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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베란다에 층층이 '미니 발전소'…절약 효과 놀라웠다

탄소중립 따라잡기 ② 온실가스 줄이고 전기요금 55% 절감

'온실가스 줄이기와 탄소 중립'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왠지 시민들의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서울 한 복판의 아파트 단지에서 에너지 사용 효율화를 통해 탄소 발생을 줄이는 동시에 개별 세대마다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 사용 요금을 크게 낮추면서 탄소 저감과 에너지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곳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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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있는 신동아 파밀리에 2단지입니다. 지난 2015년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장으로 나선 송진국 씨는 당시만 해도 온실가스나 에너지 전환과는 별 관련 없는 평범한 주민이었습니다. 입주자 회장에 선임된 그의 관심은 다만 어떻게 하면 아파트 관리비를 낮출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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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파밀리에 2단지 지하주차장, 형광등에서 LED등으로 교체한 모습이다. LED 등이 밝기가 밝아 징검다리처럼 전등을 비워둔 자리가 많다.

관리비를 아낄 첫 번째 아이디어는 아파트 내 지하 주차장 형광등을 LED 등으로 교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36W 형광등을 20W LED로 교체할 경우 전기료를 40%가량 절약할 수 있는데, 오히려 밝기는 20W LED가 36W 형광등보다 밝더라는 겁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발품을 팔아보니 도움을 받을 길이 있더라는 게 송 회장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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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국 회장이 아파트 내 교육장에 설치된 형광등과 LED 등의 밝기를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왼쪽 형광등의 경우 36W*3개=108W인 반면 오른쪽 LED 등은 20W*2개=40W이다. 하지만 밝기는 오히려 LED쪽이 더 환하게 보인다.

먼저 강남구청에서 시행하는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참여 신청을 해서 전체 공사비 5천여만 원 가운데 50%를 지원받았습니다. 나머지 자부담 2천여만 원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운영하며 주민들에게 걷은 추가 차량 주차비로 해결했습니다. 세대당 기준 대수 이상의 차량을 주차 등록할 경우 주민들이 내는 추가 차량 주차비로 말이죠. 그런데 이마저도 지하 주차장에 LED 전등을 시공한 덕분에 절감된 전기료를 통해 1년 2개월 만에 추가 차량 주차비를 원상복구했다는 게 송 회장의 설명입니다.


신동아 파밀리에 2단지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에너지 효율화 사업 참여에 팔을 걷어붙입니다. 2016년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에 신청해 선발된 겁니다.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은 마을 단위 주민 주도로 에너지 효율화 생산 등을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가는 사업으로, 선발된 마을에는 지원금 혜택이 주어집니다. 신동아 파밀리에는 이로부터 3년간 서울시로부터 5천여만 원에 달하는 지원을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할로겐 전구가 설치된 단지 내 가로등과 공용 부분 전등을 LED등이나 태양광 등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합니다. 또 주민들에 대한 에너지 효율화 교육을 진행하는데도 지원금을 활용하게 됩니다.


