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김희애 응원 이유··· "무임승차자 응징심리"
‘사회 금기 파괴’에 관심과 비난 함께 쏟아지지만
드라마 ‘부부의 세계’ 시청률 25% 돌파 고공행진
가족주의 강한 한국에선 “도덕적 용납 못해” 여론
유럽 등 개인주의 성향 강한 국가들은 관대한 편
프랑스선 외도한 정치인이 오히려 당당한 문화
이혼제도 ‘유책주의’→‘파탄주의’ 전환 요구도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사진=JTBC |
‘불륜’으로 떠들썩했던 4월이었다. JTBC 화제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방영 8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불륜불패’라는 방송 드라마의 성공공식을 또 한번 입증했다. 며칠 전에는 한 배우와 가수가 과거 불륜 관계였다는 의혹에 입방아에 올랐다. 지상파 방송에 등장한 한 신혼부부는 멀쩡한 가정을 파탄 내고 불륜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며 화제가 됐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불륜은 폭발적 관심과 따가운 비난을 동시에 받는 ‘핫한’ 소재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왜 불륜에 뜨겁게 반응하는 걸까.
사람들이 불륜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형법상 간통죄는 지난 2015년 폐지됐지만 결혼과 가족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규범이다. 실제로 2013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세계 40개국의 불륜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불륜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81%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배우자의 외도에 관대한 편인 영국(76%), 독일(60%), 프랑스(47%) 등 유럽은 물론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중국(74%), 일본(69%)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륜은 결혼으로부터의 일탈”이라며 “불륜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해소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 통념상 불륜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일탈을 꿈꾸는 심리가 불륜 소재 드라마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부의 세계’에 출연한 김희애와 박해준 / 사진=JTBC 홈페이지 |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불륜이라는 일탈을 실행으로 옮겼다가는 사회적 지탄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곽 교수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응징심리’라고 정의했다. 사회적 규범은 구성원들 모두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지켜갈 때 유지될 수 있는데 불륜은 이러한 대열에서 혼자 이탈하는 행위로 인식된다는 의미다. 또 다른 심리는 ‘배신에 대한 분노’다. 곽 교수는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배신”이라며 “‘나도 배우자에게 배신당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피해자의 감정에 이입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 분석했다.
그렇다면 우리와 달리 배우자의 외도에 관대한 나라들의 이유는 뭘까. 설문조사 결과 불륜에 대한 분노 수치가 가장 낮게 나타난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설문에 응답한 프랑스 시민의 40%는 ‘불륜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사립대의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가족주의’보다 ‘개인주의’ 정서가 강하다”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분위기가 크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1994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당시 혼외자가 있다는 보도에 “사실이다.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또 2010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영부인 카르라 부르니가 각자 서로 다른 상대방과의 불륜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재임 당시 혼외정사로 딸을 얻은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
점차 전통적 가족관이 희미해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불륜에 대한 인식은 변할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불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과거 불륜 드라마에선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여성상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부부의 세계’ 지선우(김희애)처럼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여성 캐릭터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인철 법무법인 리 변호사도 “부정적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간통죄가 폐지됐듯 이혼 제도 역시 바뀌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현재 한국의 이혼소송제도는 일방적 축출이혼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혼인관계를 파탄 낸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혼인관계가 와해될 경우 쌍방 모두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다. 파탄주의가 무분별한 이혼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이 변호사는 “외도 배우자에게 물리는 높은 사후 부양료와 손해배상액 등의 장치를 도입하면 파탄주의 제도 아래서도 축출이혼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과거보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했고 개인주의가 확산한 만큼 이혼제도도 파탄주의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청자들이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열광하는 사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불륜행위를 처벌해달라’며 간통죄 부활을 요구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