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한담(雪中閑談) - 내변산(內邊山)을 걷다 ①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
(전략)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눈이 오는 날이면 소환되는 까닭모를 그리움
눈이 오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아득한 그리움 하나쯤은 소환해내야 할 것 같다. |
눈이 오는 날에는 왠지 마음 어느 틈엔가 쟁여놓았던 아득한 그리움이 배추꽃나비같이 나풀대며 내 안에 스미듯 밀려든다. 딱히 기억해낼 약속조차 희미해진 나이임에도, 눈이 오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아득한 그리움 하나쯤은 소환해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더란 말이다.
그 대상이 중학시절의 첫사랑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였는지도 아득하지만, 눈이 오면 아직도 설레는 마음은 스멀스멀 옛 기억 한 토막이라도 떠올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성화를 부리는 것만 같다. 아마도 시인의 말처럼,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리는 눈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추억하고 막연한 그리움 하나쯤은 불러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에 떠밀린 눈송이 하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
나에게 있어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가장 인상적인 눈은 유년시절의 어느 밤,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마당에 솜뭉치처럼 무심히 쌓이던 그 눈이 아니었을까 싶다. 늦은 밤, 창호지 너머로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놀라 무심코 열어본 문밖에는 기척도 없이 어느새 한 뼘만큼의 눈이 마당을 온통 눈밭으로 바꿔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밤, 어둠을 헤치고 내리던 눈은 누에의 엉덩이에서 풀려나오는 새하얀 고치실마냥 한도 끝도 없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바람마저 잠이 들었는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긴 선분을 그리며 눈은 그렇게 마당에 툭툭~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틈을 비집고 마중 나간 형광등 불빛에 눈의 빛깔마저도 푸르렀다. 너무도 고요했기에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양, 한참 동안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늘 보던 눈이건만, 그날 밤의 눈은 어린 눈에도 생경했고, 그 광경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아마도 평화스러움을 눈(目)으로 볼 수 있다면, 소리 한 점 없는 천지간에 저 홀로 사르락사르락~ 감나무 옆 장독대 위로 쌓이던 그 눈처럼 고요한 모습이 아니었을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에는 눈만 와도 행복했었고, 또 즐거웠었다. |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아! 내일은 학교엘 가지 않겠구나… 그 당시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폭설이 내리면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았던지라 휴교를 하는 날이 많았었다. 이른 아침이면 아니나 다를까, 마을 회관의 스피커에서는 '오늘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학교의 지시를 전달하는 이장님의 목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곧이어 집집마다에서 터지는 아이들의 환호성들…
그 시절에는 눈만 와도 행복했었고, 또 즐거웠었다.
눈 오는 날 내변산(內邊山)을 오르다
내변산은 변산 안쪽에 있는 남서부 산악 지역을 가리킨다. |
내변산을 오르던 날에도 그렇게 탐스런 눈이 내렸었다.
길은 내변산 탐방센터에서 시작된다. 지난밤 내린 눈으로 내변산의 곳곳은 온통 눈밭이다. 다행히도 산으로 가는 초입의 길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의 손길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부지런한 눈 여행꾼의 이른 발걸음이었는지는 몰라도 길은 넉넉하게 열려 있었다.
내변산(內邊山)이라는 이름은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바깥변산(外邊山)과 안변산(內邊山)으로 구분되어 불리는데서 기인한다. 외변산이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바깥 부분을 말하는데 비해, 내변산은 변산 안쪽에 있는 남서부 산악 지역을 가리킨다.
내변산의 산들은 높이가 400~500m 정도로 완만하지만 오밀조밀하다, 그래서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최고봉은 의상봉(508m)으로, 옥녀봉, 쌍선봉, 관음봉 등의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으며, 봉우리 높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양한 계곡과 기암괴석이 많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하니, 머지않아 직접 경험해보면 알 일이다.
