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돌고 싶다던 우즈···왜?
[골프 트리비아]
■'골프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비밀
일부 홀 교차따른 불편·혼란 이유로
19세기 진행방향을 반시계로 변경
역방향 돌면 벙커 위치 의문 풀려
4개 홀 제외한 '더블 그린'도 특징
깃발색으로 인·아웃 코스 홀 구분
“죽기 전에 올드 코스를 거꾸로(backward) 돌아보고 싶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7·미국)가 2015년에 한 말이다. 거꾸로 돈다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골프 성지’ ‘골프 고향’ 등으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라운드를 하다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중 하나가 112개 중 생뚱맞은 위치에 놓인 벙커들이다. 벙커는 샷이 떨어질 지점에 배치되는 게 상식인데 종종 티잉 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도 하다. ‘저 벙커는 왜 저곳에 있는 거야’라는 의문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올드 코스는 현재 1번 홀 티잉 구역에서 시작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반시계 방향으로 플레이를 하는 구조다. 그런데 ‘오리지널’ 올드 코스는 시계 방향으로 돌게 돼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1번 홀 그린이 현재의 17번 홀 그린 쪽이어서 18번과 동선이 교차한다는 것이었다. 1870년 올드 톰 모리스는 1번 홀 그린을 지금의 위치에 새로 만들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홀 번호 배치도 현재의 반시계 방향으로 바꾸자 진행이 훨씬 매끄러웠다. 올드 코스는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는 격주로 과거의 시계 방향 운영도 했다고 한다.
역방향(리버스)의 오리지널 올드 코스를 도는 골퍼들은 1번 홀 티에서 17번 홀 그린을 향해 시작하게 된다. 오프닝 홀에서 그 유명한 현재 18번 홀의 스윌컨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이후 17번 그린 근처 18번 티에서 16번 그린으로, 17번 티에서 15번 그린으로, 16번 티에서 14번 그린으로 간다. 마지막에는 2번 티에서 18번 홀 그린으로 오면서 끝난다.
리버스 올드 코스를 경험해 본 골퍼들은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럽지만 곧 시각적으로 익숙해진다고 말한다. 평소 시야 밖에 있던 벙커들이 명확하게 보이고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감탄사를 쏟아낸다.
올드 코스의 또 다른 특징은 ‘더블 그린’이다. 1개의 그린에 2개의 홀이 있는 형태다. 1개 홀에 2개의 그린이 있는 ‘투 그린’과는 개념이 반대다. 국내에서는 제주 나인브릿지의 11번과 15번 홀이 그린을 공유하는 더블 그린이다.
올드 코스에서 싱글 그린은 1·9·17·18번 딱 4개 홀밖에 없다. 나머지는 아웃·인 코스가 서로 교차하면서 하나의 그린을 사용한다. 그린은 운동장만큼 넓다. 가장 큰 5번과 13번 홀 더블 그린은 3516㎡(약 1064평)나 된다. 축구장(7140㎡)의 절반이 넘는 크기다. 그린의 평균 넓이는 2068㎡(약 626평)로 평균적인 미국 그린(464㎡)보다 4.5배 정도 크다.
그린을 공유하는 홀을 짝 지어 보면 2번-16번, 3번-15번, 4번-14번, 5번-13번, 6번-12번, 7번-11번, 8번-10번 등이다. 흥미롭게 두 번호의 합이 모두 18이다. 같은 그린에서 홀 구분은 어떻게 할까. 아웃 코스 홀은 흰색 깃발, 인 코스 홀은 붉은 깃발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6번과 12번 홀이 있는 그린에서 흰색 깃발은 6번, 붉은 깃발은 12번 홀을 의미한다. 하지만 18번 홀은 전통적으로 흰색 깃발만 사용한다.
올드 코스가 처음부터 더블 그린이었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세인트앤드루스가 유명해지면서 코스가 붐비기 시작하자 같은 홀에서 다른 골퍼들을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불편함과 분쟁이 생기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그린에 2개의 구멍(홀)을 뚫은 것이다. 오늘날 18홀이 표준이 된 것도 올드 코스에서 비롯됐다. 올드 코스도 1764년 이전까지는 22홀이었다. 하지만 초반과 막판 각각 4개 홀이 너무 짧았다. 각 4개 홀을 2개씩으로 줄이면서 18홀이 됐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자연의 창조물이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처음 올드 코스를 접한 뒤 그 황량함과 단조로움에 실망한다. 하지만 올드 코스는 그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퍼들을 잡아 끄는 묘한 마력이 있다. ‘올드 레이디(올드 코스의 별명 중 하나)’가 수세기 동안 사랑 받은 이유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