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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퀸' 손예진의 풋풋한 리즈 시절...첫사랑의 추억속으로

이 영화 이곳-'클래식' 외암 민속마을

충남 아산에 위치한 예안 이씨 집성촌

손예진·조승우 편지로 사랑 키운 곳

시공 초월해 과녁에 명중한 사랑의 화살

그 마법을 품은 고즈넉한 민속촌 풍경

'멜로 퀸' 손예진의 풋풋한 리즈 시

손예진(사진)은 쉼 없는 다작(多作)의 배우다. 지난 2000년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21편의 영화와 9편의 드라마 등 총 서른 작품을 찍었다. 그런 손예진이 아직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내세우는 작품이 ‘클래식(2003년)’이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겠지만, 유독 이 영화만큼은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고, 힘들 때나 좋을 때나 다시 들춰보며 에너지를 얻는다. ‘클래식’은 고요한 호수에 날아든 돌멩이처럼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본 사람, 베개가 눈물로 젖을 만큼 가슴 미어지는 이별을 해본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영화다.

'멜로 퀸' 손예진의 풋풋한 리즈 시

손예진의 대표작이자 곽재용 감독의 최고 명작인 ‘클래식’ 촬영지 중에는 충남 아산에 위치한 ‘외암 민속마을’이 가볼 만하다. 이 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형성된 예안 이씨 집성촌으로 초가와 한옥, 소나무숲과 돌담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하천을 가로지르는 섶다리가 보이고 몇 걸음만 옮기면 수려한 능선으로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 설화산과 마주한다. 약 20만5,000㎡ 부지에 자리한 이곳은 아산시가 관리하는 관광지인 동시에 예안 이씨 후손 160명 정도가 모여 사는 실제 거주지다.


‘클래식’에서 손예진은 지혜와 엄마 주희 역할을 동시에 맡아 빛나는 젊음의 한 시절을 필름에 새겼다. 주희의 상대역인 준하는 조승우가 연기했다. 외암 민속마을은 고등학생인 준하가 방학 때 외삼촌이 사는 시골로 내려와 잠깐 머무는 동안 주희와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에 등장한다. 봄을 재촉하는 따스한 날씨에도 완전히 녹지 않은 채 담벼락과 산책로 주변에 쌓인 흰 눈을 보노라면 영화에서 첫눈 내리는 풍경을 응시하며 주희를 그리워하던 준하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첫눈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길거리를 거닐어야 한다는데 난 편지를 쓸 뿐이야”라는 주희의 토라진 말투도 먼 산을 휘감고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귓전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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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깊고 조용한 밤 준하와 주희가 반딧불이를 보며 사랑을 키운 곳은 아산이 아닌 대전이다. 극 중에서는 외암 민속마을과 같은 동네로 설정돼 있으나 실제 촬영지는 대전의 두계천이다. 물론 이곳은 영화의 핵심공간이자 드라마의 중요한 매듭이 지어지는 장소지만 관리가 다소 부실한 탓에 여행지로서는 외암 민속마을이 훨씬 괜찮다. 외암 민속마을의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초·중·고생 1,000원이며 추가 요금을 내면 떡메치기, 공예품 만들기, 천연 염색 등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는 겨울 여행으로 차갑게 식은 속을 뜨끈하게 데워줄 손두부와 국수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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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준하와 주희는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음의 깊이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하늘이 예비한 운명이 너무 가혹했던 탓이다. 대신 감독은 영리하게도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부모 세대의 실패한 사랑이 기적처럼 자녀 세대에서 완성되는 이야기의 마법을 부린다.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이 번역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 이 명쾌한 정리는 ‘클래식’에도 잘 들어맞는다.


준하의 아들 상민(조인성)과 주희의 딸 지혜가 비 오는 날 우산 대신 겉옷을 펼쳐 올리고 캠퍼스를 달리는 대목은 시간을 건너뛴 사랑의 화살이 마침내 과녁에 내리꽂히는 순간을 자축하는 장면이다. 감독은 ‘클래식’ DVD에 수록된 음성해설에서 “이 장면의 시나리오를 쓸 때 등장인물들처럼 내 가슴도 콩닥콩닥 두근거렸다”고 고백했다. “뛰어가는 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그 장면을 찍었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여러분에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습니까.”


왜 아니겠는가. 화면에 감도는 ‘시작하는 연인들’의 흥분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고 관객들은 각자 추억의 사진첩을 떠올리며 흐뭇한 감상에 젖는다. 배경음악으로 울려 퍼지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노랫말처럼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면서. 흘러간 지난날이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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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아산)=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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