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 피신했던 천년 고찰···'동화'같은 속삭임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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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가을 팔공산 속 사찰, 국화꽃이 반겨
7년전 "6·25전쟁때 금괴 묻어" 소동
지금은 돌담 쌓아 소원 비는 곳으로
몸 숨겼던 바위 등 곳곳 왕건의 자취
봉황이 내려앉은듯···신비로움에 흠뻑
시내로 가는 길은 근대사가 그대로
조선 영조 대에 지어진 보물 제1536호 대구 동구 동화사 대웅전 앞에 국화꽃이 피어 있다. |
팔공산자연공원 입구에 있는 나무들의 잎사귀 색이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다. |
서울에서 대구행 차편에 몸을 실으면서 일찌감치 동화사를 방문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팔공산에서 짙은 가을 정취를 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수년 전 ‘금괴 소동’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한 동화사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지난 2012년 탈북자 김모(48)씨는 자신의 양아버지가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재산을 금괴로 바꾼 뒤 동화사 대웅전 뒤편에 묻었다면서 발굴을 요청했다. 대웅전 지하에 수십㎏의 금괴가 잠들어 있다는 영화 같은 얘기는 이후 묻힌 금괴가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한국은행에서 훔친 것이라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극적인 요소를 더했다. 금괴의 소유권과 문화재 보존 문제를 두고 김씨와 한국은행, 동화사의 이해가 뒤얽히면서 당시 지역사회는 적잖은 소동을 겪었다.
대구 동구 동화사길을 타고 팔공산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1,500년이 넘은 사찰 동화사가 나온다. 단풍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빈자리를 국화꽃이 대신하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한 스님을 만나 뒷이야기를 물으니 금괴는 아직도 발굴하지 않은 상태라며 “파헤치지 않았기에 신묘한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대웅전 뒤편, 금괴가 묻혀 있다는 곳은 풍수지리적으로도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 한다. 절을 찾은 방문객들은 대웅전 뒤편 돌담에 동전을 올려두고 손을 올려 각자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이영숙(56) 문화관광해설사는 “2015년에도 김씨가 동화사를 찾아와 스님과 마찰이 있었다”며 “당시에는 CCTV에다 초소까지 설치했지만 이제는 잠잠해져 초소는 치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신라 흥덕왕 때 지어진 절은 겨울에도 오동나무꽃이 만발해 이름을 오동나무꽃의 절, 동화사라 지었다고 한다. 봉황이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튼다 하여 절 곳곳에는 봉황과 관련된 조형물이 많다. 대웅전 경내에 봉황의 꼬리를 상징하는 봉서루와 함께 둥근 돌들(봉황의 알)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악 스님을 기리는 인악대사비 귀부(龜趺)도 거북이 아닌 봉황으로 조각돼 있다.
천년고찰에 전해오는 것이 어찌 금괴 이야기뿐이랴. 이곳은 신라 말기에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전쟁에 패하며 피신한 곳이기도 하다. 동화사 염불암 뒤에 있는 일인석(一人石)은 왕건이 혼자 몸을 숨기던 바위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팔공산(八公山)도 왕건을 구하다 죽은 충성스러운 장수 8인을 기리기 위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길목에 위치한 고개는 동수대전에서 왕건이 대패하고 홀로 살아남아 군대가 깨졌다는 뜻으로 파군재(破軍岾)라 부른다. 이외에도 대구 곳곳에 왕건이 남긴 흔적만 열 곳이 넘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팔공산 기슭만 둘러보고 가기가 못내 아쉬워 시내로 발걸음을 돌렸다. 중구에는 총 1.64㎞로 조성된 대구근대골목이 있다. 넉넉잡아 2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이 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피해가 크지 않았던 덕분에 근현대 사적이 많이 남아 있다. 청라언덕에서 시작돼 이상화·서상돈 선생의 고택 등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또 다른 이야깃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청라언덕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대구’ 하면 떠오르는 과일, 사과나무가 행락객을 반겨준다. 서양 사과는 1899년 미국 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이 들여와 동산의료원에 심은 것이 최초로 알려졌다. 서양 사과 1세목은 명을 달리했지만 대신 3세목이 남아 지금도 언덕을 지키고 있다.
청라언덕을 내려오다 보면 태극기가 펄럭이는 계단이 나온다. 일명 90계단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계성학교·신명학교·대구고보 학생들이 3·1운동 집결지로 모이기 위해 거쳐 간 3·1만세운동길로 유명하다. 이어 나오는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과 평양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성당으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이곳에서 사제서품식을 받았다. 성당 오른편에는 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민족운동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도 자리하고 있다. 벽에 적힌 이상화 시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금세 만날 수 있다.
글·사진(대구)=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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