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죽겠는데···긴바지만 입으라고요?
[골프 트리비아]
■국내 일부 골프장, 국적불명 복장 에티켓
MZ 유입으로 문화 젊어졌지만
반바지 제한에 긴양말 착용 규정
보수적 PGA 이미 '변화의 바람'
선수들 반바지 입고 연습 라운드
'골프 고향' 스코틀랜드서도 허용
더위가 찾아왔다. 이제부터 골프는 더위와의 싸움이다. 그늘에서는 그나마 괜찮은데 땡볕에 있으면 금세 땀이 주르륵 흐른다. 비도 자주 내린다. 비와 땀이 범벅이 되면 그것만큼 찝찝한 것도 없다. 자연스레 시원한 반바지를 찾게 된다. 국내 다수 골프장들도 이제는 반바지 라운드를 허용한다. 그런데 일부 골프장에서는 한여름에만 한정해 허용하거나 무릎까지 오는 양말(니 삭스)을 신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반바지를 입지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
국내 골프 인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20·30세대의 유입이 크게 늘었다. 골프 문화도 딱딱한 격식을 벗고 점점 더 젊어지고 있다. 골프 예약 전문 업체 엑스골프의 조성준 대표는 ‘반바지 전도사’다. 2014년부터 ‘반바지 라운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조 대표는 무릎 길이의 반바지에 깃이 있는 셔츠를 입으면 골프 에티켓에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골프는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복장도 마찬가지”라며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는 문화는 이제 일본에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외국 골프클럽에도 드레스 코드(권장 복장)가 있다.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어떻게 입으라고 권장할까.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운동에 적합한 옷을 입어야 한다. 지저분하거나 찢어진 옷은 안 된다. 클럽하우스 드레스 코드는 깔끔한 평상복 차림이면 된다.” 올드 코스 외에 로열 버크데일, 로열 리버풀, 로열 포트러시,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등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 순회 개최 코스 대부분도 반바지 라운드를 허용하고 있다. 조건이 있기는 하다. 일반 바지에서 길이만 짧게 만든 반바지(tailored shorts)여야 한다는 것이다. 농구나 축구 등 다른 스포츠 활동을 할 때 입는 짧은 바지나 허벅지 옆에 주머니가 달린 카고 반바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과거 카고 반바지를 입고 라운드를 하다 옷을 갈아입으라는 직원의 말을 거절해 골프장 측으로부터 출입 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프로 골퍼들도 프로암과 연습 라운드 때 반바지를 입을 수 있다. 2주 전 열린 US 오픈 때도 많은 선수들이 반바지를 입고 연습을 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는 2019년부터, DP 월드 투어(옛 유럽 투어)는 2016년부터 반바지 연습 라운드를 허용했다. 당시 이언 폴터(잉글랜드)는 “골프를 시대에 뒤떨어지게 묶어두는 고루하고 낡은 룰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는 2020년부터 연습 라운드 때 반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골프장과의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까지 허용한 것은 지난해 야마하 아너스K 오픈 딱 한 차례다.
남자 프로 골퍼의 대회 중 반바지 착용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PGA 투어는 “선수들이 코스에서 프로처럼 보이기를 원한다”고 밝힌다. 캐디는 1999년부터 대회 중에도 반바지를 입고 있다. 당시 더운 날씨에 무거운 골프백을 메다 탈진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다.
PGA 투어의 선수 관련 복장 규정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입지 말아야 할 복장으로 청바지, 반바지, 깃이 없는 셔츠 등을 언급했는데 지금은 “깔끔한 복장이어야 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골프 패션이어야 한다”로 바뀌었다. 올해 KPGA 선수권 우승자 신상훈(24)은 “대회 때는 긴바지를 입더라도 연습 라운드 반바지 착용은 좀 더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 골퍼야 멋지고 폼 나게 보여야 한다는 이유라도 있다지만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편안함이 최우선 아닐까.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