송 회장과 신동아 파밀리에의 에너지 자립 도전은 전기를 아끼는데 그치지 않고, 재생 에너지를 통해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데 까지 이어집니다. 2016년부터 세대 내 베란다에 320W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전체 410세대 가운데 76%에 달하는 312세대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습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 아파트에서 세대마다 태양광 패널이 층층이 깔린 광경을 접하긴 쉽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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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파밀리에 2단지 아파트 개별 세대마다 설치된 베란다 태양광 패널. 전체 세대 410곳 중 76%가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설치 비용 60만 원 가운데 50만 원가량은 서울시의 베란다 태양광 설치 사업을 통해 지원받았고 나머지 10만 원 안팎은 개별 세대에서 자부담했습니다. 이 베란다 태양광을 통해 평균적으로 하루 3시간 정도 발전이 이뤄져 한 달에 35KW의 전기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4인 가족의 한 달 평균 전기 사용량이 350KW니까 매달 전기료의 1/10을 아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파트 옥상마다 옥상용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습니다. 용량은 153KW입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가로등 등 공용 부분 사용에 우선 쓰입니다. 그리고 남는 소량의 전기는 일반 세대에 공급됩니다. 옥상 태양광 설치비가 1억 4천여만 원 들어갔는데 이중 3천여만 원을 서울시에서 태양광 임대 사업 지원 명목으로 받았습니다. 1억여 원에 달하는 나머지 비용은 태양광 패널 임대료 명목으로 매달 120만 원씩 7년간에 걸쳐 태양광 설비 업체에 납부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주민들이 직접 부담하는 몫은 사실상 없습니다. 옥상 태양광으로 생산하는 전력량이 임대료 수준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기 생산을 통해 생긴 수입으로 통해 2년에 한 차례씩 주민들이 납부하는 아파트 관리비의 탕감에 쓰였다고 하네요. 올해도 4개월 동안 아파트 관리비 50%를 할인했는데, 그 재원이 바로 에너지 효율화와 태양광 전기 생산을 통해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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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파밀리에 2단지 옥상에 설치된 옥상 태양광 패널

신동아 파밀리에 아파트의 실제 특정 세대 전기요금 부과 현황을 들여다봤습니다. 송 회장 세대의 경우 2016년 연간 전기요금이 49만 5,520원이었습니다. (세대 내 요금 35만 1,790원, 공용 전기요금 14만 3,730원) 월평균 4만 1,300원 꼴입니다. 이랬던 전기요금이 2020년의 경우 연간 22만 610원을 납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세대 내 요금 20만 3,490원, 공용 전기요금 1만 7,120원) 2016년에 비해 55%나 줄어든 겁니다. 공용 전기요금의 경우 특히나 절감 효과가 컸습니다. 4년 만에 90% 가까이 줄었고, 2분기와 3분기에는 공용전기료가 한 푼도 발생하지 않는 '제로'였습니다. 햇빛이 양호한 2~3분기에 옥상 태양광 패널의 발전량이 겨울철에 비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태양광 전기 생산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화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세대 내부 전등을 LED로 교체하고, 쓰지 않으면서도 꽂아두느라 낭비하는 대기전력을 아끼기 위해 절전형 콘센트로 바꾸는 등 생활 속 실천도 에너지 요금 절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송 회장 설명입니다.


이렇게 에너지 효율화와 전기 생산을 통한 이득이 현실화되자 주민들의 에너지 절감 관심도도 부쩍 높아졌습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교육과 환경 음악회는 물론 친환경 에너지 시설 답사 같은 프로그램까지 기획했는데, 매번 주민들의 참여도와 호응이 대단히 높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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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국 강남 세곡동 신동아파밀리에 아파트 2단지 입주자대표 회장

신동아 파밀리에 아파트의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 추진의 비결은 뭘까요? 우선 송진국 회장처럼 관심과 열정으로 에너지 효율화를 이끈 주도 인물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제 단지 내 정책으로 시행할 권한이 담보돼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송 회장이 대표회 회장으로 선출되기 전에 지하주차장 LED 전환을 건의한 적이 있지만 전임 입주자대표회의 무관심으로 추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신동아 파밀리에 사례에서 시민 참여형 에너지 전환 추진의 실현 가능성과 어려움을 동시에 봅니다. 송 회장처럼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시간과 노력을 들일 주민은 매우 드물 겁니다. 하지만 관심 있는 사람만 있다면 시청과 구청 단위에서 각종 에너지 전환 사업 지원 정책들이 즐비해 있고,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송 회장의 경험담입니다. 거세게 밀려오는 기후변화 위기를 앞에 두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를 통해 에너지 전환과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고 에너지 비용을 절감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요. 서울 하늘 아래 가득 펼쳐진 아파트 숲 속 어딘가에서 기후와 에너지 문제를 걱정하는 누군가에겐 신동아 파밀리에 스토리가 훌륭한 나침반이 될 거 같아, 이 기록을 남겨봅니다.


(사진 취재: VJ 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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