눈에 갇힌 길은 길과 길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한 탓에 어디로 가야할지 첫발을 내딛는 것부터 망설여진다. |
눈으로 뒤덮인 길은 아득하다.
눈에 갇힌 길은 온통 새하얀 탓에 기준점을 정하기가 어렵고, 길과 길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한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첫발을 내딛는 것부터 망설여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길 위에 길을 내어준 부지런한 누군가의 손길과 발걸음이 있었기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다. 다만 발밑에서 덜그럭대는 아이젠과의 호흡만 잘 맞추면 될 일이다. 게다가 군을 제대한 아들 녀석과 함께 가는 길이니 더욱 든든하다.
대나무숲에는 솜뭉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대나무숲에는 솜뭉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푸르름과 대비되는 흰색의 조화가 생경하다. 하지만 그들의 지조가 나에게는 눈과 대비되는 색감을 선물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게다가 대나무의 상징이 푸르름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대나무는 더욱 푸른 느낌이다. 아마도 눈과 대비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대나무에 똬리를 튼 눈송이들조차도 그 푸른빛에 가려 존재감이 미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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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외길이다. |
길을 삼켜버린 눈의 벌판 끝자락에 절집 하나가 오도카니 서 있다. 실상사(實相寺)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고찰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어 그동안 폐사지로만 남아 있다가 1995년부터 복원불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절집은 실상사의 미륵전이다.
절집을 벗어난 길은 산으로 향한다.
길은 외길이다. 설사 다른 길이 있다 하더라도 눈 속에 파묻힌 길을 어떻게 해볼 도리조차 없다. 새삼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을 떠올리게 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그러니 나 역시 그 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계곡에 내려앉은 눈사태에는 계곡의 물이 조심스레 길을 내며 나아간다. |
산으로 향하는 그들조차 일렬종대의 행렬을 이루며 나아간다. 섣부른 새로운 길에 대한 욕심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곡에 내려앉은 눈사태에는 계곡의 물이 조심스레 길을 내며 나아간다.
길은 눈꽃 터널 속으로 가없이 이어진다. 이따금씩 불어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눈들이 분분하다. 곱게 빻은 소금을 공중에다 흩어 놓으면 이럴까. 여린 눈들이 부서지며 민들레 꽃씨마냥 무게감 없는 무게로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백을 채우며 스러져 간다.
그 아스라한 스러짐은 눈이 올 때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눈이 종(縱)으로 낙하한다면. 비산(飛散)하는 눈들은 종횡(縱橫)을 넘나들며 안개마냥 그렇게 흩어지며 공간을 떠다닌다. 그 분분한 낙하의 아찔함이라니... 무심히 걷고 있는 발길은 그래서 아득하고, 또 아득하다. 눈은 그렇게 안개처럼 바람에 실려 산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부서지고 있었다.
산정호수에는 눈의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
어느새 발걸음은 산정호수(직소보)에 이른다.
이런 산속에 호수라니…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펼쳐지는 광활한 눈의 평원 앞에서 눈은 똥그래지고,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쏟아진다. 눈길을 즈려 밟으며 올라온 고단함은 이렇듯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 앞에서 그야말로 눈 녹듯 사라진다.
물끄러미 앞만 보고 걷던 아들 녀석도 생경한 풍경 앞에서 연신 카메라폰을 눌러댄다. 그럼에도 인증샷을 찍어주겠다는 아비의 말에는 시큰둥이다. 저도 군까지 제대한 몸인데 아비라고 이래라 저래라 하니 살짝 버팅겨보는 모양인지 조금은 뻣뻣하다. 허긴 보는 눈도 많은데 아비라고 애 취급을 하니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을 더 청하니 못 이기는 척 자세를 잡는다. '한 번 더'를 외치니 손가락이 기어이 브이(V) 자를 그린다.
