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발 씻는 물 준비 싫어 퇴사"…한국의 약점 '의전'
[SBS 스페셜] 레드 카펫, 의전과 권력 사이 ②
의전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이 이어졌다.
20일 방송된 'SBS 스페셜'에서는 '레드 카펫, 의전과 권력 사이'를 부제로 환대와 수발 사이를 오가는 의전에 대해 조명했다.
이날 방송에서 허의도 '의전의 민낯' 저자는 '의전'의 정의를 "외교관계에서 격을 맞춰나가는 방식. 서로를 향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국내 의전은 해외에서 배울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특권의식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권상집 교수는 "예의가 도를 넘어 권위자에 대한 충성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민생탐방 현장은 의전의 한 장면으로 비쳤다. 공무원 수십여 명을 이끌고 시장을 방문한 모 도지사가 장을 보면 뒤따르던 보좌관이 장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담았다. 시장 상인들은 "복잡할 때 와서 사진을 찍고 간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본인 사진 찍으러 (왔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장관과 정치인이 소방관계자들을 격려하는 자리도 의전의 한 부분이다. 방화복 차림의 소방관은 이들 도착 전 정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소방관을 위한 일인가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국제행사 전문가는 "사실 VIP는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직원들이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좋은 마음으로 간 행사도 위신이 깎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의전 문제로 벌어진 사건도 있었다. 모 군의원은 '국회의원 사모님에게도 의전을 해야 하는가'를 두고 식당 창문에 소화기를 던졌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은 사건 이후로 의전이 더욱 강해졌다며 "인사시키는 건 기본 생활의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이강래 전 청와대 의전관은 "아직 변화하지 못한 조직, 사람들이 있다"며 "때로는 의전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전은 직장에서도 존재했다. 전 대기업 직원은 자신의 사례를 들며 "술자리 마지막, 직장상사 집에 가는 것까지 챙겨야 한다. 이것도 의전"이라고 전했다.
한국 회사에서 4년간 근무했다는 마이클 씨도 경험에 비추며 "장례식 갔다. 나는 신입사원이라서 신발정리 했다"며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싶었다)"고 말했다. 마이클 씨는 고인의 이름조차 몰랐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권상집 교수는 이 같은 한국 기업 의전 문화에 대해 "전체 구성원 입장보다 CEO 심기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에리크 쉬르데주 전 한국 대기업 해외 법인장은 "한국과 같은 의전은 극단적이다. 한국인들은 직위가 올라갈수록 일상적인 일을 제 손으로 안 하게 된다"고 일갈했다.
직장 내 의전에 대해 '승진을 위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전 대기업 직원은 "위의 지시가 아닌 밑에서 알아서 이뤄지는,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J' 기업 정보 공유 회사 측은 "일보다 의전을 잘해야 인사평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 조직문화는 이렇다'는 회사는 사람을 뽑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에리크 쉬르데주 전 한국 대기업 해외 법인장도 "지나친 의전을 강요하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발성을 죽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허의도 '의전의 민낯' 저자는 과잉 의전에 대해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변질됐다"고 말했고, 국제행사 전문가는 "의전은 괜찮지만 수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준의 의전 전문가는 "아랫사람이 느끼는 고충이 반복된 보상심리"라며 "윗분들이 아량과 도량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SBS funE 김지수 에디터)