄마와 아이가 껴안고 있는 모습들이다. ‘애착체계’와 ‘유축’ 연작인 작품들은 엄마와 아이의 다양한 신체 접촉을 그리고 있다. 신체 접촉의 동작들에 집중하고 나머지 묘사를 단순화한 드로잉이다. 아이를 안고 달래기, 수유하기 등 관례와 사회의 규칙에 따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식을 걷어내고 신체 접촉이라고만 봐주기를, 심지어 인간인지 동물인지에 대한 인식조차도 제거하고 봐주길 바라는 작가의 의지로 읽힌다.
드로잉 속 인물들은 안기, 울기, 매달리기, 붙기 등으로 끈끈한 정서적 유대를 보여주며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괴롭힘과 고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실제 출산과 육아라는 일생일대의 신체적 사건을 계기로 그린 작품들로, 인간 신체의 의존성, 보살핌 행위에 내재된 즐거움과 고통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대형 캔버스만 한 종이에 수채화로 따뜻한 색을 번지게 하는 방식을 써서 표현했다.
수채 드로잉 작품들이 둘러싼 공간의 한가운데에선 영상 속 두 백인 남자가 몸을 꼬고 비틀고 서로 뒤엉키는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연속된다. 매트 위 두 주짓수 선수들의 훈련 장면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규칙과 해석을 제고하고 나면, 이것이 힘겨루기의 뒤엉킴인지 에로틱한 뒤엉킴인지 모호하며, 배경음악 탓에 명상을 유도하는 화면 같기도 하다. 조희현 큐레이터는 이를 두고 싸움이라고도, 애정이라고도 하지 않고 “중립화했다”는 표현을 쓰면서 “슬로모션으로 물리적인 움직임을 과장되게 유예하며 신체의 심미성에 몰입하게 하고 관능적인 사운드트랙이 경쟁 중인 장면마저 사색을 유도하는 화면으로 치환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상 작품 ‘토요일’에서는 절망의 순간에 인간이 종교적 방식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을 관찰한 것도 흥미롭다.
카미유 앙로는 주로 뉴욕과 프랑스를 기반으로 조각과 설치, 영상작업을 해온 작가로,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2014년 독일에서 백남준어워드, 2015년 에드바르뭉크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으며 이번 전시는 그의 첫 한국 내 개인전이다.
이미래 ‘캐리어즈’ |
이미래
이미래 작가의 공간은 명상 공간 같았던 카미유 앙로 전시공간과 뚜렷이 대비된다. 이미래의 개인전 ‘캐리어즈’ 공간에 들어서면 천장에서 내려온 동물의 창자같기도, 인간의 탯줄처럼도 보이는 호스가 끈끈한 액체를 토해내고 있다. 액체와 공기가 동시에 빠져나오며 나는 삐죽거리는 소리까지, 기괴하고도 강렬한 장면이 눈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천장부터 바닥에 뉘어진 부분까지, 미적인 모습이라곤 없이 덩어리진 채 놓여 있는 거대한 호스, 그 통로 안에서 액체의 흐름, 비규칙적인 액체의 터져나옴, 그 액체를 돌리는 기계 동력의 총합을 보여주며 작가는 이것이 신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언가를 옮기는 수단을 뜻하는 캐리어(carrier)가 가진 임신한 여성, 서비스직에 속하는 사람, 혈관, 액체나 전자가 흐르는 용기, 병을 가진 것이나 보균자와 매개체, 교통수단 등 2차적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신체 상태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말로써 캐리어를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구전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 샤먼(종교적 능력자)이 아주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피부를 벗기는 의식을 행한다는 한 부족의 이야기였다. 작가가 감각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는 영매, 전달자인 캐리어 이야기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괴물같았던 설치작품은 가장 예민하고 약한 생명체 날것 그대로의 신체로 다가온다. 기괴함이 주었던 두려움도 연민으로 반전된다. 이미래는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간단한 원리로 작동하는 기계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재료를 함께 다루어 조각과 설치 작업을 해오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돈선필 전시전경 |
돈선필
신체를 대표하는 부위로서의 얼굴 의미를 탐색하는 돈선필 작가 개인전은 마침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시대를 만났다. ‘돈선필:포트레이트 피스트’에서 그가 택한 방식은 얼굴의 생김을 이리저리 비틀어보기다. 어른들의 장남감으로도 여겨지는 피규어와 함께 전시되고, 피규어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인 탓에, 가볍고 산뜻한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하고픈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전시공간에 세워진 파스텔톤 얼굴 조각상들에는 눈, 코, 입이 없다. 그 대신 어떤 초상은 휴식하는 사람, 어떤 초상은 권총, 어떤 초상은 오므라이스다. ‘그는 잘생겼다 또는 못생겼다’, ‘그는 여유 있는 인상이다 또는 비열한 인상이다’, ‘그는 투명한 사람이다, 아니 음흉한 사람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얼굴에서 한 사람의 성격, 직업, 사회적 지위, 국적, 정치적 입장, 정체성을 읽어내는 것에 착안해, 얼굴생김과 해석의 원칙을 바꾸어버렸다.
얼굴이 가진 힘을 없애고 싶었던 것일까, 숨기고 꾸미고 꾀부리며 더 이상 얼굴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오늘날 얼굴을 더 직설적인 얼굴로 바꿔내고 싶었던 것일까, 해석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는다. 다만 작가처럼 세상의 얼굴들을 다시 그릴 수 있다면 그 악인의 얼굴엔 똥을, 어떤 이의 얼굴엔 꽃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 전시 모두 9월 13일까지 열린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