어찌 보면 제 스스로 성인이라는 아이와 아비는 어느 정도의 긴장 관계는 필수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말이 긴장 관계지, 어쩌면 나름의 소통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마음속에 흐르는 그 뜨거운 정리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것인가. 무뚝뚝한 둘 사이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 무엇도 있는 법이라고 믿고 싶다. 다른 많은 동행인들도 인정하듯이 다 큰(?) 놈이 이렇듯 흔쾌히 아비를 따라나선 것만도 어디인가.
최고의 여행 준비는 뒷마당 울타리를 뛰어 넘는 것
길은 다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
길은 다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겨울산을 오르는 행렬은 선(線)이다. 아니, 산등성이의 어느 자락을 지나는 길 자체가 선이다. 한 사람이 지나간 흔적만큼의 폭이 바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일렬의 긴 행렬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일까. 두런두런 서로 간에 건네는 일행과의 잡담마저도 없는, 오직 발밑에서 들려오는 눈과 발 사이의 마찰음만이 유일한 소음이다. 사막을 지나는 대상(隊商)의 행렬처럼 그렇게 줄지어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조심스럽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눈에 대한 경계심으로 뽀득뽀득 기운차게 땅으로 발을 내닫는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일념이 걸음 속에서 느껴진다.
'인간'이란 항상 스스로에게 편안함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
문득 겨울임에도 땀을 흘리며 산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깨닫는다. 저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서 눈 덮인 겨울산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란 항상 스스로에게 편안함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그러한 인간으로서 안락한 휴일의 빈둥거림을 포기하고 추위와 어느 정도의 위험, 그리고 떠난다는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겨울의 산을 오르고 있는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가지는 편안함이라는 기본적 욕구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산이 주는 묘미를 깨친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고,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及)' 수 없다. |
그래서일까. 헤세의 표현을 빌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의미에서는 '알을 깬'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헤세는 그의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고 말했었다.
헤세가 말하는 '세계'는 '선과 악', '사랑', '내 안의 나'와 같은 철학적인 개념을 포함하는 것이었지만, 어쩌면 그 '세계'는 우리 일상의 도처에도 널려 있을 것이다. 관습, 가치관, 생활 습관, 지식과 지혜의 한계 등등... 어쩌면 우리의 일체의 삶과 스스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깨고 나와야 하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실상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전복과 파괴, 그리고 버림을 통한 각성(覺性)만이 그 주요한 추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고,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及)' 수 없다는 말은, 그래서 유효한 것이다.
하물며 길을 걷다 아무리 훌륭한 풍경을 만났다 하더라도,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훌륭한 풍경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다음의 풍경과 대면할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풍경, 새로운 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위해서는 기어이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는 헤세의 말은, 어쩌면 그래서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기껏 눈 덮인 산 하나 오르는 것 가지고 이 무슨 장광설이냐고 지청구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알은 깨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자연보호에 나서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과 세콰이어 국립공원(Sequoia National Park)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게 하였고, 모든 걷는 이의 로망이라는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총 358km)'의 그 존 뮤어는 '최고의 여행 준비는 차 몇 봉지와 빵 몇 덩이를 배낭에 던져 넣고 뒷마당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그 뒷마당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고, 대문을 열고 나오지 못해 놓쳐버린 기회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알'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널려 있고, 집이라는 알을 깨고 길을 나선 그와 집 안에 머무른 그가 경험하는 세상의 차이는 그렇게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알은 깨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길은 어느새 내변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직소폭포에 이른다. 아! 저 멀리 폭포가 보인다.
(2편에 계속)
저 멀리 직소폭포가 보인다. |
내변산-내소사코스 (6.2 km)
- 내변산탐방센터~실상사~봉래구곡~산정호수~(분옥담~선녀탕)~직소폭포~재백이고개(멀리 고창 선운산이 보인다)~원암마을(or관음봉삼거리~내소사)
변산반도 국립공원(내변산분소)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변산로 2070번지
- 탐방 문의 : (063)582-7808
- 홈페이지 : http://byeonsan.knps.or.kr
박대영 기자
여행 계획의 시작! 호텔스컴바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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