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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난린데 3N이 또? 클로저스 망령 못 벗는 게임업계[오지현의 하드캐리]

서울경제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SNS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이슈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게임에서 지우겠습니까?”


질문자의 의도를 알아내 어떻게든 마음에 들 만한 답을 찾기 위해 면접장에서 머리를 굴렸던 기억이 다들 있으실 텐데요. 여러분이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뭐가 정답일까 궁리하고, 여기에 생각을 맞추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열패감이나 굴욕감이 들지는 않을까요? ‘영혼을 판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표현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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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냐 보수냐, 페미니스트냐 아니냐, 애를 낳을 거냐 말 거냐···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강요하거나 성차별적인, 혹은 인격 모독성 발언을 ‘압박 면접'이라는 미명하에 남발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업 면접에서의 사상검증은 엄연한 인권침해이자 차별 행위입니다.


게임업계가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게 불과 3년 전.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을 겨냥한 새로운 폭로가 나와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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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한 블로그에는 ‘한 대기업 게임 회사 3N의 비인간적 사상 검증 면접 후기’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A씨는 이 글을 통해 국내 대형 게임사의 면접 과정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받았다고 폭로했습니다. 면접에서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SNS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이슈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게임에서 지우겠냐"는 질문을 받았고 “지우지 않겠다”고 답했다는 겁니다.


그는 이에 대해 "높은 위치에 있는 회사가 조직의 편의성을 위해서 협업 직군의 직원(아트)를 해고할 것인지 남의 밥줄을 쥐고 흔들어보라는 비인간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A씨는 앞선 질문에서 인종차별이나 젠더 이슈에 대해 윤리적인 기준을 지키는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면접 막바지 그림을 지울지 말지 결정하라는, 시나리오 직무와는 관련이 없는 질문을 했다는 것은 사상검증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게 A씨 주장입니다.


더군다나 A씨는 동아제약 사태가 화제인 가운데 면접에 임해 충격이 컸다고 적었습니다. 동아제약은 여성 면접자에게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등 성차별적 관행을 일삼아왔던 사실이 드러나 불매 운동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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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A씨는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질문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나 선택의 여지가 적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구직자는 사상검증에 더 비참한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A씨는 면접 당시 권위에 복종해 제대로 항의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기혐오를 느껴 면접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했습니다.


다행히 게임사 측도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폭로가 화제가 되면서 문제의 게임사는 “당사의 실무면접 과정에서 사상검증 질문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게 해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린다”며 이를 시정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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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의 사상검증 논란은 처음이 아니죠. 2018년에는 일명 국내판 ‘게이머게이트’가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게임 ‘소녀전선’의 일러스트레이터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게이머들의 항의를 받고, 삭제나 계약 해지 등 불이익을 요구받은 사건입니다. 사태는 ‘소울워커’ ‘마녀의 샘’ ‘벽람항로’ ‘디제이맥스’ 등 여타 게임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게이머들이 게임에 참여한 성우나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 계정을 뒤지면서 사상검증을 일삼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던가 여성민우회의 의견을 리트윗(공유)했다는 등의 행위를 문제삼는 식입니다.


이에 앞서 2016년에는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성우로 참여한 김자연씨가 “여자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문구가 담긴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가 게이머들의 집단 보이콧을 받고, 넥슨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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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의 여론을 참칭하는 일부 소비자들에 게임사가 휘둘리는 일이 반복되자 정부까지 나섰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업계 내 여성혐오와 차별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2018년 게임업계를 대상으로 한 첫 ‘게임문화산업 특정성별영향평가’를 실시했습니다.


게임산업 업계와 이용자 내에서 발생하는 성차별 실태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이 연구에서는 실제로 일부 남성 소비자들이 과잉 대표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게이머 열명 중 하나만이 정기적인 온라인 또는 SNS 활동을 하고, 게시물을 쓰거나 콘텐츠를 제작할 정도의 적극적인 게이머는 전체 1.4%에 불과하다는 결과입니다. 연구진들은 “게임 이용자 여론에서 남성 게이머 목소리가 과대표된다는 점이 확인되고, 기업도 위축되는 경향이 존재한다"며 “이는 여성 게임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과 노동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게임문화 조사·연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냉정한 이용자 여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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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게이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을지로분과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영화를 시청했다, 왕자는 필요 없다는 티셔츠를 구매했다, 여성민우회의 의견을 리트윗했다 등의 핑계로 페미니즘을 반사회적으로 규정하려는 일부 게임 이용자의 태도야말로 ‘게임은 우리만의 문화’라는 공허한 주장에 지나지 않다. 당 위원회는 한국 게임산업과 문화의 미래를 위해 게임업계에서의 사상검증을 처벌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2021년입니다. ‘진성 게이머'임을 내세우며 시대에 역행하는 이들, 또 여기에 휘둘리는 기업들이야말로 게임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최전방에서 가로막고 있는 장본인임을 이제는 깨달아야 합니다. 차별은 문화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지현 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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